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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민 Jun 30. 2023

삶의 목표 3. 행복 1

행복을 찾아서 1.


“행복하려고 삽니다.”


삶의 의미를 물어보는 질문에 열에 여덟 정도는 이런 대답을 하지 않을까 싶다.

대중적이고 설득력 있으며 또 아주 오래된 삶에 대한 격언이다.

이 개념이 아리스토텔레스의 책에서 시작되었다고 가정하면 약 2,400년 전부터 행복은 인간의 삶의 길잡이 었다.

2,000년을 뛰어넘는 영향력을 가지기에 행복은 삶의 목표로서 충분하지 않을까?

하지만 내 삶에서 가장 중요할지도 모르는 선택을 하는데 그저 오래되었고 많은 이들이 따른다고 해서 나 역시 비판적인 생각 없이 따라갈 순 없다.

정말 행복이 인간의 삶에서 가장 우월한 단 하나의 가치로서 우선적으로 추구할 만한 가치일까?

일단은 행복하려고 산다는 게 무슨 말인지 파헤쳐보자.


사람들은 어떤 경험과 깨달음을 통해 행복이 가장 중요하단 얘기를 할까?

그 맥락을 알아보자.

경험상 저런 대답을 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물질, 커리어적인 성공을 더 이상 추구하지 않는 사람들이었다.

학생시절 몇몇 선생님들은 경쟁에 지친 우리들에게 조언을 해주기 위해서 지금 겪는 경쟁과 성공만이 인생의 답은 아니라며 자신 주변의 물질적으로 성공했지만 불행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곤 했다.

흔히 있는, 물질적인 성공 이후에 그 돈과 명성으로 누리는 성취감보단 성공을 위해 뒤도 안 돌아보고 달리는 과정에서 희생시킨 다른 가치에 대한 후회와 공허함이 더 크다는 얘기 었다.

사실 앞선 성공에 대한 얘기에서 이미 다뤘듯 우리는 하나의 성공에 만족하기보단 그것을 발판으로 또 다른 성공을 추구하고 갈망해한다.

즉 보통 성공의 경험은 크고 장기적인 만족으로 완결되기보단 또 다른 성공에 대한 갈증으로 이어진다.

피나도록 노력해 원하던 대학을 가면 또 원하는 직장을 가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원하는 직장에 가게 되면 또 원하는 수준의 커리어를 얻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일상을 희생시켜 손에 잡은 목표란 사실 다음 목표에 가기 위한 또 다른 계단이었을 뿐이다. 

물론 분명 각각의 단계에서 성취할 때마다 한동안 행복하고 평안하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안 된다는 생각이 금세 불청객처럼 찾아오고 만다.

눈앞에 목표만 이루면 세상을 다 가진 듯한 행복을 느낄 거라는 상상을 하지만 막상 그것을 이루고 느껴지는 행복은 그렇게 크거나 길지 않다.

하필이면 이를 깨닫지 못한 많은 이들이 일상의 소소한 행복까지 희생해 그것을 연료로 삼아 성취로 나아간다.

가시적인 결과물이 없어서 생산적이지 않는 것으로 취급했던 친구, 취미, 연애 등에 투자할 시간을 오로지 성취에만 쓴다.

성취의 만족감이라는 초가 다 녹아버린 뒤에는 자신이 갖지 못한 것에 관한 공허함 만이 남아 있을 뿐이다.

지금까지 그것을 놓친 게 잘못이 아니었을까?

행복이란 조금 더 적극적으로 찾아야 하는 게 아닐까? 

“행복하려고 삽니다.”

이 말을 하는 사람들은 결국 이런 경험과 고민을 통해 저런 답에 도달했을 것이다. 


이를 조금 더 자세히 다뤄보며 행복을 파헤쳐보자.

우선 왜 성공만으로는 행복해질 수 없는 것일까?

행복, 아니 인간이 느끼는 감정에는 중요한 특징이 있기 때문이다. 

바로 적응이다.

아무리 큰 행복이라도 그 기분 좋음은 오래가지 못한다. 

아무리 큰 행복이라도 그 기분 좋음은 점점 익숙해져서 또 다른 행복을 찾게 된다.

만족이 이런 식으로 끝나고 다른 행동으로 이어져야만 우리는 새로운 목표를 갖고 새롭게 행동하기 시작한다.

