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이너가 된 엔지니어 - 01
디자이너이자 크리에이티브 테크놀러지스트이며 저자인 박동윤(Yoon Park)은 현재 미국 시애틀 마이크로소프트 본사의 Mixed Reality Design & UX Research 팀에서 Principal UX Designer로서 홀로렌즈 및 혼합현실 서비스와 관련된 디자인을 담당하고 있다. 전자공학을 전공하고 반도체 설계 및 모바일 소프트웨어 연구원으로 일하다 그래픽 디자인이 너무 좋아 시각 디자인을 다시 공부하여 디자이너로서의 커리어를 새롭게 시작했다. 타이포그래피에 대한 관심을 바탕으로 2011년 Typography Insight앱을 출시했으며, 현실 공간에서 타입 레이아웃을 가능하게 하는 Type In Space라는 홀로렌즈용 앱을 만들기도 했다.
홈페이지 - http://dongyoonpark.com
링크드인 - https://www.linkedin.com/in/cre8ivepark/
나는 항상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했다. 특히 90년대를 풍미했던 드래곤볼과 같은 만화의 캐릭터를 그리는 것에 심취해 있어, 학교의 교과서가 항상 베지터와 프리저의 그림들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 만화와 함께 컴퓨터와 용산 전자상가, 컴퓨터 부품에 흠뻑 빠져 Intel, AMD, Silicon Graphics, Quantum과 같은 90년대를 주름잡던 IT 회사들의 로고를 많이 그렸는데, 조형적인 로고와 서체의 아름다운 디자인에 흠뻑 매료되어 따라 그리기를 반복했었다. 당시 Intel의 Pentium 이나 Celeron 등의 패키징의 디자인이 너무 좋아서 용산 전자상가에서 굴러다니던 박스를 주워다 모으기도 했다. 물론 당시에는 그래픽 디자인이나 타이포그래피 등에 대한 용어나 개념 조차도 몰랐다.
어린시절 살다시피하며 즐겨하던 오락실의 스트리트파이터 게임에서 이상하게도 캐릭터의 이름을 표시하는 글자의 모양이 멋져보였고, 에너지를 표시하는 그래픽이나 캐릭터를 선택하는 화면들이 너무 아름다워보였다. 물론 당시에는 이런 요소들이 GUI (그래픽 유저 인터페이스)라는 것을 알았을리가 없었다.
동네 컴퓨터 학원에서 잠깐 286 컴퓨터로 경험한 Dr. Halo나 디럭스페인트와 같은 소프트웨어를 통해 컴퓨터로 그림을 그릴 수 있다는 점에 놀랐고, 사촌형 집에서 386 컴퓨터로 처음 경험한 id 소프트의 둠(Doom)을 통해 처음으로 컴퓨터가 구현하는 3D 공간에 충격을 받아, 컴퓨터 그래픽을 공부하고 싶다는 결심을 하게된다.
컴퓨터 그래픽과 반도체에도 관심이 많았던 나는 공대에 진학을 했고 전자공학을 전공하면서 프로그래밍 동아리에서 활동하며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링에 발을 담그게 되었다. 하지만, 이내 전자공학의 주요 학업 내용인 공업수학, 물성전자, 전자기학 등을 거치며 과연 내가 평생 즐겁게, 행복하게 할 수 있는 일인지에 대한 의문이 들기 시작했고, 특히 수학을 싫어했던 나에게 전자공학의 과목들은 C와 D로 채워진 성적표들로 나를 좌절하게 만들었다.
98학번인 나는 대학 재학 중 불어닥친 인터넷과 닷컴 벤처기업의 열풍으로 다양한 웹 서비스에 대한 일을 할 기회가 있었는데, 이때에도 나는 이러한 서비스를 ASP, JSP, PHP와 IIS, MySQL, 오라클 데이터베이스로 구현하는 프로그래밍 작업들 보다 화면에 보여지는 시각적인 디자인 작업에 더 깊은 흥미를 느꼈다. 자연스럽게 웹 디자인으로 상당히 많은 아르바이트를 했고 관련 경험을 쌓아나갔다. 육군에서의 군 복무 기간 중에도, 간간히 군 내부 인트라넷의 웹사이트 디자인 및 개발 작업등을 맡았다. 이런 과정을 통해 내 마음속에는 은연중에 언젠가는 디자이너로 일을 하고 싶다는 욕구가 자라나고 있었지만, 어떻게 가능할지는 전혀 생각을 하지 못했다.
