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황냄새 짙은 활화산을 걸으며...
대만 양명산 트레킹
서울의 진산(鎭山)이 북한산이라면 대만 타이페이의 진산은 양명산(해발 1120m)이다. 그래서 일제강점기 대만에서는 처음으로 국가공원으로 지정된 산으로 정확하게는 칠성산을 중심으로 해발 1000m의 산 10여개(우리나라 기준으론 봉우리)를 품고있는 거대한 산이다.
양명산은 또 아직도 분기공(Fumarole)을 통해 유황가스를 내뿜고 지금도 물이 끓어 오르며 화산분화가 일어나고 있는 활화산이다. 화산구, 화산호, 원뿔형 화산체, 온천 등 화산유적이 완벽하게 보존됐다.
오죽하면 양명산 중턱에 위치한 들머리 이름이 유황분출구를 뜻하는 소유갱(Xiaoyoukeng, 小油坑)이다. 그래서 언제 마그마가 분출될지 모른다.
무사히 양명산을 완주한 마힐로 회원들은 ‘다행이네’라며 가슴을 쓸어내릴 수도 있지만 미리 알았어도 걱정할 일은 없다. 18세기 이후 화산이 폭발한 적은 단 한번도 없기 때문이다. 물론 마그마가 예고하고 솟아오르지 않겠지만...
지난달 19일 오후 소유갱에 도착했을때 하늘은 더할 나위없이 맑고 섭씨 27도로 우리나라의 초여름 기온이지만 습도가 높았다. 들머리부터 스멀스멀 솟아오르는 연기와 강한 유황냄새 때문에 활화산의 스릴을 맛볼 수 있으리는 기대감이 차올랐다.
양명산은 코스 정비가 잘돼있고 멀리서보면 부드럽고 완만해 다소 만만해보이지만 막상 올라가면 의외로 가파라 초보자에겐 벅찬 산이다. 그래서 반드시 산행 허가를 받은 뒤 자격증을 갖춘 현지 가이드를 안내를 받아 올라가야 한다.
산은 돌계단이 70%이상 깔려있어 거칠고 험하지 않은 대신 초장부터 정상까지 꾸준히 오르막이라 함께 간 회원들이 진땀깨나 흘렸다. 더구나 날씨조차 더워 체질상 땀을 별로 흘리지 않는 나도 모처럼 기분좋게 땀에 흠뻑 젖었다.
산죽이 2~3m가 넘어 밀림을 방불케하는 산죽 숲 사이로 난 등산로를 따라 정상인 칠성산 주봉으로 올라가다보면 곳곳에서 연기처럼 피어오르는 유황가스를 볼 수 있다. 고도가 높아질 수록 산 주변의 광활하게 펼쳐진 '뷰'도 장관이다.
칠성산 주봉의 정상이정표는 우리나라처럼 '정상석'이 아니라 단순하고 소박한 '정상목'이 서있다. 하늘은 푸르고 구름도 이채로웠지만 봉우리 주변에 안개가 은은하게 깔려 다소 몽환적인 분위기였다.
칠성산 동봉을 거쳐 날머리인 냉수갱으로 내려가는 하산길도 일품이다. 바람에 흔들리는 키 큰 억새가 융단처럼 펼쳐진다. 아열대기온이라 덥긴 했지만 시각적인 느낌은 영락없이 가을이다.
양명산을 국내 명산과 비교하는 것은 부질없는 일이다. 전혀 다른 개성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이 산엔 나무가 없다. 대신 산의 정상부 주변이 온통 산죽과 억새로 뒤덮여 있어 걷는 내내 독특하고 낭만적인 풍경을 연출한다.
여기에 산 정상인 칠성봉과 동봉을 연결하는 능선이 영남 알프스의 간월재처럼 유선형으로 아름답게 이어져 있고 동봉을 지나 반대편 하산길엔 멀리 타이페이 시내를 조망한다.
특히 마힐로는 오후 3시에 출발해 정상을 밟은 다음 땅거미가 내린 저녁에 내려와 불빛이 찬란한 '도시의 야경'을 감상할 수 있는 보긴 드믄 기회를 가졌다. ‘살아있는 화산’ 양명산만 가질 수 있는 매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