그래서 적응은 생존에 꼭 필요하다.


예를 들어 집안 경사를 듣고 아버지가 너무 기뻐서 이런 말도 안 되는 얘기를 한다.

“막내가 삼성에 취직하다니! 밥을 안 먹어도 될 정도로 행복하다!”

밥에서 느낄 행복감은 필요도 없을 정도로 큰 행복을 느낀다는 얘기겠다.

하지만 정말 저 말처럼 된다면 그것은 위험하다. 

아버지가 굶어 죽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만약 너무나도 큰 행복감이 계속 지속된다면 더 이상 다른 행복을 추구하지 않을 것이다. 

이 상황에서 굳이 맛있는 밥을 찾아 먹고, 직장에서 인정받고, 가족과 잘 지낼 필요가 있을까?

그런 수고를 안 해도 이미 지금 기분이 너무 좋은데 말이다.

계속 기쁜 사람이 어떤지 (마약) 중독자들을 보면 알 수가 있다.

과정 없이 쉽게도 행복에 푹 빠진 그들은 행복을 위해 다시 약을 한다는 선택지 외의 생존활동을 하지 않는다.

지나친 만족 안에서 우리는 다음 행동을 하기보단 가만히 기분을 만끽한다.

이러한 만족 기간이 너무 길다면 생존에는 큰 방해가 될 것이다.

기분 좋음이 사라져야 다음 행복을 쟁취하고자 행동을 할 수 있다.


한편 이러한 특징으로 볼 때, 행복이란 우리가 특정 활동을 하도록 이끄는 무언가라고 해석할 수 있다.

예를 들어 그 옛날, 사나운 멧돼지를 사냥하고자 인간이 기꺼이 중노동을 할 수 있던 이유는 잘 구워진 돼지 바비큐를 먹었던 경험이 너무나도 행복했기 때문이다.

긴 시간 고생 끝에 기름이 뚝뚝 흐르는 고기를 뜯으며 다음에는 더 큰 놈을 잡아야겠다는 다짐을 했을 것이다.

행복이란 결국 다음 행복을 찾게 하기 위해서 수고로움을 견디게 만들어 주는 하나의 장치이다.

그 역할을 위해서 이전의 행복은 적절한 타이밍에 퇴장해주어야 한다.

때문에 무언가 대단한 것을 이룬다고 해서 그 성취를 기점으로 우리가 매우 큰 행복감과 영원한 안정감을 얻을 순 없다.

영원한 행복을 상상하는 것이 성취를 향한 하나의 동기가 될 순 있겠지만, 그것은 분명 허상이긴 하다.     


성공해도 행복이 생각보다 긴 시간 지속되지 않음을 알았다면, 이제부터는 성공을 위해 희생하는 일상의 행복과 성취의 유한한 행복을 저울질해봐야 한다.

의도적으로 혹은 직관적으로 이런 저울질을 해보는 사람들 중 많은 이들이 일상에서의 행복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같다.

하지만 이런 저울질이 끝났다고 해도 막상 행복을 삶의 목표로 하는 것은 매우 복잡하고도 어려운 일이다.

살아가면서 추구할 단 하나의 가장 우월한 가치로서 행복이 적합한지를 깐깐한 시선으로 평가를 하다 보면 이전에 보지 못했던 문제점이 보인다.

생각해 볼 만한 문제점들을 순서대로 짚어보고자 한다.

우선 행복이란 것이 정말 통제가능한 존재인지가 의문이다.

목표라는 것은 계획으로 통제해 그 계획 끝에 성취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행복이라는 것이 만약 예상치 못하게 찾아오는 것이라면 계획과 목표의 대상으로 두는 것은 적합하지 않다.

행복은 두 가지 이유 때문에 통제하기 어려운 존재처럼 느껴진다.


행복이 통제되기 어려운 첫 번째 이유는 그것이 곧 감정이기 때문이다. 

경험을 통한 주관적인 느낌 혹은 감정은 다양한 변수에 너무나도 쉽게 영향을 받는다.

그래서 감정을 삶의 목표로 두고 그 빈도나 강도를 늘리고자 계획을 짜도 의도한 만큼 얻을 수 없다.

행복을 삶의 목표로 두고자 계획을 만들고 실천하는 구체적인 과정을 예상해 보면 이런 행복의 특성이 쉽게 드러난다.

