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이너가 된 엔지니어 - 02
디자이너이자 크리에이티브 테크놀러지스트이며 저자인 박동윤(Yoon Park)은 현재 미국 시애틀 마이크로소프트 본사의 Mixed Reality Design & UX Research 팀에서 Principal UX Designer로서 홀로렌즈 및 혼합현실 서비스와 관련된 디자인을 담당하고 있다. 전자공학을 전공하고 반도체 설계 및 모바일 소프트웨어 연구원으로 일하다 그래픽 디자인이 너무 좋아 시각 디자인을 다시 공부하여 디자이너로서의 커리어를 새롭게 시작했다. 타이포그래피에 대한 관심을 바탕으로 2011년 Typography Insight앱을 출시했으며, 현실 공간에서 타입 레이아웃을 가능하게 하는 Type In Space라는 홀로렌즈용 앱을 만들기도 했다.
홈페이지 - http://dongyoonpark.com
링크드인 - https://www.linkedin.com/in/cre8ivepark/
SADI (Samsung Art & Design Institute)는 삼성에서 설립한 디자인 학교이다. 3년의 과정인데, 2007년 내가 학업 할 당시에는 커뮤니케이션 디자인, 패션 디자인, 제품 디자인 이렇게 세 가지 학과가 있었다. 나는 물론 시각디자인과 타이포그래피에 관심이 많았기에 커뮤니케이션 디자인을 전공했다. 예상대로 크로키, 스케치, 컨셉팅, 구성, 조형 등 첫해의 파운데이션 과정부터 색상, 타이포그래피, 편집디자인, 인포메이션 디자인, 디지털 디자인 등 전공 과정에 이르기 까지, 학업 과정 내내 SADI에서의 나날은 행복의 연속이었다. 오랜 기간 하고 싶었지만 못했던 공부를 하는 나에겐 모든 수업 내용이 사막의 오아시스 같은 존재였다.
특히 타이포그래나 인포메이션 디자인 등의 수업은 더할 나위 없이 소중한 시간이었는데, 역사적으로 중요한 서체들의 형태들이 어떻게 진화하고 발전해 왔는지 하나씩 알아가는 기쁨은 말로 표현하기 힘든 것이었다. 물론 종종 회사를 계속 잘 다니고 있는 친구들이나 이전 팀 멤버들을 만나면 간혹 내가 잘 한 결정인지 나의 불안한 미래에 대해 걱정이 들기도 했으나 이럴 때마다 학교를 지원할 당시의 마음을 되새기며 다시 초심을 가다듬고자 노력했다. 열정적인 교수님들과 그보다 더 열정적인 학우들이 디자인 공부에 집중할 수 있게 해 주었다. 기존 전공이나 나이에 관계없이 디자인을 공부할 수 있는 기회를 열어준 SADI에 나는 항상 감사하는 마음이 가득하다.
인생에서의 큰 방향 전환의 결심을 한 후 SADI에서의 시간은 재빠르게 지나갔고, 금세 또 다른 결단을 내려야 할 시기가 다가왔다. 졸업 후 한국에서 디자이너로 취업을 할 것인지, 아니면 다른 미래를 그려야 할지 고민을 많이 했다. 한국에서의 취업은 여러모로 불리한 점이 많았다. 아직 나이가 중요한 요소인 한국 직장에서 30의 나이로 과연 즐겁게 디자이너로 조직에서 일을 해 나갈 수 있을지 확신이 서지 않았고, 기왕 이렇게 어려운 결단을 내려 직장을 그만두고 디자인 공부를 시작한 만큼 더 큰 무대로 도전하는 것이 좋지 않겠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미국 디자인 대학원에 대한 진학을 고민하기 시작했지만, 나는 미국에 가본 적도 없었고 전자공학과의 몇몇 친구들이 공학 석사 박사 과정을 위해 유학을 가는 것을 보긴 했지만 나와는 상관없는 전혀 다른 세계의 일로 여겼다. (앞서 이야기했듯이, 전자공학과에서의 나의 대학 성적은 좋지 않았고, 군대를 다녀와서야 겨우 정신을 차려 학점을 3.0 이상으로 복구할 수 있었다)
오랜 고민 끝에 나 자신을 세계 무대에서 시험해 보기로 결심을 했다. 어렵게 공학을 전공한 후 돌고 돌아 디자인을 다시 공부하게 된 만큼, 제대로 해야겠다는 마음이 생겼다. 미국 대학원에 대해 아는 바가 없었기에 SADI의 교수님 몇몇 분들이 학업을 하신 뉴욕의 파슨스 디자인스쿨의 Design & Technology 프로그램과 NYU의 ITP프로그램, 그리고 School of Visual Arts의 Interaction Design 학과 세 군데를 지원했다. SADI를 다니면서 토플을 준비했고 포트폴리오를 차근차근 정리했다. 가장 큰 문제는 역시 학비였는데, 세 학교 모두 한 학기당 1만 5천 달러가 넘는 학비(2009년 당시)에 기숙사 및 생활비가 필요했기에 회사를 다니며 모아 놓은 돈으로도 빠듯했다. 다행히도 세 학교 모두 어느 정도의 장학금을 제안받았지만, 그중 파슨스가 학비 절반 정도의 장학금을 제안했기에, 그리고 학과 이름이 디자인 & 테크놀로지인 점이, 나의 두 가지 배경인 기술과 디자인을 융합하는 목표에 잘 부합하는 것 같아 파슨스로 결정을 하게 되었다.
