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틀 무렵, 해가 뜨기 직전의 고요한 이 시간은 유난히 조용하다. 나의 기원, 나의 시작을 찾아가는 여정에 있어 이러한 시간은 아무래도 스스로를 돌아보는 귀중한 시간일 것이다.
사람들이 당연히 나라는 존재를 인지하고 스스로를 인격으로 생각하는데 각자의 기억이 시작하는 지점은 분명 다를 것이다. 그렇다면 나의 시작은 언제일까?
천천히 내가 기억하는 과거로의 여행을 떠나보자. 회사, 전직장, 여행, 대학원, 대학교, 군대, 입시, 고등학교, 중학교, 영국문화원, 초등학교, YMCA. 흐릿하지만 나의 기억이 드문드문 존재하는 것이 느껴진다. 이중 가장 마지막은 YMCA인데, 아마 초등학교 입학전. 내가 6~7살 무렵쯤의 기억이 아닌가 싶다. 더 어린 기억도 분명 존재하겠지만 그 기억이 내가 생각하는 것이 맞는지 추측하기엔 내가 가진 내 사진이 그리 많지 않았다.
어렸을때 누나들과 찍었던 사진들을 보면 나는 내가 모르는 공간에서 당당히 두발로 서서 자기주장을 펼치며 사진에 존재했지만, 그 시절의 나는 내 기억에서 휘발유처럼 증발해 버린 것이다.
모두가 그러했는지, 아니만 나만 그러한지는 모르나 나의 기억은, 그리 길지 않다고 생각한다. 아마 시간이 더 흘러 내가 나이를 더 먹게 된다면 기억 또한 그만큼 길어지는지, 아니면 그 시간만큼 나의 시작이 흐릿해 지는지 알 수 없지만 더 늦기전에 이렇게 나를 남겨둔다면 내가 나를 돌아보는 시간이 있지 않을까?
어렸을때 나의 인맥은 곧 엄마의 인맥이었다. 내가 친구를 사귀기보다 엄마가 친했던 사람들의 자녀들과 친해졌다. 아마, 엄마도 나를 데리고 다니다 보니 그와중에 만나는 사람들과 친해지지 않았을까? 하여튼. 내 어린시절은 지금과는 사뭇 다른 풍경이었다. TV에서나 볼 법한 아주 낡은 텔레비전, 그것도 화면은 둥글고 화면 뒤로 길죽하게 뻗은 디자인의 바로 그 옛날 텔레비전이다. 그리고 어른들도 개인 전화는 없었으며 집전화가 전부인 시대였다. 삐삐는 있었던 것 같은데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는다. 아빠의 낡은 검은색 삐삐가 생각나기는 하지만 그당시 나는 그런것 따위는 중요하지 않았었다.
지금은 연락하지 않지만 소식은 가끔 들려오는 이름이 몇몇 있고, 엄마는 아직도 그 부모님들과 친하게 지내고 계시기도 한다. 지금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 속에서 어렸을때의 우리는 집에 있는 전화로 상대에게 전화를 해서 부모님께 안부를 묻고 친구를 찾아 약속을 잡았다. 당시에는 아이들을 좀 더 풀어놓고 키우는 경향이 있었던 것 같다. 흉흉하게 묻지마 범죄가 일어나지 않았고(아니면 보도가 안되어서 그런 분위기가 물씬 풍기지 않았다거나) 아이들이 어느정도는 알아서 잘 하겠구나 하고 믿어주는 경향도 있었다. 그래서 우리는 보통 그렇게 조금 멀리 떨어진 놀이터에서 만나기로 하고 종종 만났던 것으로 기억한다.
어린시절 놀이터는 재밌는 공간이었다. 아무것도 없이 흙만 있어도 재미있을 때였는데 각종 기구들이 위치한다? 시소만 타도 세상 다 가진 재밌는 놀이를 할 수 있었다. 그때는 누가 리더이고, 누가 주도하는지는 모르지만 어렸을때의 나는 정말 앞에 나서는걸 좋아했는지 내가 하고 싶은 걸 주장하고 관철시켜서 주도했다. 내가 제일 좋아했던 놀이는 얼음-땡으로, 누구나 으레 그렇듯 술래를 놀리면서 도망다니는 재미가 아주 좋았었다. 그러다보면 자연스럽게 넘어지고 부딪히면서 피가나는 것은 일상이긴 했는데, 피를 흘리면서 집에 돌아가면 조심좀 하라면서 혼나기는 해도 나의 상처가 누구때문이며 상대를 질책하는 그런 문화는 없었던 것 같다. 아니면 크게 다치지 않아서 그랬을 수도 있고 말이다.