행복을 삶의 목표로 설정하면 우선 자기 탐색을 통해 자신이 행복을 느끼는 장면들을 특정해 낼 것이다.

그리고 취미 생활, 좋아하는 사람과 만나기, 좋아하는 곳 가기 등 행복을 주는 행동이나 상황을 늘려서 행복을 느끼는 빈도나 크기를 늘리는 게 행복을 삶의 목표를 두고 계획을 세우는 일반적인 방법일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찾아낸 일을 한다고 해서 실제로 매번 행복을 느끼는 것은 아니다.

아무리 좋아하는 일이라도 하다 보면 질리기도 하고 때로는 하기 싫은 날도 있다.

비 때문에 그렇게 좋아하는 축구를 못해서 오히려 불행해졌다고 느낄 수도 있다.

행복을 주는 일에 점점 적응한 것일 수도 있고, 그저 컨디션이 나쁜 날일수도 있다.

이런 식으로 행복은 감정이기에 주변과 나 자신의 기복에 큰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마음 아프게도 이런 경험을 통해서 행복을 삶의 목표로 잡은 이들 중 일부는 오해와 좌절에 빠진다.

자신이 진정으로 좋아하는 게 없는 사람이란 생각에 빠지거나 그래도 겨우 찾아낸 삶의 목표를 좇아야 한다는 생각에 이제는 별로 즐겁지도 않은 취미에 시간을 과하게 투자하기도 하며 혹은 자신은 애초에 행복할 수 없는 비관적인 사람이란 오해에 빠진다.

하지만 이는 주관적인 경험이자 감정 상태가 통제되기 어려워서 생긴 당연한 일이다.

많은 것에 영향받기 쉬운 “감정을 느끼는 빈도”가 내 삶의 유일한 목표가 될 수 있을까?

내 삶이라는 집이 거친 세상의 날씨에 쉽게 무너지는 지푸라기로 구성된 집이어도 괜찮을 것일까?

확실하지도 않은 것을 믿고 미래로 나아갈 자신감이 생길 수 있을까?


두 번째로 행복은 의도하지 않은 적응이나 중독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에 통제하기 어렵다.

차를 모는 느낌이 너무 좋아서 마구 이끌다가 의도치 않은 도착지에 가게 되었다면 우리가 그것을 통제한다고 할 수 있을까?

마찬가지로 행복을 마구 느꼈는데 그 결과가 특정 행동에 대한 중독과 그로 인한 여러 문제라면 우리가 과연 행복을 온전히 통제한다고 할 수 있을까?

더 나아가 좋은 삶의 목표를 가졌다고 할 수 있을까?

삶의 목표로서 행복의 빈도나 양을 늘리고자 행복을 과하게 추구하다가 특정 행동에 중독이 될 위험이 있다.

꼭 불법적인 것이 아니더라도 합법적인 선 안에서라도 우리는 많은 것에 중독이 되곤 한다.

행복하기 때문에 매일 야경을 바라보며 조금은 과할 수도 있는 양의 술을 마셔도 되는 것일까?

행복하기 때문에 성인병을 걱정하지 않고 입에 설탕덩어리들을 마구 넣어도 되는 것일까?

명확한 기준이 없다면, 행복을 추구한다며 하는 행동들은 자신의 삶에 오히려 부정적인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


살다 보면 매번 의도한 상태에서 의도한 행복을 느낄 수는 없는 법이다.

그렇게 까다로운 것을 삶의 목표로 두어도 되는 것일까?

우리가 삶의 목표를 만드는 이유는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미래에서도 길잡이가 되어줄 기준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때문의 삶의 목표는 어떤 미래가 와도 성취할 수 있다는 믿음과 그것이 분명 삶에 가치 있다는 믿음을 줘야 한다.

믿음이 있어야만 미래에 대한 불안을 뚫고 현재를 충실히 살며 목표를 향해 나아갈 수 있다.

그런데 통제 불가능한 행복이란 놈이 삶의 목표가 되어도 될 것인가? 

내 통제와 상관없는 로또 당첨이 삶에 있어서 가벼운 희망이나 유흥거리에 불과하지 삶의 목표가 되기에는 어려운 것처럼 말이다.

물론 우리는 너무 이성적이고 똑똑해서 행복을 통제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행복을 삶의 목표로 하고자 할 때 고민해야 할 것들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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