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하경철 Sep 08. 2023

희망은 서서히 변화하는 공공의식에 있다.

장 지글러의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 중에서

북한에서 탈북한 청년들을 초대해 함께 지내는 모임에서 식당봉사를 한 적이 있다. 모임은 2박 3일에 걸쳐 진행이 되었고 참여인원이 70명가량 되었다. 나의 일과는 이른 새벽 재료 다듬기 부터 시작해서 재료 다듬기로 끝났다. 우리나라 음식에 양파와 파가 이렇게나 많이 들어간다는 걸 그때 알았다. 배식이 끝나고 식당이 한산해졌을 때 잔반통에 수북이 쌓인 음식물 쓰레기를 보며 누군가 ‘여기 있는 탈북 청년들 중에는 배고픔 때문에 목숨 걸고 탈북한 사람도 있는데...’하며 말하는 것을 들었다.     

 

이미 한국생활에 적응한 탈북 청년들도 많이 있었겠지만 그래도 배고픔을 겪어 본 사람이 있었다면, 굶어 죽지 않기 위해 탈북을 결심한 사람이 있었다면, 아직도 북에서 굶주림에 죽어가는 가족이 있는 사람이 있었다면… 그들이 이 멀쩡한 음식이 쓰레기통에 버려지는 것을 보고 무슨 생각을 했을까…. 한국의 풍요로움 안에 들어온 것에 안도했을까. 아니면 남과 북이 다르다는 엄연한 사실을 다시 느꼈을까. 아직도 남아 있는 가족을 향한 죄책감에 힘들었을까. 나는 넘쳐나는 음식물 쓰레기통 앞에서 민망했고, 아무렇지 않게 음식을 버리는 한국 청년들을 보며 가슴이 쿵쾅거렸고, 탈북청년들의 표정을 곁눈질로 살폈었다.        


엄마는 내가 손이 작다고 항상 핀잔을 주신다. 하지만 음식은 조금 모자란 듯이 하는 게 좋다는 것이 내 지론이다. 한두 끼 정도 먹을 만큼만 음식을 하고 식재료를 살 때도 다량으로 구매하지 않는다. 상다리가 부러져라 차려진 음식 앞에서, 냉장고에 빼곡히 들어찬 음식 앞에서, 먹다 남아 버리는 음식 앞에서 나는 여전히 민망함을 느낀다.      


장 지글러의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 중에서     


   2015년 현재 지구상에는 73억 명이 살고 있는데 이들 가운데 10억 명 이상이 심각하고도 상시적인 영양실조에 시달리고 있다. 이 책의 초판에 1999년에 출판되었고 그 후 여러 쇄를 거듭했다. 전 세계의 수많은 언어로도 번역되었다. 이번 판을 찍으면서 나는 본문에선 전혀 손대지 않았다. 이 세계를 지배하는 살인적 체제가 지닌 구조적 폭력성은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 오직 희생자들의 숫자에만 변화가 있을 뿐이다. 끔찍할 정도로 증가했으니까.

   오늘날 세계 인구 중 10억 명이 심각하고도 만성적인 영양실조로 신음하고 있다. 4분마다 어린이 1명이 비타민 A결핍으로 시력을 잃는다. 노마는 유년기 영양실조 때문에 걸리는 질병 가운데 하나로 해마다 14만 명의 새로운 환자가 발생한다. 이 병에 걸리면 안면 조직이 파괴된다. 하지만 몇 가지 항생제 복용과 적절한 섭생만으로 얼마든지 손쉽게 치료할 수 있다. 이 지구상에서 10세 미만의 어린이가 5초마다 1명씩 기아로 사망한다. 이 같은 통계자료를 제공하는 FAO의 연례보고서에 따르면 지금 시점에서 세계의 농업 생산량은 “정상적이라면” 120억 명을 먹여 살릴 수 있다고 한다. 그런데 2011년 현재 지구상에는 약 67억 명가량이 살고 있는 것으로 추산된다. 

  그렇다면 어떤 결론을 내려야 할까? 기아로 인한 죽음에는 어떠한 필연성도 없다. 기아로 죽는 어린아이는 살해당하는 것이다. (중략) 

  그렇다면 희망은 어디에 있는가? 희망은 서서히 변화하는 공공의식에 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수천만 명이 기아로 사망하고, 수억 명이 만성 영양실조에 시달리는 것이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자 피할 수 없는 숙명처럼 여겨졌다. 그러나 현재는 그 주범이 살인적이고 불합리한 세계경제질서라는 사실을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명확하게 인식하고 있다…(중략) 현실은 살인적인 부정의로 물들어 있다. 풍요가 넘쳐다는 행성에서 날마다 10만 명이 기아나 영양실조로 인한 질병으로 죽어간다. 그렇지만 인간의 의식은, 희생자들뿐만 아니라 북반구 국민들의 의식은 이런 상태를 오래 참지 못할 것이다. 변화된 의식은 지구상의 모든 사람들이 충분한 식량을 확보하고 인간다운 삶을 누리기를 원한다. 기아로 인한 떼죽음은 참으로 끔찍한 반인도적 범죄다. 다른 사람의 아픔을 내 아픔으로 느낄 줄 아는 유일한 생명체인 인간의 의식 변화에 희망에 있다.  

작가의 이전글 스크린처럼 공항의 매력이 집중된 곳은 없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