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에도 있는지는 모르지만, 내가 어렸을때 나는 유치원에 다닌적이 없었다. 대부분 외벌이 가정이 대세였기 때문에 어머니들이 아이들을 케어하는 것이 당연했었기 때문이었다. 그렇지만 왜 그런지는 모르지만 나는 유치원과 비슷하게 YMCA를 다녔다. 지금은 그냥 그런 곳이구나 라고 싶었지만 나는 내가 대학생때 까지 YMCA가 일종의 유치원의 옛날 이름이라고 생각했던 기억이 있다.
하여튼, 내가 YMCA를 다니고 있을 무렵은 아마 1998년보다 이전의 시대였을 것이다. 내가 그때쯤 초등학교에 갈 나이이기 때문에 얼추 맞을 것이다. IMF가 터지기 전의 대한민국. 나는 사실 그때의 정치, 경제, 사회는 모른다. 당연하지만 그걸 그당시에 알 정도면 이미 애늙은이 아니겠는가. 하여튼 내가 기억하는 당시의 모습은 브라운관 TV, 가정에 비치된 가정용 전화기(무선도 아니었던 것 같다), 촌스러운 꽃무늬 타일이나 벽지의 인테리어, 삐삐(아빠만 가지고 있었다) 같은 것들이 생각난다.
모든 전화는 유선으로만 이루어지고, 볼일이 있으면 이미 알고있는 번호로 전화를 걸어야 했던. 아마 그당시에는 영화에서 볼 법한 두꺼운 전화번호부가 존재했던 것으로 생각난다. 하여튼, 그런 시대였다. 정보가 어느정도 공개가 되었지만 그래도 사람 살기 팍팍하지 않은, 한국에 정이 있다고 느껴지는 시절이었던 것 같다. 적어도 스팸문자와 무분별한 광고 텔레마케팅은 없었던 것 같으니깐!
내가 왜 이런 이야기를 했냐면, 당시 YMCA는 조금 멀리 떨어져 있었던 걸로 기억난다. 그당시부터 지금까지 같은 곳에 살았기에 지금 위치를 안다면 가깝네, 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어려서 세계가 좁던 나에게는 굉장히 먼 거리였다. 그리고 YMCA는 커다란 로고가 박힌 버스를 운용했으며, 당싱 거기에 가던 사람들은 그 버스를 기다려 타고 가곤 했다.
내가 기억하는 활동은 사실 몇 가지가 없다. 친구들의 이름도 기억나지 않고 말이다. 내가 기억하는건 꽤 넓은 실내 공간과, 지금은 보기힘든 우레탄? 같은걸로 만든 녹색의 타일들을 깔아서 폭신폭신한 바닥이었다는 것이었다. 꽤 쌀쌀한 겨울에도 문이 열리면 우루루 뛰어다니면서 금세 열기가 올라 추운줄 모르고 활동했었던 것 같다.
실내에도 상당히 많은 기구들이 있어서, 어렸을때의 우리는 온갖 상황극과 그걸 이용한 놀이들을 진행했고 수업시간에 간혹 그런 것들을 사용하기도 하였다. 내가 유독 YMCA의 기억나는 장면은 무거운 쇳덩어리로 이루어진 틀? 같은 어떤 것을 정리하는 와중에 두개가 겹쳐지는 부분에 손가락을 찧었던 것이었다. 상당히 아프기도 했고, 조그마하게 피멍이 들었었던 기억이 난다. 그래도 당시의 나도 괜찮다 그러고, 선생님도 괜찮냐고 그랬던 것 같고, 심지어 우리 엄마도 괜찮냐고, 조금 더 조심하지 그랬냐고 하면서 나를 나무랬던 것 같다. 그래도 내 기억에는 그게 당연한 것이었다. 적어도 요즘처럼 남에게 왜 우리아이를 잘 돌보지 못했냐, 잘 지켜보지 왜 그랬냐 이런 말들은 없었던 시절인 것 같다.
어찌보면 방치라고 할 수 있겠지만 뭐랄까, 지금와서 생각하면 원인과 결과에 따른 책임을 가르키는 작업이 아니었을까 싶다. 요즘은 너무 과잉보호에 아이들을 너무 버릇없게 키운다는 느낌이 강하다. 물론, 그렇지 않다는 것도 알지만 그래도 때로는 아이가 실수를 반복하면서 잘못된 것을 알아야 하는데 무조건 적인 사랑으로만 키우다 보니 뭔가 잘못되고 있다는 느낌이있다.
적어도, 내 잘못을 남에게 탓하기 보다는 나를 반성하는 시간들이 많았던 것은 확실했다.
여담이지만 그당시의 우리에게는 왕따라는 개념도 없었었다. 사는 곳과 부모의 소득을 가지고 차별을 두지도 않았다. 아예 그런걸 생각조차 하지 못했고, 알지도 못했던 것 같다. 모두가 힘들었던 시대여서 그랬을 수도 있지만 나는 모두가 정이 있었던 시대여서 그러지 않았을까 싶다.
지금의 우리가 잃어버린 한국의 정이, 적어도 그때는 살아있었던 것 같다.
최근 몇년간 왕왕 들려오는 비정한 소식들과 아이들이 사는곳과 자가와 전세로 편을 가르고 싸우는 것과 유전무죄 무전유죄가 현실로 다가와 뉴스에 당당히 나오는 것을 보면 참 안타깝기 그지없다. 어쩌면 내가 그들의 세상에 끼지 못했기에 안타까운 것인지 모르겠지만, 나는 적어도 우리가 우리의 정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사람이 사람을 돕고, 사람이 안타까움을 마음에 품고, 자애를 알고 실천 할 수 있는 세상. 용서가 진심으로 나오는 세상이 지금은 없지만. 적어도 그런게 있다고 느꼈었던 그 시절이었기 때문에 어쩌면 내가 그때를 회상하면 따뜻한 필터가 껴있는 그런 세상으로 기억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