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사회생활이라는 개념이 하나도 없었을 때, 첫 직장에 입사했을 때의 일이다. 부서장은 얼마나 급했는지 면접을 보고난 후에 바로 내일부터 출근하라고 말을 했다. 구수한 지방 사투리를 쓰는 그는 키가 크고 머리숱도 풍성한 50대의 남성이었다. 목소리도 굉장히 컸는데, 내가 느끼기로는 작게 말하는 방법을 익히지 못한 것처럼 평소 목소리가 무척 컸다. 게다가 그 큰 목소리가 발산되는 입술도 두꺼워서 전체 얼굴 중에서 입술이 가장 도드라지게 보였고, 말을 하지 않고 있어도 그 두꺼운 입술은 수시로 씰룩거리고 있었다. 마치 뭔가 할 말이 있는 것처럼 말이 나올듯 말듯한 모습인데, 한번 말이 나오면 쉬지않고 밤새 말할 것 같은 생각이 들 정도로 만담가 스타일이었다.
결국 다음날부터 출근하였는데, 이제 직장인이라는 들뜬 기분과 함께 아직 대학을 막 벗어난 티가 남아있어 어색함을 갖고 출근을 하였다. 회사를 안내해주겠다고 온 새로운 동료는 나와 동갑이었는데, 정장을 입고온 내모습을 조금 불편해하는 것 같았다. 그의 안내를 받고 들어선 사무실에서 다른 동료들과 인사를 나누었다. 부서장을 제외한 다른 직원들은 대부분 나이가 비슷한 또래였다. 26-28인 남녀 7명이 한팀이었다. 나는 첫날이라 무슨 일을 시킬지 모르고 있었는데, 초반에는 업무와 관련된 서류들을 읽게 했다. 우리 회사는 주로 기계를 다루는 일을 하는데, 보통 2명이서 한조로 일했다. 나는 한명이 퇴사를 앞두고 있어서 곧 발생할 결원에 대비하여 뽑힌 것이었다. 곧 퇴사를 앞둔 직원이 마치 사수처럼 내가 앞으로 하게 될 일들을 설명해주었고, 그녀가 모아둔 모든 자료들을 넘겨받았다.
새로운 신입이 왔다고 전 부서 직원들이 모였고, 내가 가장 먼저 자기소개를 한 것을 시작으로 의례 그래온 것처럼 한사람씩 나를 향해 인사하며 소개를 하였다. 부서장은 또다시 길게 이야기를 하며 내가 이 일에 얼마나 적합한 사람인지를 만족스럽게 설명을 했다. 첫 날부터 기억에 남는 것은 내가 양복을 입은 채로 앞으로 내가 쓸 기계를 고쳤다는 것이다. 첫날부터 일할줄 알았으면 편한 복장으로 오는건데, 왜 동갑인 직원이 내 복장을 불편해 했는지 알 것 같았다.
아직 퇴사할 직원이 나가기 전이라 사무실에 내 자리가 준비되어 있지도 않았다. 나는 임시로 한쪽에 책상을 갖다놓고, 내가 임시로 사용할 컴퓨터도 설치를 했다. 역시 양복을 입고 오는 게 아니었다.
첫 점심을 부서장을 제외하고 젊은 직원들이 모두 함께 먹었는데, 구내식당 사용하는 법도 배우고 밥도 맛있게 먹었다. 특이하게도 다양한 반찬을 원하는만큼 선택할 수 있었는데 반찬마다 가격표가 있어서 자기가 고른만큼 금액을 지불하고 먹을 수 있었다. 첫날이지만 첫 점심도 내돈내산이었다. 부서장이 없으니 누가 사줄 입장도 아니긴 했다.
점심을 먹고 오후근무까지 남는 시간에 산책을 하자고 했다. 9월이었지만 아직 날씨가 더웠다. 나는 평지를 산책하는 건줄 알았는데, 언덕이었다. 곧 퇴사할 직원은 땀을 흘려야지만 카타르시스를 느낀다고 하면서 산행처럼 느껴지는 산책을 기어이 점심시간 끝까지 다 마치고 들어갔다. 회사와 업무에 대해 자세하게 들을 수 있어서 좋았지만 역시 옷은 불편했다. 그녀는 놀랍게도 슬리퍼만으로도 산행을 잘했다. 정글 태생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오후에도 계속 기계를 고쳤다. 어찌 보면 첫날부터 열심히 일을 했기 때문에 뿌듯하고 행복했지만 단 하나 마음에 걸리는 것은 어울리지 않는 불편한 복장이었다. 그래도 첫날부터 신경쓴 옷차림에 좋은 인상을 남겼고, 불편한 복장에도 불구하고 적극적으로 일한 나 자신이 대견하기도 했다. 일 뿐만 아니라 산행도 하고 밥도 같이 먹고 해서 행복한 직장생활이 될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