삼성전자의 통신연구소에서 모바일 소프트웨어 연구원으로 일하던 시절, 내가 속한 부서는 MMI(Man-Machine Interface) 또는 UI(User Interface) 담당 파트였는데, 말그대로 GUI(Graphical User Interface)와 관련된 작업을 많이 했다. 화면에 구성되는 메뉴, 네비게이션 구조 등을 와이드 화면이나 터치스크린 등의 차세대 단말에 맞게 최적화 하는 작업들을 담당했는데, 이 과정에서 내가 가장 즐겼던 부분은 타이포그래피였다. 비록 당시의 화면이 220x176 픽셀의 QCIF 해상도로 부드러운 텍스트의 외곽선을 표시하기에는 한계가 있었지만, 그런 제약 속의 작은 화면에서도 아름다운 서체를 표현하는 점에 깊은 흥미를 느꼈다. 물론 엔지니어로서 일을 했기에, 해당 모바일 기기의 GUI디자인이나 타이포그래피는 디자인 팀에서 전해준 내용을 그대로 구현하는 업무가 주였지만, 간혹 가이드라인이 없는 전혀 새로운 기기나 디스플레이의 프로토타입 작업을 할때는 어느 정도 나만의 자유를 가지고 작업을 할 수 있었다.
회사 개발팀 내의 소프트웨어 툴을 만들때나 새로운 모델의 시뮬레이터 작업을 할때면 나는 앞서서 포토샵을 통해 툴의 GUI나 시뮬레이터의 스킨을 만들어 팀에 배포하곤 했는데, 이런 과정에서 팀 멤버들이 “동윤씨는 디자인 팀으로 가야겠어”라는 농담을 던지곤 했다. 나에게는 이런 말들이 꽤 진지한 고민으로 다가왔고, 어떻게 하면 디자이너로 일을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팀에서 담당하는 업무인 GUI를 코드로 구현해서 잘 작동하게 하는 일도 재미있긴 했지만, 결국 코드는 사용자에게 직접 보여지는 것이 아닌, 하부에 감춰져 소리없이 돌아가는 것이었기에, 나는 이러한 프로그래밍 보다는 사용자에게 시각적으로 직접적으로 보여지고 사용되는 디자인에 더 관심이 갔다.
이렇게 과거로 부터 오랜기간 동안 이어져 온 디자이너로 일하고 싶다는 막막한 꿈이 실제 가능할 수도 있겠다는 희망으로 바뀐 사건이 있었다. 어느날 아침 삼성전자 회사 사내 방송 화면에 SADI(삼성디자인교육원)라는 디자인 학교를 소개하는 내용이 나왔는데, 바로 인터넷으로 찾아보니 나와 같이 디자인과 전혀 관계 없는 전공을 하다가 디자인이 너무 하고 싶어 온 다양한 배경의 사람들이 많다는 사실을 알게되었다. 마침 그 시기에 읽었던 ‘긍정의 힘’ 이나 ‘연금술사’와 같은 책과 스티브 잡스의 스탠포드 대학 축사 내용을 보고 더욱 힘을 얻게 되었기에, 주저하지 않고 입학 지원 준비에 나섰다. (스티브 잡스는 당시 축사에서 "오늘이 내 인생의 마지막 날이라면, 과연 지금 하려고 하는 일을 할 것인가?" 라는 질문을 던졌다) 마침 그동안 작업해온 다양한 웹 서비스나 개인적으로 진행해온 디자인 공모전 작업 등을 모아 포트폴리오를 금새 완성할 수 있었고, 나는 SADI에 첫 학기 전액장학금과 함께 합격 통지를 받았다. 이 시기에 퇴근 후 작업을 통해 지원했던 삼성카드 디자인 공모전에 입선을 한 점도 큰 자극이 되었다.
같이 일하던 팀원들과 업무 등 모두 만족스럽고 불만이 없었기에, 멀쩡한 좋은 직장을 때려치고 앞날이 보장되지 않는 불확실한 새로운 출발을 한다는 것은 솔직히 쉽지 않은 일이었다. 하지만, 내 꿈을 더 이상 미루면 다시는 기회가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곰곰히 내가 정말 좋아하고 잘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해본 결과 답은 확실 했다. 그동안 짧지만 2년여간 일하며 모아놓은 돈으로 학비를 커버할 수 있겠다는 생각으로 결단을 내렸다. 감사하게도 회사의 팀원들도 적극 응원을 해주셨고, 많은 분들이 이미 내가 디자인에 대한 관심이 많은 것을 알았기에 잘 이해해 주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