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이너가 된 엔지니어 - 06
디자이너이자 크리에이티브 테크놀러지스트이며 저자인 박동윤(Yoon Park)은 현재 미국 시애틀 마이크로소프트 본사의 Mixed Reality Design & UX Research 팀에서 Principal UX Designer로서 홀로렌즈 및 혼합현실 서비스와 관련된 디자인을 담당하고 있다. 전자공학을 전공하고 반도체 설계 및 모바일 소프트웨어 연구원으로 일하다 그래픽 디자인이 너무 좋아 시각 디자인을 다시 공부하여 디자이너로서의 커리어를 새롭게 시작했다. 타이포그래피에 대한 관심을 바탕으로 2011년 Typography Insight앱을 출시했으며, 현실 공간에서 타입 레이아웃을 가능하게 하는 Type In Space라는 홀로렌즈용 앱을 만들기도 했다.
홈페이지 - http://dongyoonpark.com
링크드인 - https://www.linkedin.com/in/cre8ivepark/
초기 시안이 어느 정도 발전된 이후 우리가 준비한 디자인 화면들을 가지고 브라이언이 스티브 발머에게 보여주었고, 상당히 좋은 반응을 었었다고 한다. 이제 팀의 정식 프로젝트로 추진하기로 되었고, 제대로 된 팀을 꾸리기 시작한다고 한다.
마이크로소프트에서 프로그램 매니저 (Program Manager, PM)은 한국 회사들의 프로젝트 매니저와는 개념이 약간 다른데, 프로젝트의 진행 시 다양한 직군 — 엔지니어링/디자인/테스트 등 —의 연결 고리 역할을 하며 스케줄 및 리소스 관리 등의 업무를 담당한다. 지난 몇 주간의 초기 시안 작업에서는 프로그램 매니저 없이 진행을 해 왔으나, 이제 정식 프로젝트로 자리잡음으로서 각 앱을 담당할 프로그램 매니저들을 만나게 될 것이라고 한다. 특이한 점은, 이번 앱들은 인도의 하이데라바드에 있는 MS IDC(Microsoft India Development Center)의 팀이 개발과 프로그램 매니징을 담당하게 된다는 점이었다. 이윽고 이메일을 통해 소개와 인사를 나누고, 사내 메신저인 링크(Lync, 추후에 Skype for Business로 변경되고 궁극적으로는 Microsoft Teams로 바뀜)를 통해 통화를 하였다.
영어가 부족한 나로서는 전화 통화가 가장 큰 스트레스였는데, 인도의 팀과 음성 통화로 미팅을 진행하는 것은 정말 큰 부담이었다. 더욱이 인도 영어의 액센트는 더 알아듣기 힘들어 고생을 많이 했다. 음성 미팅은 다들 사무실의 책상에서 마이크가 달린 헤드셋을 끼고 통화를 했는데, 당연히 말하는 내용이 주위에 다 들렸다. 나도 내 책상에서 미팅을 하면 주위 팀 멤버들이 나의 버벅거리는 영어를 다 듣겠구나 라는 생각이 나의 마음을 더 크게 짓누르기 시작했다. 다행히 윈도우즈 8 앱 테스트를 위해 팀원들에게 터치스크린이 지원되는 노트북을 마침 지급을 해주었다. 이후 나는 인도 팀원들과의 미팅은 빈 회의실에 가서 헤드셋을 끼고 주위 눈치 안 보고 좀 더 편안한 마음으로 진행을 할 수 있었다.
몇 주 후 인도에서 프로그램 매니저들과 개발팀이 프로젝트 킥오프를 위해 대거 방문을 했는데, 드디어 스포츠 앱의 PM인 사우랍과 아미토지, 그리고 금융 앱의 PM인 쿠슈부와 아룬을 만나게 되었다.
사우랍은 정말 열정적이고 미국 스포츠에 통달한 사람이었다. 첫 스포츠 앱 팀의 미팅을 진행했는데, 사우랍이 준비한 스포츠 앱에 대한 정의, 마켓 분석 및 비전은 정말 디테일했고 무엇보다도 열정적인 그의 피치에 매료될 지경이었다. 정말 똘똘 하구나 라는 강한 첫인상과 함께 스포츠에 대한 그의 깊은 열정이 이 프로젝트가 잘 되겠구나 라는 확신을 가지게 해 주었다. 또 한 명의 스포츠 PM인 아미토지는 훤칠한 장신에 부리부리한 눈을 가진 사람이었는데, 역시 스포츠 분야 특히 피트니스에 깊은 관심을 가진 운동 광이었다. 역시나 미국과 미국 스포츠에 통달했고 사우랍과 함께 큰 열정을 보였다.
