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한겨울에도 얇은 상의에 반바지를 입는 동네 아이들을 보고 놀라곤 했다. 특히 단체로 놀이터에 나들이 온 아이들이 외투 없이 셔츠만 달랑 가볍게 입고 있는 모습을 보고선 어린이집의 아동학대를 의심했을 정도다. 도쿄의 기온이 서울보다 다소 높은 것은 사실이나 엄연히 겨울은 겨울 아닌가.
나중에 일본어 표현 중 바람의 아이(かぜのこ·風の子)라는 말이 있다는 걸 알게 됐다. 아이들은 찬바람에서도 잘 뛰어논다는 뜻이라고 한다. 어릴 때 춥게 키워야 면역력이 길러져 나중에 추위를 덜 탄다는 속설 있다고 했다.
“진짜요?” 실제로 과학적인 근거가 있냐고 궁금해하는 내게 이 말을 알려준, 일본에서 20년간 산 한국인 지인이 고개를 저었다. “과학적인 근거가 어디 있겠어요. 속설일 뿐이죠.”
그런데 도쿄에서 겨울을 두 번 나면서 어쩌면 그 속설이 사실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엄청나게 추운 일본 집 때문이다.
일본 집은 정말 춥다. 지진 위험 때문에 비교적 가벼운 단열재를 사용하고 고온다습한 여름 기온에 맞춰 통기성을 특화한 구조를 갖췄기 때문이라고 한다. 도쿄에 오기 전부터 춥다는 얘긴 많이 들었는데 이렇게 추울지는 몰랐다. 도쿄의 집에 머물던 초기, 한국에서의 습관처럼 맨발로 마룻바닥을 걷다가 차갑다 못해 아프다는 느낌을 받았다. 동상에 걸릴지 모른다는 생각에 얼른 양말을 신기 시작했다. 나중엔 실내 슬리퍼로도 부족해 덧신까지 신고 지냈다. 내복을 챙겨 입는 것은 물론이다. 유니클로가 히트텍으로 히트를 친 데는 바깥보다 추운 일본 집이 있었다.
겨울밤에는 두꺼운 이불을 덮고 바닥에 전기장판을 깔고 자도, 추워서 코가 얼얼해질 때가 있다. 우리 집은 에어컨과 온풍기 히터가 하나로 통합된 기기를 사용했는데 머리 위에서 따뜻한 바람이 나와도 공기 순환의 원리에 따라 차가운 공기가 가라앉고 뜨거운 공기가 위로만 돌다 보니 방이 데워진다는 게 쉽게 체감이 되지 않았다. 이 정도면 방이 아니라 가벽이 세워진 베란다라고 해야 하는 게 아닌가, 싶은 마음이 자주 들었다.
물론 일부 집은 유카단보라는 일본식 바닥 난방 시설을 갖췄다고 한다. 그러나 거실 등 한정적인 장소에서만 가능한 데다 한국식 온돌의 후끈함은 애초 기대하는 게 어렵다.
그래서 이런 집에서 계속 살고 지내는 사람들이라면 기본적으로 모두 추위에 강하다고 해도 되지 않을까 싶은 것이다. 적어도 보통의 일본인이 보통의 한국인 대비 추위에는 잘 견디는 게 맞는 것 아닐까, 이것이 바로 어릴 때 찬바람 속에서 키운 효과인가… 추운 새벽 강제 기상을 하고 이불을 끌어올려 덮을 때면, 억한 마음에 이렇듯 비과학적인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확실히, 나는 바람의 아이가 아닌 온돌의 민족인지라 요즘처럼 추울 때는 바닥 난방이 가능한 한국 집이 최고라고 생각한다. 따뜻한 바닥에서 맨발로 걷고 등을 댈 수 있다는 건 얼마나 행운인가, 일본 집에서 자주 생각했다. 너무 ‘국뽕’ 같지만, 정말 온돌 만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