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이 아프다고 했다.
아무리 피곤해도 노는 일이라면 언제든 두 팔 벌려 환영인 아이.
초등에 입학하고 중학생이 된 지금까지 낮잠을 잔 횟수가 다섯 손가락에 꼽을 만큼 체력이 좋은 아이.
어느 정도 열이 나는 것 따위는 아픈 것도 아닌 혈기왕성한 아들이 본인 입으로 아프단다.
열도 조금 있는 것 같고, 기침이 심해 이비인후과에 갔다가 대기 1시간 만에 겨우 진료를 보고 나왔다.
애초에 늦은 등교를 결심했기에 아이를 학교 앞에 내려주고 힘들면 조퇴하라는 말과 함께 근처 카페에서 기다렸다. 아이는 두 시간 만에 조퇴를 했고, 먹고 싶다던 자장면과 탕수육을 먹으러 갔다.
그런데 자장면을 반 넘게 남기는 게 아닌가?
아들을 키우며 난생처음 보는 장면에 어리둥절했다.
’어! 얘가 많이 아프구나! ‘
몇 개 먹지 못한 탕수육을 포장해 집으로 오며 힐끗힐끗 아이를 살폈다. 하지만 음악을 들으며 평소와 같이 행동하는 것을 보니 조금은 안심이 되었다.
하지만 집에 온 아이는 그 길로 약 먹는 시간을 빼고 내리 16시간을 잤다. 아이의 이마가 뜨거운데 새로 산 체온계는 정상을 가리키니 내가 잘못 느끼는 건지 헷갈렸다. 아이는 잠을 자며 식은땀을 흘리고 기침을 많이 했다. 음식이라도 잘 먹어주면 좋으련만 한 숟가락 겨우 뜨는 모습에 마음이 아팠다.
그렇게 사흘을 꼬박 앓은 아이는 그새 체중이 3kg이나 줄어 있었다. 엄마 속은 타는데 체중이 줄어든 것을 보고 기뻐하는 사춘기 아이를 보니 이제 살아나는구나 싶었다.
그런데 이번엔 남편이 이상하다.
잔병치레가 전혀 없는 사람인데 몸이 무겁고 머리가 아프다고 했다. 급기야 다음 날 출근을 못하겠단다. 평소 웬만큼 아프지 않고서는 티도 안내는 사람인데 출근을 못하겠다니.
아직 기침 중인 아들과 함께 병원을 다녀오라고 했다. 나란히 병원을 가는 부자의 뒷모습을 보니 이게 무슨 일인가 싶은 마음이 들었다.
내 머리도 지끈거렸다. 타이레놀 두 알을 털어 넣었다. 조금 괜찮아지는 듯했다. 남편도 사흘쯤 지나자 기력을 조금씩 회복하는 것 같았다.
난 그동안 꾸준한 두통이 있었지만 병원을 갈 정도는 아닌 것 같아 타이레놀로 근근이 통증을 삭혔다.
다음 날은 급식봉사도 있고 해서 모두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아침에 몸이 조금 무거웠지만 대체자를 구할 수 없으므로 일단은 학교에 갔다. 가는 중에 둘째에게 전화가 왔다.
"엄마, 콧물이 너무 많이 나서 휴지를 30장은 쓴 것 같아요. 너무 힘들어요"
오전 내내 봉사를 해야 했으므로 아이에게는 등교를 하고 너무 힘들면 조퇴를 하라고 일러두었다. 그러고는 담임 선생님께 사정 설명을 드리고 아이가 원하면 조퇴를 시켜주십사 메시지를 전송해 놓았다.
아침 8시 30분부터 시작된 봉사활동은 배식이 끝나는 1시 넘어까지 계속되었다.
봉사 중간에 잠시 짬을 내어 둘째와 통화를 하니 아이는 조퇴를 해서 집에 있었고, 너무 아프다며 울먹였다.
일이 끝날 때쯤 되니 몸이 너무 힘들었다. 집에 오자마자 아이를 데리고 바로 병원으로 향했다. 의사 선생님께 독감 검사를 의뢰하고 검사를 받았다.
둘 다 A형 독감. 체온은 38.8도. 기가 막혔다.
남편과 아들도 검사만 하지 않았을 뿐 독감이라는 합리적 의심을 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독감이라는 녀석 아주 힘이 센가 보다.
누구보다도 건강한 집단이라 생각됐던 우리 가정을 초토화시키다니.
앉아있는 사람 하나 없이 모두 누워 지내는 이 진귀한 풍경에 남편은 역병이 돈 것 같다며 두 번 겪고 싶지 않다 했다. 네 개의 약봉지를 바라보는 그 마음이 참 허탈하다.
질긴 후유증에 컨디션 회복도 쉽지 않은 잔인한 독감.
다시는 겪고 싶지 않은 5월의 독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