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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wimming Oct 19. 2024

(백수일지) 31살에 백수가 된 키라

6. 말간 웃음

d+15

운전연수를 받으면서, 의정부까지 차를 운전해 다녀왔다. 운전을 배우면서 나는 31살 만에 '좌회전 비보호'의미를 알게 되었다. 이전에는 신경 쓰지 않은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이정표와 노면표시도 마찬가지였다. 긴장하면서 운전을 2~3시간 하다 보면 녹초가 되어버린다. 세상에 쉬운 게 없다. 나이가 들어도 처음은 너무 힘들다.


지친 몸을 이끌고 우리 동네에서 내가 제일 좋아하는 만두집으로 향한다. '춤추는 왕만두' 이름부터 귀엽고 신난다. 춤추는 왕만두를 좋아하기 시작한 건 3개월 전쯤이다. 출근길 이른 아침, 길거리에 모락모락 김을 내뿜고 있는 춤추는 왕만두의 찜통기를 보았다. 이후 퇴근길에 들려 내가 좋아하는 김치만두를 사 먹었다. 내 주먹만 한 크기에, 속이 꽉 찬 김치와 다진 고기, 당면. 가게 이름처럼 주인아주머니는 춤추는 듯한 말간 웃음을 가진 사람이었다. 만두를 시키면, 아주머니는 말갛게 웃으며 "고마워요~"라고 말하시는데, 그 말간 소녀 같은 웃음이 잊히지 않는다. 나이가 들어도 순수할 수 있구나를 느꼈다.


나이가 들면 자기 얼굴, 인상 혹은 분위기에 책임이 있다는 말이 있다. 학생 때까지만 해도 이 말의 의미를 체감하지 못했다. 하지만 나이가 듦에, 이 말이 뜻하는 바를 알게 되었다. 버스를 타고, 물건을 사는 짧은 순간에도 말갛게 웃는 사람들, 다정하게 인사하는 사람들이 있다. 물론 화가 났나 싶을 정도로 인상을 쓰는 퉁명한 사람들도. 어른이 되면 많은 것들을 알게 될 것 같지만, 사실 내가 어떻게 숨 쉬고 있는지, 어떤 자세로 걷는지, 몸이 구부러져 있는지,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도 잘 모른다. 난 내가 얇은 호흡을 하는 사람인지를 30살 요가 수업에서  깨달았다. 내가 평소에 어떤 표정인지도 몰랐다. 자신을 잘 모른 체로 어른이 되어버린 것 같다.


아이들이 아무에게나 웃으며 인사하는 그런 다정함, 순수함을 내 마음속에 남겨두고 싶다. 내가 최소한의 다정함을 실천하는 방법은 버스를 탈 때, 무조건 인사하기다. 인사를 하고 나면, 안 좋던 기분도 나아지는 것 같다. 타인을 배려할 마음과 여유는 아직 가지고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어, 나 자신이 괜찮은 사람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아무것도 아닌 것에 웃음 지을 수 있고, 처음 보는 사람에게도 밝게 인사할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되길 원한다. 대기업에 다니고, 건물주이고 모두가 인정하는 사람이라도 다른 사람에게 웃음 한 번 짓지 못하는 사람이라면, 앞의 전제가 의미가 있는 것인가. 마음이 가난하지 않은 사람. 그런 사람이 결국 세상을 변하게 만드는 거 아닐까 하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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