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를 통해 제안 메일을 보냈다는 알림이 떴다! 뭐라고! 나 제안받았다고?! 뭘! 쥐뿔 글도 몇 개 없고 구독자도 없고 라이킷도 별론데 누가 나한테 뭘 제안한 건데!라는 생각과 다르게 기대를 감출 수 없는 표정으로 메일을 확인했다. 딩크인 나를 인터뷰하고 싶다고 했다. 멋있고 거창한 기획의도와 기사의 방향성이 길게 적혀 있었고 00 일보 000 기자라고 본인을 소개했다. 사실 메일만 봐도 이건 뻥일 수 없을 정도로 내용이 좋았는데, 그래도 혹시나 하고 믿지 못하는 마음에 이름을 검색했다. 진짜였네.
결론부터 말하자면 제안은 거절했다. 거절 사유는 특별한 이유가 없기 때문이었다. 나는 딩크가 맞지만 딩크에 대해 할 말이 많은 사람은 아니다. 거창한 대의가 있어 선택한 딩크가 아니기 때문이다. 나는 그냥
임신, 출산, 육아가 싫다.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다른 무엇보다 내 삶이 더 소중하다.
그게 이유의 전부이다. 체력, 돈, 시간 등 내가 가진 것들은 모두 나를 위해 쓰고 싶다. 굳이 보태자면 나의 젊음까지도. 임신과 출산으로 몸이 망가지고 살이 찌는 게 싫고 어린 아기를 돌보느라 흐트러진 모습의 아줌마가 되는 게 싫다. 무엇보다 다른 존재를 보살피기 위해 나의 삶을 쪼개어 희생하기 싫다. 하고 싶지 않다기보다는 싫은 게 맞다. 나를 누군가와 나눠 쓰고 싶지 않다.
이런 이야기를 인터뷰에서 하고 싶지 않았다. 그렇다고 포장하고 싶지도 않았고. 내가 이런 이야기를 가감 없이 내뱉을 수 있는 건 남편뿐이다. 아이가 있는 친구에겐 혹시 너의 모습이 별로이다,라고 들릴까봐 하지 못하고 아이가 없는 친구에겐 내 생각에 사뭇 동화될까 걱정되어 하지 않는다. 딩크를 결정하는 일은 아주 간단하지만 꽤나 무겁다.
딩크를 결심하게 된 계기가 있을까, 떠올려보면 딱히 떠오르는 것은 없다. 어느 순간 이렇게 해야겠다!라고 결심이 선 게 아니라 서서히 그냥 그래 볼까, 하던 게 굳어졌다는 쪽이 더 맞겠다. 교사를 하다 보니 아이들과 보내는 시간이 길고 집에 가서 까지 아이를 보고 싶지 않다,라는 생각을 했던 것도 맞고 아이가 나오면 학교 애들을 제대로 예뻐해주지 못하겠군, 이라는 생각도 했었다. 또한 육아에 지쳐가는 친구들을 보며 그런 고통을 감수할 자신이 사라진 것도 맞고 지금도 넉넉하지 않은 월급을 아이와 나눠 써야 한다는 생각에 답답해진 것도 사실이다. 또 뭐가 있을까. 완전 반대 성향인 남편과 육아로 인한 다툼을 예상하기도 했고 임신과 출산으로 뚱뚱해진 나 자신을 상상만 해도 우울증이 오는 것 같았다. 하나의 계기라기보다는 아이로 인한 모든 부정적 단편이 딩크를 결정하게 만든 것이다. 물론 직접 겪어본 것은 하나도 없고 모두 예상일 뿐이니 실제로는 벌어지지 않을 수도 있는 일들이다. 그럼에도 모험을 감수할 자신이 없다. 하나의 생명체가 만들어지는 순간 그 아이를 평생 책임져야 하는 것은 나니까.
그런 생각들이 모여서 지금의 내가 되었다. 딩크였던 나도 시간에 따라 많이 변했는데 처음에는 딩크인 것 같아, 였고 그다음엔 딩크지만 남편이 하기에 따라 바뀔 수도 있을 것 같아. 의 시기를 지나 나는 딩크지만 만약에 아이가 생긴다면 (우리 부부는 항상 피임을 한다.) 지울 수는 없을 것 같아.라고 말하던 때도 있었다. 그 뒤엔 좀 큰 아이라면 입양도 괜찮을 것 같던 나도 있었지만 지금은 완벽한 딩크다. 내게 아이는 없다.
나는 딩크에 관해 내가 할 수 있는 이야기가 두 마디 정도일 거라 생각했는데 아니었네. 이럴 거면 인터뷰에 응할 것을 그랬나 보다. 혹시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거절하지 말아야겠다. 여하튼 그래서 딩크로 살면 뭐가 좋은지 얼마나 다른 삶을 살고 있을지 궁금해하시는 분들이 계시던데 그 이야기는 다음에 하기로 하자. 지금까지의 글 만으로도 비난의 소지가 꽤나 많을 것 같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