사우랍과 아미토지와의 미팅에서 그동안 내가 작업해온 스포츠 앱의 시안 들을 보여주었고, 모두 디자인의 방향을 마음에 들어 했다. 특히 과감한 헤드샷 (선수들의 사진)과 큼지막한 데이터 숫자의 표현 등을 마음에 들어 했는데, 기존 웹사이트나 앱 등에서는 보기 힘든 깨끗한 디자인 이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앞으로 머물 몇 주간 함께 보다 구체적으로 앱의 전반적인 IA(Information Architecture) 및 내비게이션 구조를 함께 작업하기로 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그는 미국에서 대학을 나왔고 이미 NFL 미식축구의 열렬한 팬이었다. 파슨스의 대학원에 있을 때 인도 출신의 친구들과 작업을 함께 하거나 RA(Research Assistant) 업무를 함께 한 적이 있었는데, 길지 않은 협업 기간이었지만 상당히 똑똑하고 일을 야무지게 잘한다는 인상을 받았었다.
스포츠 앱 팀과의 만남이 끝나고, 다음날 파이낸스 앱 팀과의 미팅이 시작되었다. 파이낸스 앱의 PM은 쿠슈부와 아룬 이라는 사람들이었는데, 화이트보드가 있는 미팅룸에서 하루 종일 정신없이 아이디어를 스케치하고 계획을 짰다. 스포츠는 야구를 비롯해 어느 정도 관심이 있는 분야라 ERA, RBI, OBP 등의 약자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었지만, 금융의 용어는 생소한 부분이 많아 초기 대화 시에 어려움이 많았다. 한국에서 직장생활을 할 때 증권회사를 통해 적립식 펀드와 가벼운 주식투자 정도를 경험한 나로서는 미국 금융 시장과 용어들이 생소할 수밖에 없었다. ETF, Bond, Commodity, Dow, S&P, Nasdaq… 결국 많은 금융 및 주식 관련 앱과 웹사이트들을 사용해 보는 수밖에 없었다.
금융 앱과 스포츠 앱 두 가지 모두의 디자인을 담당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구상 중에 비교를 하게 되었는데, 모두 IA 측면에서 유사한 면이 많았다. 일단 랜딩 페이지(앱을 처음 시작했을 때 보게 되는 화면)에서는 모든 스포츠 및 리그 전반에 대한 뉴스와 즐겨찾기 팀, 그리고 각 스포츠 및 리그로 진입할 수 있는 메뉴들을 제공하고, 그 하위 페이지 들은 리그의 홈페이지(예를 들어 MLB, NBA, NFL 등), 그 하위에 팀의 페이지(LA Dodgers, Chicago Bulls, New England Patriots 등), 그 밑에 선수의 페이지(류현진, 톰 브래디 등)가 있는 식이다. 금융 앱에서도 유사한 구조가 보였는데, 랜딩 페이지에서 전반적인 금융 시장의 정보, 주요 주식 시장의 지수, 뉴스, 즐겨찾기 주식, 그리고 각 주식 시장 및 주식으로 진입할 수 있는 메뉴, 그 하위 페이지들은 특정 주식 시장의 페이지(예를 들어, 다우, 나스닥, S&P, 러셀 등), 그 하위에 주식, 펀드 등의 상세 페이지 (마이크로소프트, 애플, 아마존 등)가 있는 식이다.
약 1주일간 스포츠 앱과 파이낸스 앱의 PM들과 미팅을 하고 아이디어들을 다듬으며 어느 정도 앱의 전반적인 윤곽이 잡혔고, 디자인이 필요한 페이지들과 요소들이 정리가 되었다. 디자인 작업을 해야 하는 페이지들의 규모에 약간 압도되는 느낌을 받았다. 과연 내가 두 가지 앱의 디자인을 잘 해낼 수 있을까? 일단, 직접 얼굴을 맞대고 진행된 이번 미팅 들에서는 그래도 의사소통에는 문제가 없이 잘 해낸 것에 대해 뿌듯함을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