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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J가 되는 버스기사

by 염치불고

출퇴근길 버스를 자주 이용한다. 우리 집 앞 버스 정류장에서 회사 인근까진 다섯 정거장 정도 거리인데, 내가 버스에 오르는 오전 8시경 70** 버스는 곧 밥알이 터져 나올 듯 한 김밥의 모양새를 하고 있다. 승차 시 앞문을 이용하라는 문구가 있지만, 이 시간대 버스에 오르는 승객들은 앞문과 뒷문을 그날의 눈대중으로 선택한다. 언젠가는 앞문 승차가 원칙이라며 뒷문을 열어주지 않았던 기사가 있었다. 버스 앞문 계단까지 사람이 차서 결국 버스에 오르지 못한 이들에게서 항의가 빗발쳤다. “앞에 사람이 가득 차서 더는 못 타요. 다음 차 타세요!” “기사님, 뒤는 공간이 좀 있어요. 제발 뒷문을 열어달라고요!”

당시 승객과 원칙을 내세우며 입씨름한 기사는 끝까지 뒷문을 열지 않았고 매정하고 융통성 없는 사람으로 욕을 먹었다. 아마 그날 일부는 서울시 민원상담창구인 다산콜센터에 해당 기사에 대한 불만을 접수했을지 모르겠다. 그날 이후 다시 정류장에서 앞문과 뒷문으로 선택적 승차하는 관행은 지속되고 있으니 말이다.

출퇴근길 종종 성나 보이는 버스의 기사들은 접할 때가 있다. 정체가 심했던 퇴근길, 또다시 터지기 직전의 김밥 같은 버스에서 승객들이 서로의 몸을 밀고 기대며 아수라장을 이루는 와중, 버스 기사는 조용한 욕, 포기의 한숨과 함께 엑셀과 브레이크를 지속적으로 밟았다. 버스 속 밥알들이 앓는 소리를 내며 꿀렁거렸다. 나는 인산인해 속에서 버스 손잡이를 간신히 쥐고, 안전진단을 받지 못한 놀이공원의 ‘디스코 팡팡’을 타는 기분을 느꼈다.


서울에 비하면 도쿄의 버스는 확실히 더 여유로워 보인다. 도쿄생활 초기 버스를 탈 때 나는 자주 기사들이 찬 헤드셋을 주목했다. 주로 대형 학원 강사 혹은 라디오 DJ를 떠올리게 하는 모양의, 마이크 기능이 있는 헤드셋이었다. 많은 기사들이 이 헤드셋을 통해 지속적으로 안내를 했다. 주로 남성이 많았는데 마치 옛날 다방 DJ처럼 약간 낮은 목소리로 “이제 출발합니다.” “왼쪽으로 커브를 도니 손잡이를 잡아주세요.” “하차하시겠습니다.”라고 안내했다. 이들은 정류장에 대한 녹음 안내 방송이 나옴에도 끊임없이 추가로 안내를 진행했다. 출근길 휠체어를 탄 장애인이 버스를 탈 때도 목격한 적도 있다. 운전기사가 직접 버스에서 내려 장애인 승객의 휠체어를 지정된 자리에 고정시켰다.

물론 도쿄에서도 출퇴근 시간대에는 서울 못지않은 수준의 만원 버스를 타야 한다. 다만 눈치 싸움에 대한 스트레스는 덜한 편이었다. 전철과 마찬가지로 버스 역시나 한 줄로 기다리다가, 정해진 곳에서 기다리던 버스에 올랐다. 예상 가능한 곳에서 버스를 타는 데 좀 더 피로를 낮춘다는 걸 경험했다. 버스의 속도는 다소 느린 편이다. 또 버스가 완전히 정차하기 전까지 승객들은 자리에서 일어나면 안 되는 무언의 규칙이 있다. 언젠가 한국에서의 습관처럼 정류장에서 내리기 전 미리 하차를 준비하기 위해 자리에서 이동해 움직였는데, 나를 바라보는 주변의 불편한 시선을 느끼고 당시 이유를 몰라 어리둥절했던 적이 있다.


도쿄의 버스가 서울보다 더 낫다 류의 주장을 하려는 것은 아니다. 사실 버스를 비롯한 한국의 대중교통수단은 비단 일본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비교해도 뛰어난 점이 많다. 저렴한 가격에 환승할인이 적용되고, 시간의 오차가 없이 운영되는 서울 버스의 효율성은 세계적인 자랑거리다. 최근에는 버스 내에서 와이파이가 되고, 충전용 USB 포트가 있는 전기버스가 꽤 많이 도입됐다.

다만 내가 도쿄 버스에서 부러웠던 것은 공동체가 어떤 가치를 더 우선으로 추구해야 할지에 대해 좀 더 세부적인 합의가 잘돼 있다는 점이었다. 도쿄의 버스는 좀 더 느리더라도 안전한 것, 약자에 대한 배려를 우선시했고 그를 위한 세부 규칙을 지키고 있었다. 지난여름 버스 급출발로 하차하던 80대 노인이 정류장에서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한 것을 보고 우리의 빠르고 성난 버스에 대해 한 번 더 생각했다. 좀 속도를 낮추고 공동체가 우선시해야 할 가치에 대해 생각해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이건 사실 버스만의 문제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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