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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별성제가 뭐길래

by 염치불고


흔히들 일본 사회가 한국과 비교해 보수적이라고 이야기한다. 일본에 머물며 특히 실감했던 것이 젠더와 관련된 것들이었다. 확실히 일본은 가부장제적 관점에서 여성에게 성역할을 강요하는 측면이 강하다. 간단한 수치만 확인해도 일본 여성은 사회진출이나, 고용, 임금 격차는 물론 교육기회에서도 남성에 비해 차별받고 있다.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성평등 지수 순위에서도 일본은 G7 국가 중 늘 압도적인 꼴찌를 차지하고 있으며, 그다지 좋은 성과를 내고 있지 못한 한국에 비해서도 한참 뒤처진 축에 속한다. 지난해 6월 세계경제포럼(WEF)이 발표한 남녀평등 순위에서 조사 대상 146개국 중 한국은 94위, 일본은 118위를 기록했다.


일본 사회의 이런 보수성을 상징하는 사례 중 하나가 부부별성제 논란이다. 부부별성제란 남편과 아내가 서로 다른 성을 쓰는 것을 말한다. 부부별성을 당연히 여기는 한국인으로서는 대체 이게 왜 논란인가 싶지만, 일본은 결혼하면 부부가 같은 성을 사용해야 하는 부부동성제를 의무화하고 있는 나라다. 부부동성제를 유지하려는 이들은 가족의 일치성을 강조하는데, 엄밀히 보면 95% 이상이 남편의 성을 따른다. 일본 여성들은 결혼과 함께 성을 바꾸고, 또 이혼을 하게 될 경우 성을 다시 바꿔야 한다. 물론 일본만이 남편 성 중심의 부부동성제를 유지하는 것은 아니다. 서구의 많은 나라에서 선택적으로 부부별성제를 허용하는 것과 달리 일본은 “부부별성을 선택하면 일본 사회의 근간이 무너진다”며 강력히 반대한다. 실제로 일본에서는 2015년과 2021년 이 부부별성제를 요구하는 소송이 제기됐지만 당시 한국의 대법원 격인 최고재판소는 “부부 등 가족이 같은 성을 쓰는 게 합리적”이라는 판결을 내렸다.


일본이 자주 강조하는 다양성이라는 게 성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일본 도호쿠대 고령경제사회연구센터 요시다 히로시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선택적 부부별성제가 도입되지 않으면 약 500면 뒤인 2531년에는 일본인 모두의 성씨가 ‘사토’가 될 수 있다고 할 정도다. 현재 일본 성씨 중 사토의 점유율은 약 1.5%로 가장 많은데, 부부동성제가 계속 유지될 경우 결국 가장 많은 성인 사토 씨만이 남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실제로 메이지 시대 이후 일본에 약 13만 개의 성이 있었지만 현재 5만 개 정도만 남아있다고 한다.


최근에는 전반적인 여론도 선택적 부부별성제를 찬성하는 방향으로 바뀌는 추세라고는 하지만(NHK 여론 조사에 따르면 10명 중 6명 이상인 62%가 선택적 부부별성제에 찬성했다)

지난해 차기 총리를 뽑는 격인 보수 자민당 총재 선거 과정을 보면서 여전히 이 나라가 가족의 다른 성을 인정하기까진 꽤 긴 시간이 걸릴 거 같다고 생각했다. 선거 초반까지 만해도 유력 후보였던 고이즈미 신지로 전 환경상이 최종 선거에서 3위로 추락한 결정적인 이유가 바로 부부별성제를 강력히 주장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사실 좀 놀라운 것은 이들이 이처럼 소중히 여기는 부부동성제도 서구로부터 받아들인 수입품이라는 사실이다. 일본에 성이라는 개념이 생기고 부부가 같은 성을 쓰기 시작한 역사는 메이지유신 이후, 겨우 150년 정도밖에 안 된 일이란다. 한국인인 나에겐 그저 신기할 뿐이다. 철 지난 영화 대사처럼, 뭣이 중한디,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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