입학 통지서를 받고 모든 준비를 마치고도 고민과 걱정이 계속되었다. 특히 미국에 한 번도 가보지 못한 점이 두려움으로 다가왔는데, 과연 낯선 땅에서 영어도 잘 못하는 내가 학업을 할 수 있을지 걱정이 되었고, 넉넉지 않은 집안의 경제적 상황에도 부담이었기에 마음의 무게가 무거웠다. 잘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디자인 공부를 결심한 순간 못지않게 상당한 금전적, 시간적 리스크를 않고 불확실한 미래를 향해 또 한 번 인생의 큰 선택을 하게 되는 순간이었다.
SADI 재학 중인 2008년에 소프트웨어의 역사에 중요한 큰 이벤트가 있었는데, 바로 애플의 아이폰 SDK와 앱 스토어의 발표였다. WWDC 08 이벤트에서 스티브 잡스는 바로 전해에 출시한 아이폰에 전 세계 개발자 누구나 만들고 판매를 할 수 있는 앱 스토어라는 개념을 소개했다. 한국에는 당시 아이폰이 출시되지 않았지만 아이팟 터치를 이용해 어느 정도 아이폰의 아름다운 GUI나 인터렉션 디자인을 경험할 수 있었다. 이 소식을 접하자마자 나는 애플의 개발 툴과 관련 문서 자료들을 보기 시작했다. 회사를 관두고 디자인 공부를 시작하면서 과연 다시 프로그래밍을 할 일이 있을까 하는 의문을 가졌으나, 이내 프로세싱이나 아두이노 및 다양한 전자 소자 부품들이 다양한 인터렉티브 하드웨어 및 소프트웨어가 디자인과 미디어 아트 등에서 적극적으로 활용되는 것을 보고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프로그래밍을 직업으로 한 나에게도 애플의 Objective-C라는 언어는 생소한 언어였기에 새롭게 공부하는 게 쉽지는 않았지만, 애플의 아기자기한 툴들과 잘 디자인된 컴포넌트들 등 다양한 요소들이 너무나 흥미로워 보였기에 공부를 할 수밖에 없도록 만들었다. 나는 SADI에 재학하는 동안 간단한 시계나 게임 등의 앱들들 만들어 앱 스토어에 출시했고, 관련 아르바이트를 하기도 하며 관심을 지속시켜 나갔다. 이런 과정이 훗날 대학원의 석사 논문 프로젝트와 취업에 큰 도움이 되었다.
2009년 여름, 큰 이민가방 하나와 함께 뉴욕 JFK 공항에 도착한 지 몇 달 만에 다행히 나는 도시와 학교 생활에 잘 적응을 했다. 대학원인 만큼, 스튜디오 과목 — 어떤 주제에 대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디자인 과정에 대해 발표하고 크리틱 하는 — 을 제외하고는 개인이 자유롭게 원하는 주제의 수업들을 듣고 학업 하는 방식이었다. 나는 역시나 나의 관심사인 타이포그래피나 인포메이션 디자인, 데이터 비주얼라이제이션, 모바일 게이밍 등의 수업을 선택해 들었다.
많은 유익한 과목들이 있었지만, 결국 가장 중요하고 도움이 되었던 과목은 Thesis Studio (논문 스튜디오) 였는데, 말 그대로 논문 주제를 선정하고 아이디에이션 과정부터 스케칭, 스토리보딩, 프로토타이핑, 유저 테스팅 등의 디자인 프로세스를 반복적으로 발표하고 공유하여 피드백을 얻고 발전시켜 나가는 수업이었다. 이 과정에서 어느 정도 디자인 프로세스에 대해 익히게 되었고, 나의 어설픈 영어도 조금씩 늘어가기 시작했다. 프레젠테이션과 논문을 글로 써나가는 과정 역시 큰 도움이 되었는데, 나의 프로젝트의 대한 아이디어와 생각의 전개 과정을 논리적으로 풀어나가는 것이 많은 도움이 되었다.