그당시의 나는 텔레비전에는 크게 관심이 없었다. 어린이 프로그램이 많지도 않았고, 지금처럼 유투브로 각종 컨텐츠가 넘쳐나지도 않았다. 그랬기에 오히려 상상력을 발휘 할 수 있는 환경이 있었으며 영상매체에 집착하기 보다는 밖에 나가서 친구를 만나서 뛰어노는게 더 자연스러운 시절이었다. 요즘 조카들을 보면서 텔레비전, 컴퓨터, 핸드폰에 집착하는 모습을 보면 내가 어렸을 때랑 종종 비교해보곤 한다. 물론, 시대가 바뀌었던 만큼 다름은 인정하지만 내가 아무것도 없던 시절에서 이런 정보화시대까지 발전하면서 겪은 변화만큼 많은 변화를 그 아이들이 경험하면 어떤 삶을 살지 기대되고 걱정도 되기도 하는 것도 사실이다.
내가 MZ인지 걱정하는 상황에도 사실 이러한 배경을 깔고있다. 나는 90년대생. 특히 나처럼 90년에 태어난 친구들이 과도기적인 중간에 껴서 앞뒤를 모두 깊이 경험하고 체화하면서 큰 세대라고 생각한다. 물론 그뒤에 태어난 사람들도 각종 경험들이 그러했겠지만, 어쨌든 가재는 게 편이오, 초록은 동색이라 내가 생각하는 감정이 그러하다 라는 것이니 다른 분들은 큰 오해를 가지지 않았으면 한다.
내 오랜 기억속에는 나는 장사를 하고있었다. 잘 생각해보면 확실히 초등학교에 입학하기도 훨씬 전의 어느날이었던 것 같다. 아주 더운 여름. 나는 무엇 때문인지 모르지만 자석을 팔았다. 우리집 장롱속에는 복대가 하나 있었고 그 복대 속에는 투박하고 동그란 검은 자석들이 아주 많이있었다. 나는 엄마의 동의를 구해서 내가 그것을 팔기로 했고, 아파트 1층 경비사무실 앞에 돗자리를 펴고 거기서 자석을 팔았다. 어디서 이런 아이디어를 얻었는지는 기억나지 않았다. 다만, 확실한건 내가 장사의 결과를 가지고 무언가 하고 싶었다는 것이었다. 무엇이었을까, 아무리 머리를 쥐어짜도 생각나지 않는 그 시절이 너무 궁금하다.
경비실 1층에서 바라보는 지금의 지상주차장을 떠올리면 구조는 바뀌지 않았지만 새삼 정말 다른 곳이라는 생각이 든다. 지금은 차가 더 많고(훨씬 많다) 뭔가 차가운 느낌이 강한 장소였다면 당시에는 차도 많이 없었으며, 뭔가 따뜻한 필터를 낀 것 마냥 색상이 온화하게 느껴졌다. 기억의 미화라는 것이 존재한다고 하지만 이런식으로까지 회상될 정도로 당시를 생각할 줄은 몰랐는데, 정말로 나에게는 그당시의 풍경이 빛바랜 사진처럼 느껴졌다.
지금 생각하면 내가 왜 그랬나 싶었지만서도 나는 그때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호객 행위를 해서 자석을 팔았었다. 가격은 어린시절 나에게는 타당하고 합리적이었고 당사려는 분들은 필요없는 물건이었을 지라도 조그마한 꼬마가 물건을 판다는게 귀여워 조금씩 사시거나 아니면 다른 물건으로 물물교환을 했었다. 그렇게 자석을 판 나는 그것으로 무엇을 했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지만 그래도 아마 나름 행복한 곳에 쓰지 않았을까 싶다.
어렸을때는 확실히 아주 활발하게 지내왔던 나였지만 그래서 그런지 어린 시절의 기억은 정말 흐릿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