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음과 눈으로 직조된 한탄강 얼음길 속으로.
강원도 철원 한탄강 얼음길 트레킹
“한 겨울에는 철새도 날아가다가 얼어 죽어 떨어지는 곳인데~~~”
강원도 철원 한탄강 얼음길을 간다고 하니 누가 이런 농담으로 기를 팍 죽였다.
맞는 말이다. DMZ(비무장지대)와 붙어있는 철원은 폭포도 얼음으로 만들 만큼 우리나라에서 가장 추운 고장이다. 지인의 유머는 나름 근거도 있다.
엊그제 신문에는 한탄강 부근에서 ‘재두루미’가 쓰러져 있는 것을 발견했는데 부리가 얼어붙었다가 기사가 실렸다. 평소 습관대로 강물에 부지를 담그고 있는 도중에 얼어 아무것도 먹지 못했단다.
다행히 구조되긴 했지만 얼음덩어리가 부리에 매달려 날지도 못한 재두루미는 얼마나 춥고 허기졌을까.
(한탄강 승일교)
일 년 중 가장 춥다는 대한(大寒)이다, 칼바람이 얼굴을 찌르고 발을 동동 구르게 하는 최강 추위에 한탄강을 찾았다. 이때가 아니면 한탄강 얼음길을 걸을 수 없다.
떠나기 전부터 강추위를 걱정했다. 강은 눈 덮인 빙판이지만 날씨는 포근하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너무 이율배반적인 욕심이다.
그런데 우리 일행이 찾아간 주말 그런 앞뒤가 안 맞는 상황이 전개됐다. 들머리인 태봉대교 주차장에서 내려 안내소를 찾아갔더니 자원봉사를 나온 아주머니가 반기면서 한마디 했다.
“참 좋은 날 왔네요. 이번 주 내내 동장군이 찾아와서 강은 꽁꽁 얼어붙었는데 오늘 날씨는 확 풀렸어요~~”
도무지 한겨울 철원답지 않게 한파주의보가 무색한 포근한 주말, 그런데 트럭이 지나가도 끄떡없는 강, 그렇게 신비한 겨울왕국으로 들어섰다.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푸르른 날이었다.
(추상화처럼 독특한 모양의 주상절리)
철원이 ‘혹한의 동토(凍土)’라고 불리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강추위 때문에 사람들은 한 겨울에 철원 한탄강을 간다. 청정한 자연과 생태의 신비를 간직한 한탄강이 대한을 전후해 꽁꽁 얼어붙어 강 위를 걸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 길은 색다른 재미를 준다. 흔히 알고 있는 강은 멀리서도 보인다. 하지만 한탄강은 마른논이 갈라지듯 길게 패인 침식지형이라서 강 쪽 가까이 다가가야 벼랑 위에서 강물이 흐르는 것을 볼 수 있는 협곡이다.
내륙지방에서는 거의 유일하게 용암 분출로 형성된 현무암 지형이 1억 년 전 태고적에 쪼개져 강을 형성했다.
그래서 얼음강을 걸어야 까마득한 협곡에 솜씨 좋은 장인이 새겨놓은 듯한 주상절리와 소금기둥처럼 얼음으로 뒤덮인 빙벽도 만나고 웅장하고 경이로운 고석바위도 감상할 수 있다.
마치 음영과 질감이 뚜렷한 추상화처럼 독특한 형태의 바위 절벽을 바라보면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고석정 앞 풍경)
코스 중간 ‘한국의 콰이강 다리’로 불리는 승일교 아래 거대한 얼음폭포는 대한의 추위에만 감상할 수 있는 웅장한 풍경이다. 길이 120m, 높이 35m의 승일교는 1948년 이곳이 북한 땅이었을 때 북한이 착공해 휴전 이후 10년 만에 남한 정부에서 완성한 남북 합작 다리로 한가운데를 기준으로 좌우 다리 모양이 다르다. 승일교 아래에서 바라보는 얼음폭포는 비경이다.
한탄강 얼음길의 하이라이트는 누가 뭐래도 철원의 옛 땅을 기억하는 외로운 바위 고석정(孤石停)이다. 높이 15m의 화강암 바위에 누각을 올린 고석정 주변은 한탄강 협곡 내에서 기반암인 화강암과 현무암에 의해 부정합(不整合)으로 덮여있는 모습을 특징적으로 보여준다.
무엇보다 고석정과 한탄강이 조화를 이룬 수려한 풍경과 눈이 내리면 빙판을 캠퍼스 삼아 눈꽃을 그린 것처럼 강을 아름답게 수놓는다. 이 때문에 신라 진평왕과 고려 충숙왕을 비롯 숫한 시인^묵객이 먼 길을 자청해 이곳을 찾았다.
하지만 천혜의 자연은 유구하겠지만 얼음강은 얼마나 걸을 수 있을까. 지구온난화 현상으로 적설량도 줄었지만 이젠 꽁꽁 얼어붙은 강을 보기도 쉽지 않다.
*코스 / 태봉교~송대소(주상절리 절경)~마담 바위~승일교~고석정(편도 6km)
*tip / 한겨울 한탄강 얼음길을 걸으려면 미리 문의(철원군축제위원회 033/455-7072)하고 걸어야 한다. 강이 얼어붙는 날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다만 한겨울을 제외한 나머지 계절엔 강 위를 걸으며 주변 풍광을 감상할 수 있도록 부교를 설치해 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