높은 학비로 인한 재정적인 어려움을 극복하는데 어느 정도 도움을 준 것은 RA(Research Assistant, 연구 조교) 였는데, 교수님들의 프로젝트 진행에 디자인 및 프로그래밍 등으로 도움을 드리며 타임카드에 작업 시간을 적어 제출하면 시간당 보수를 받는 방식이었다. RA는 외국인 유학생이 합법적으로 돈을 벌 수 있는 거의 유일한 길이었다. 당시 통장 잔고가 거의 바닥을 보이고 있는 상황에서 첫 시급을 지급받은 순간의 기쁨은 아직도 생생하다. 그날 학교에서 집에 돌아가는 길에 델리 — 맨해튼에 많이 보이는 식료품점으로 한국 및 아시안 음식이 많다 — 에 들러 오랜만에 마음껏 삼겹살과 볶음밥 등의 음식을 가득 담았다. 유학 생활 초기에 델리에 처음 들렀을 때 음식을 무게로 파는 방식인 것을 모르고 주섬주섬 담았다가 20불이 넘게 나와 며칠간 속상했던 기억이 난다.
이외에도 친구가 수주를 받은 홈페이지 디자인 작업을 도와준다던지, 플래시 액션스크립트의 코딩을 도와준다던지 하는 일로 아르바이트를 해 나갔다. 어느 날 자신이 수주한 작업을 함께 하게 해 준 멕시칸 출신인 알렉스가 작업을 마무리하고 학교 근처에 있는 은행인 Bank of America에 나를 데려가 ATM에서 돈을 뽑아주었는데 시간당 25달러로 쳐서 약 두 시간 정도 작업한 액션스크립트 작업에 대해 50달러를 준 것이었다. 정말 고맙고 감사한 일이었다. 그 순간의 ATM기기에 있던 Bank of America의 로고가 아직도 강한 인상으로 남아있다. 그리고 가끔 알렉스가 학교 근처의 Ray’s 피자 가게에서 2달러짜리 큼지막한 페퍼로니 조각 피자를 사주었던 기억이 난다.
파슨스 재학 중에도 틈틈이 아이폰 SDK를 공부하며 이런저런 앱 들을 앱 스토어에 출시했지만, 성과는 좋지 않았다. 특히 Twitt Knoll이라는 아이패드용 트위터 클라이언트 앱은 많은 노력을 들여 디자인했고, 금전적인 어려움을 해소하는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는 기대를 많이 하며 출시를 했지만, 전혀 인기가 없었고, 나는 많은 실망을 했다. 인터페이스가 재미있고 참신한 디자인의 앱이었지만, 짧은 트위터 텍스트들을 빠르게 훑어 읽어나간다는 트위터의 근본적인 취지에는 어울리지 않는 다소 실험적인 작업이었기에 사용자들에게 환영받지 못했다.
나의 또 다른 하나의 관심분야 중 하나는 인터렉티브 브로슈어였는데, 당시 많은 회사들과 기관들이 아이폰과 안드로이드의 터치스크린과 큰 화면을 활용한 다이내믹한 브로슈어 앱을 내놓기 시작하였다. 일종의 편집 디자인과 유사하면서도 애니메이션 등 다양한 효과가 가미된 GUI의 요소도 포함된 분야였다. 마침 나는 파슨스 디자인 스쿨을 소개하는 공식적인 앱이 아직 존재하지 않음을 알았고, 개인적으로 앱을 디자인해보기 시작했다. 어느 정도 윤곽이 잡히고 프로토타입을 준비한 후 교수님들에게 보여주었고, 학과장인 스벤에게도 보여주었다. 아주 좋은 반응을 얻어 추후 파슨스와 뉴스쿨(파슨스가 속해있는 학교) 학장님께도 데모를 하였고 결국 공식적으로 학교의 지원을 받는 프로젝트가 되었다.
파슨스의 브랜딩을 담당하는 팀과 미팅을 하고 파슨스의 당시 공식 서체 프랭클린 고딕을 사용하기로 하고 마무리하여 앱 스토어에 출시를 했다. 내가 좋아하는 관심분야의 주제로 시작한 개인 프로젝트가 학교의 공식 앱이 되는 뿌듯한 순간이었다. 훗날 아이패드가 출시되고 나서 나는 아이패드용도 디자인 및 프로토타입 작업을 통해 학교에 제안을 했고, 역시 프로젝트가 진행되어 졸업 전까지 개발 및 디자인을 완료하고 출시를 했다. 2010년 학업 중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경제적 상황이 어려워져 학업을 이어갈 수 있을지조차 불투명했지만, 감사하게도 이 프로젝트를 통해 장학금을 추가로 지원받아 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황을 무사히 넘기고 학업을 마칠 수 있었다.
