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친 눈보라에 더욱 매혹적인 순백의 갯벌.

전북 부안 마실길 6코스 작당 마을~모항 갯벌 트레킹

by 박상준

폭설이 내린 주말 변산반도 바닷가는 순백의 세상이었다. 함께 간 친구에게 우리가 가는 ‘마실길’이 ‘작당 마을’부터 시작한다고 하니까 씨 익 웃었다. ‘작당’이라는 어감이 주는 묘한 뉘앙스 때문이다.

하지만 다른 친구는 걱정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차창 밖이 안 보일 만큼 눈이 쏟아졌기 때문이다. 살짝 당황스럽긴 했지만 차를 돌리기엔 이미 늦었다. 전북 부안 마실길 6코스(쌍계재 아홉 구비길)의 들머리인 작당 마을이 어느새 지척이었다.

차로 부안 바닷가 도로를 달리다 보면 크고 작은 어촌 마을이 줄지어 있다. ‘작당 마을’도 부안의 여러 어촌마을 중 하나다. 작당이라는 말은 사전적으로 ‘떼를 지어 도모함’이라는 의미다. 하지만 이곳 마을의 작당은 그런 뜻과 관계없다.

(자연휴양림으로 접어드는 숲길)


차에서 내리니 온 세상이 온통 하얀색이었다. 이름과 어울리지 않게 어촌 풍경은 매혹적이었다. 눈에 덮여 언뜻 바다를 찾기도 쉽지 않았다. 전형적인 어촌 마을답게 어선도 서있고 소금밭도 보이고 갯벌도 펼쳐졌다.

끝없이 이어진 갯벌의 눈이 내린 풍경을 보느라 눈이 시렸다. 유심히 바라보니 멀리 하얀 갯벌과 바다가 만나는 지점은 마치 인공조명을 비춘 듯 금빛으로 빛났다. 짜릿한 풍경이었다.

갯벌과 염전을 사이에 둔 둑을 지나 바닷가에 접해 있는 야산으로 접어들었다. 전날 밤부터 방송에선 한파와 폭설로 온 나라가 난리 난 듯 호들갑을 떨었지만 막상 해변은 포근했다. 바람도 불지 않았다.

산언덕에서 바라본 갯벌은 뽀얀 이불을 덮어놓은 것처럼 눈이 쌓여 한 폭의 수묵화를 보는 듯했다. 숲은 청정했다. 길은 아무도 밟지 않는 눈이 수북이 쌓여있었다. 하긴 이 날씨에 누가 이 길을 걸으려 하겠는가.

그 길에 발자국을 찍으며 야산을 타 넘으니 염전을 끼고 울창한 숲이 기다리고 있었다. 쌓인 눈 때문에 보이지 않는 길을 찾고 있는데 맨 앞에 가던 친구가 환호성을 질렀다. 대나무 숲길이었다. 대나무는 거친 바닷바람에 질린 것처럼 더욱 푸르렀다. 갑자기 바람이 불자 대나무 잎 새에 쌓여있던 눈이 흩날렸다. 가볍게 탄성이 쏟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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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에 접한 쉼터)


터널처럼 길게 이어진 조용한 대밭 숲을 벗어나니 서해바다를 끼고 걷는 산비탈이 나타났다. 발이 눈 속에 쑥쑥 빠지는 길은 제법 가팔랐다. 하지만 바위를 때리는 듯 경쾌하게 들리는 파도소리가 다리에 힘을 실어주었다. 머리를 맑게 하는 명징 한 소리였다.

코스 중간지점인 금강가족 타운에 있는 팔각정에서 잠시 보은병에 든 따뜻한 커피를 마시며 한숨을 돌렸다. 산과 산 사이에 U자형으로 들어 선 금강가족 타운 앞은 곧바로 백사장을 낀 해수욕장이었다. 이국적인 펜션촌이 조성될 수밖에 없는 환경이었다. 진한 커피를 음미하며 가만히 앉아 바라만 봐도 시간 가는 줄 모를 만큼 마음을 평안하게 하는 풍경이었다.

이곳에서 야트막한 산을 타 넘으니 긴 소금밭 뚝을 건너 모항 갯벌 해수욕장이 눈에 들어왔다. 모항은 내변산과 이변산이 만나는 지점에 있어 산악경관과 해양경관이 조화를 이룬 것이다. 작고 아담한 백사장과 울창한 송림이 있는 모항은 한낮인데도 적막감이 감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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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를 향해 터널을 이루고 있는 조릿대 군락)


내변산 쪽의 멋진 해송 숲 위로 떠오르는 일출을 감상할 수 있고 바다에 잠기는 일몰 역시 장관이라는 지만 대설주의보가 사람들의 발길을 붙잡았다. 걷기를 마치니 다시 하늘이 심상치 않았다. 해안절벽에서 바라본 바다는 거칠게 출렁거렸다. 파도소리도 요란했다.

늦은 점심을 먹기 위해 이동하는 도중 내리기 시작한 눈은 격포항에 도착하자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쏟아졌다. ‘눈 폭탄’이라는 말은 이럴 때 쓰는 말이다. 부안을 대표하는 절경인 적벽강엔 사람들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황량한 바닷가에 눈보라가 매섭게 몰아쳤다. 격포항에 정박 중인 수백 척의 어선이 눈에 덮였다.

세찬 눈발에 서있기 조차 힘들어 격포항 맛집으로 소문난 ‘군산식당’으로 자리를 옮겼다. 꽃게탕과 갑오징어 무침이 일품인 충무공정식을 정신없이 흡입한 뒤 서서히 눈에 묻히고 있는 부안을 떠났다. 변산반도 겨울바다를 걸으며 모처럼 ‘진짜 겨울’과 제대로 된 눈을 체험한 흔치 않은 시간이었다.



*코스 / 모항 갯벌마을 ~국립 변산 자연휴양림~왕포(7.2km)


*Tip / 변산마실길 6코스의 이름은 쌍계재 아홉 구비길이다. 모항 갯벌 해변에서 시작해 황포마을까지 7.2km가 풀코스다. 난이도는 중상이다. 비교적 쉽고 풍광이 수려한 코스만 걷고 싶다면 모항 갯벌체험장~작당 마을 코스를 권한다. 백사장에 피서객들로 붐비는 한여름만 피한다면 어느 계절에 가도 실망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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