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드라마 등장인물에게선 위화감이 들 때가 있다면 일본 드라마는 별로 그런 건 없는 것 같아요.”
한국 드라마 팬인 60대 A 씨와 한국 드라마와 일본 드라마의 차이를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다 나온 얘기다. 생각해 보니 한국 드라마에서 동네 아저씨 아줌마보다 더 자주 등장하는 이들이 재벌이긴 하다. 재벌이 갑질을 하기도 하고, 재벌에게 복수하기도 하며, 재벌과 사랑에 빠지기도 한다. 살면서 재벌을 실제로 만나로 본 한국인이 몇이나 될까. 우리는 확실히 재벌이 등장하는 이야기를 좋아한다.
그에 비하면 일본 드라마 속 인물들은 소박하고 평범한 쪽이 많다. 대신 등장인물의 업(業)이 눈에 띄는 편이다. 직업 자체가 특이한 사례도 있지만 흔하고 익숙한 직업이라도 그 업의 특징을 정교하게 파고들어 특별하게 부각한다는 느낌을 자주 받았다.
개인적으로 인상적이었던 사례는 출판사를 배경으로 한 드라마들이었다. 일본이 출판대국이라고는 하지만 출판업을 배경으로 부각하기엔 다소 정적이지 않나. 게다가 흔히 출판사라고 하면 떠올리기 쉬운 소설이나 교양서 편집자, 패션잡지의 편집자가 아닌 교열직원(‘수수하지만 굉장해! 교열걸 코노 에츠노’)이나 사전 편집자(‘배를 엮다’)가 드라마 주인공으로 등장할 땐 꽤 문화충격을 받았다. 영상콘텐츠의 특성상 등장인물의 직업은 화려하고 역동적일수록 시선을 끌기 마련일 텐데 이처럼 수수한 선택을 하는 데는 그만큼 튀지 않고 묵묵히 제 역할을 하는 인물에 대한 선호가 높기 때문 일거라고 생각했다. 은행원이나 철도원, 나사 공장 기술자 같은 직업이 자주 등장하는 것도 비슷한 이유가 아닐까.
“한국 드라마가 환상을 추구한다면, 일본드라마는 성장을 추구하지.”
일본 드라마로 일본어 능력을 완성한, 일드 좀 본 한국인인 남편의 해석이었다. 그 말에 꽤 공감했다. 확실히 한국인은 로맨스부터 막장까지 드라마를 통해 직접 겪지 못한 세계를 느끼고 싶어 한다. 반면 일본 드라마의 끝은 교훈적일 때가 많다. 이토록 평범하고 부족했던 주인공이 이렇게 기특하게 한걸음 성장했다, 식의 훈훈한 마무리. 뭉클하기도 하지만 가끔 교과서 같은 느낌을 준다.
여기에 드라마 시청층의 인구학적(?) 변화도 영향을 준 듯하다. 한국 드라마의 장르나 소재가 최근 많이 다양해졌다지만 여전히 로맨스의 비율이 높다는 내 얘기에 일본인 A 씨는 과거 일본 드라마에서도 그런 흐름이 있었지만 시청자들에게 외면받고 최근에는 러브 스토리가 줄었다고 전했다. “나이 많은 시청자들은 사랑 얘기 별로 관심 없으니까요.” 일본 드라마에 로맨스가 줄어든 데는 고령화도 한 원인이라는 게 우리의 공통적인 의견이었다.
물론 내가 지금까지 봐 온 한일 드라마의 양은 거대한 해변의 한 줌 모래알 수준에도 못 미친다. 그래서 한드는 이렇고 일드가 이렇다, 라며 성급한 일반화를 하며 글을 마치려니 망설여진다. 뭐, 드라마는 드라마일 뿐, 해석은 자유니까. 혹시 당신의 해석이 다르다면, 어쨌건 당신도 옳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