개인적으로 여러 종류의 앱을 런칭한 후, 그동안 경험해온 ‘개발자 경험 ‘Developer Experience’ 을 공유하고자 하는 마음이 생겼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아이폰의 성공의 원인을 훌륭한 UX (사용자 경험)에서 찾았지만, 개인적으로는 DX (Developer Experience)야 말로 이러한 성공을 뒷받침하는 거대한 개발자 생태계를 조성한 중요한 원인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개인적인 생각을 적은 블로그 포스팅을 통해 두드림 출판사의 탁연상 대표님과 인연이 이어졌고, 편집디자인과 인포메이션 디자인에 깊은 관심을 바탕으로 나는 직접 편집디자인을 할 수 있는 허락을 받아 책을 쓰면서 Adobe InDesign을 이용해 수백 페이지의 편집디자인을 모두 직접 작업 하였다. 흔히 볼 수 있는 텍스트와 코드가 가득한 부담스러운 프로그래밍 서적이 아닌, 시각적으로 풍부하고 접근하기 쉬운 실용적인 예제 앱 중심의 책을 만들고자 노력했다. 이러한 노력은 도전 아이폰4 프로그래밍(2011)과 도전 아이폰 프로그래밍(2012) 이라는 책으로 결실을 맺어 2011–2012 아이폰 프로그래밍 분야 베스트셀러가 되며 좋은 반응을 얻었다.
석사학위 논문 프로젝트로는 그동안의 나의 주된 관심사였고 디자인을 공부하고 싶게 만들었던 타이포그래피를 주제로 하고 싶었다. 마침 스티브 잡스가 2010년 아이패드를 발표했고, 실제 Twitt Knoll을 비롯한 몇몇 앱 작업을 하면서 큰 화면에서 아름다운 서체들을 직접 손가락으로 터치하고 조작하고 관찰할 수 있는 앱이 있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생각은 나의 SADI에서의 타이포그래피 기초 수업 시간의 경험을 바탕으로 발전하기 시작했고, 아이패드와 같은 새로운 큰 화면의 터치 인터페이스를 활용한 타이포그래피 교육 분야에 대한 적용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내가 좋아하는 관심사인 타이포그래피와 GUI, 그리고 엔지니어로서의 경험을 모두 활용하고 융합할 수 있는 좋은 주제라고 생각했다.
2010년 가을, 즉 세 번째 학기부터 두 학기 동안 진행된 Thesis Studio를 통해서 지속적으로 아이디어를 발전시키고 프로토타이핑했다. 뉴욕이라는 장소의 장점을 적극 활용하여 디자인 학교에서 타이포그래피 교과서로 널리 쓰이는 책인 Designing with Type의 저자 James Craig 등 유명한 타이포그래퍼이자 교육가들을 만나 데모를 하였고 좋은 반응을 얻을 수 있었다. 말수가 적고 내성적인 내가 적극적으로 사람들에게 연락하고 찾아다닌걸 보면, 진정 프로젝트에 열정적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2011년 5월, 나는 석사 학위 논문 프로젝트인 타이포그래피 인사이트를 공식적으로 아이패드용 앱 스토어에 출시했고, 파슨스 디자인 & 테크놀로지 석사과정의 논문 프로젝트를 발표했다. 감사하게도, 내 프로젝트 타이포그래피 인사이트(Typography Insight가) AIGA(미 그래픽디자인협회)에서 개최하는 해당 학교별 졸업생들의 작업을 소개하는 이벤트인 Fresh Blood에 초대되어 파슨스를 대표하여 발표할 기회도 주어졌다. AIGA의 행사인 만큼 참가자 대부분이 디자이너 또는 디자인 관련 종사자들로 이루어져 내 프로젝트를 알리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아름다운 서체를 좋아하지 않는 디자이너가 어디에 있겠는가?)
AIGA에서의 발표 및 졸업 논문 프로젝트 전시회 이후 타이포그래피 인사이트 앱의 다운로드가 급증해서 졸업 직후인 6월에는 앱스토어 메인에 소개가 되고 한 달 매출 1만 달러를 달성하였다. 이 과정에서 The Atlantic이나 Gizmodo 등과 같은 언론 매체와의 인터뷰도 하게 되었고 타이포그래피 인사이트 프로젝트가 더 널리 알려지는 계기가 되었다. 감사하게도 이 수익을 통해 그동안 학업으로 인한 대출 빚과 생활비를 상당 부분 갚을 수 있었다. 스티브 잡스와 아이폰 SDK 그리고 앱스토어가 없었다면 내 인생이 어떻게 달라졌을까? 나를 비롯한 수많은 사람들에게 전혀 존재하지 않던 시장을 창조하고 기회를 마련해 준 스티브 잡스에 대한 깊은 감사의 마음은 아직도 깊이 간직하고 있다.
2011년 6월 나에게는 미국 첫 도시인 뉴욕에서의 약 2년간의 생활을 마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