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부상들의 애환이 담긴 잊혀진 ‘비밀의 숲’

강원도 인제 새이령 트레킹

by 박상준

지금은 사람들이 걷기 위해 먼 길을 찾는 시대다. 목적지에 가려면 굳이 걸을 이유가 없다. 자동차라는 문명의 이기를 이용하면 된다. 사람들은 각박하고 틀에 짜인 도시에서 벗어나 사람의 때가 타지 않은 곳, 공기 맑고 풍광 좋은 곳을 찾아가 걷는다.

'옛길'이 각광을 받는 이유는 이 때문이다. 어수선하고 고단한 삶의 편린(片鱗)들에 사로잡혀 있는 사람들에게 원시적인 풍광은 헝클어진 머릿속을 정리해주고 마음을 차분하게 가라앉히며 잊혀진 감성을 살아나게 한다.

오로지 자연에 몰입하며 걷고 싶다면 강원도 인제와 고성을 잇는 새이령길만큼 좋은 길도 흔치 않다. 마치 숲 속의 정령들이 살아있을 것 같은 호젓하고 조용한 길이다.

새이령은 조선시대까지만 해도 대간령 혹은 소파령(所波嶺)으로 불리었다. 샛령이라고도 하는 새이령을 한자로 표기하면서 간령(間嶺)이 되었고, 큰 샛령(새이령)과 작은 샛령(새이령)으로 구분해 대간령·소간령이 되었다.(한국 민속 대백과사전). 새이령이라고 부른 것은 진부령과 미시령의 사이라는 뜻에서 유래된 것으로 추정된다.

(트레킹화를 벗고 건너면 길이 시작된다)


그 길을 찾아 떠나던 날 하필 전날부터 굵은 초가을 장대비가 밤새 쏟아졌다. 하지만 박달나무 쉼터에 도착하자 하늘은 맑게 갰다. 쉼터 앞 들마루에 앉아있는 70대 초반의 쉼터 주인에게 새이령 가는 길을 물으니 아침부터 술이 얼큰하게 취한 노인은 뜬금없이 산행객들이 예의가 없다며 타박했다. 가게 앞에서 하차를 하면 담뱃값이라도 줘야 하지 않느냐며 일갈했다. 쓴웃음이 나왔다. 

새이령은 옛 부터 강원도 영동지방에서 영서지방으로 통하던 옛길이다. 새이령 출발지점인 인제시 북면 박달나무 쉼터 앞에는 6차선 도로가 만들어져 자동차들이 굉음을 울리며 쏜살같이 달려간다. 찻길이 생기니 옛길은 기능이 사라졌다. 지금은 상상하기 힘들지만 조선시대엔 그 좁디좁은 새이령길을 오가며 보부상들이 특산물을 등짐에 지거나 말 등에 태워서 날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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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자동차 도로가 뚫리면서 새이령길은 적막한 '비밀의 숲'으로 바뀌었다. 깊숙한 골짜기에 자리 잡았던 마장터 주변 마을 사람들은 집터의 흔적만 남기고 어디론가 떠났다. 그리고 그 길은 오랫동안 사람들의 발길이 뜸해지면서 다시 원시적인 생명이 살아 숨 쉬는 자연으로 돌아갔다.

하지만 새이령은 쉽게 문을 열어주지 않았다. 들머리부터 난관이었다. 밤새 내린 비로 길 입구 앞에 버틴 계곡에 물이 불어나 등산화를 벗고 바지를 올리고 건너든가 아니면 미끄러져 넘어질 각오를 하고 물속에 살짝 잠긴 이끼 낀 바위를 딛고 건너야 했다.

번거롭긴 했지만 그 흔한 시멘트 다리나 통나무 다리를 걸쳐둔 것보다는 훨씬 나았다. 난감해했던 일행들도 정신없이 계곡을 건넌 뒤에는 뿌듯한 표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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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엽송, 졸참나무, 단풍나무가 하늘을 가린 채 빽빽이 들어선 길은 좁고 어두웠다. 비를 잔뜩 머금은 숲 속에선 알싸하고 진한 향내를 풍겼다. 한적한 숲 속에서 자루를 짊어진 후줄근한 복장의 산꾼들이 내려왔다. 새벽에 버섯과 약초를 채취하고 돌아가는 심마니들이었다. 한참을 걸어 작은 샛 령을 지나 억새밭 사이로 오두막집이 나왔다. 마장터였다. 말을 거래했던 장터였다고 하는데 깊은 산속에서 웬 장터인가 싶었다. 누군가 사는 것 같기는 한데 인기척은 없었다.

마장터에서 계곡을 수차례 건너며 적막한 숲 속 오솔길을 한 시간여 걷다 보니 새이령이 나왔다. 진부령-마산-병풍바위봉-천치봉-새이령-신선봉-상봉-샘터-성인대-미시령 옛길로 이어지는 백두대간 24구간에 포함된 고개다.



이 때문인지 새이령을 내려오는 길에 등에 야영 장비를 맨 백패킹(Backpacking)하는 젊은이들이 몇 팀 무리를 지어 올라왔다. 그 무거운 장비를 지고 새이령과 접한 마산봉(1058m)과 신선봉(해발 1204m)을 오르는 것이 쉽지는 않겠지만 한편으론 그 젊음이 부러웠다.  

새이령길은 트레킹 코스마다 도보꾼들의 편의를 위해 만들어둔 나무데크나 돌다리, 나무 쉼터와 같은 인공구조물이 없는 원초적 풍경을 간직한 길이다. 그럴듯한 폭포도 없고 전설을 담은 용소나 하늘 높이 깎아지른 절벽도 찾을 수 없다. 비탈길에는 커다란 나무가 넘어진 채 누워있다. 매우 밋밋하고 심심한 길이다. 하지만 시간이 멈춘 오지의 정경이 살아있다. 그 숲길을 벗어나 고개를 들면 하늘이 새롭다.   



*코스 / 인제 북면 박달나무 쉼터~마장터~새이령~마장터~쉼터(왕복 10km)


*tip / 강원도 인제군 북면 박달나무 쉼터가 출발지다. 내비게이션을 치면 바로 뜬다. 하지만 새이령으로 진입하는 길은 잘 찾아야 한다. 처음 만나는 계곡을 잘못 건너면 엉뚱한 곳에서 헤맬 수 있다. 이곳에서 출발해 새이령 까지는 왕복 10km 안팎이다. 오지라지만 코스는 힘들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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