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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시 시작하는 마음 Sep 17. 2024

추석 그 후

2024. 9. 17.

이미지 출처: 채널A


브런치스토리로부터 글을 쓰라는 알림을 받고도 계속 일기를 쓰지 못했다. 긴 글을 쓰는 것도 아닌데 노트북 앞에 앉는 일을 피했다. 몸이 피곤해서 글을 쓰지 못한 것이 아니다. 부끄럽고 부족한 나를 글로 확인하는 것이 두려웠던 것 같다.


길게 이어지는 휴일이 되어서야 나는 어렵게 마음을 내어 노트북 앞에 앉았다. 역시 글을 쓰려면 스트레스를 받아야 된다. 어제와 오늘, 시댁에서 며느리 역할을 해내며 나는 적잖이 피곤했고 곤란했다. 시댁에서의 나는 조금 다른 사람이 된다. 뭐든 잘 해내고 싶은 마음보다는 적당히 하고 싶은 마음이 앞선다. 이것이 현명한 것인지 영악한 것인지 잘 모르겠다. 


명절을 앞두고 아니 나는 수시로 시댁에 대해 생각한다. 시어머니의 다정함과 시누이들의 살가움이 떠오른다. 시어머니의 모진 말과 시누이들의 경솔한 말도 같이 떠오른다. 시댁에 대한 내 나름의 결론을 내렸다. 좋은 사람도 온전히 좋아할 수 없게 만드는 것이 시댁과의 관계라고. 시댁 식구들 모두 좋은 사람이지만 나는 그들을 온전히 좋아하지 않았다. 지난 15년의 결혼 생활 동안 나는 시댁 식구들을 좋아하지 못하는 것에 대해 약간의 죄책감을 느껴왔다. 좋은 사람을 좋아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고 나서 나는 시댁 식구들을 죄책감 없이 더 편하게 미워할 수 있게 되었다. 내가 그들을 좋아해야 할 의무는 없다.


어제는 며느리를 배려해서 혼자 열심히 제사 음식을 준비하신 시어머니가 갑자기 다른 며느리는 음식을 해오는데 우리 며느리는 안 해온다는 말씀을 하셔서 상처를 받았다. 속으로 '나랑 싸우자는 건가'하는 생각을 했다. 관계에 있어서도 예민한 감각을 가진 둘째 아이의 말에 따르면 시어머니의 말을 들은 내 표정이 순간 굳어졌다고 한다. 나는 어머니의 피곤함에 공감하는 현명한 며느리가 되기보다 얼른 이 문제의 해결책을 제시하는 것으로 대처했다. 

"어머니, 설에는 제가 점심과 저녁 반찬을 준비할 테니 어머니께서는 제사 음식만 준비하시면 어떨까요?"

그렇게 훈훈하게 마무리했다.


오늘은 철딱서니 없는 시누이의 행동을 보고 기막혔다. 이혼한 시누이를 뺀 나머지 형제 부부끼리 같이 스크린 골프장에 다녀왔다. 그 시누이는 골프를 치지 못한다. 그만 빼고 가는 것이 마음에 걸렸지만 언제까지 그를 배려하기 위해 눈치를 볼 수는 없었다. 시댁으로 돌아가서 그를 보니 삐친 사람처럼 말도 하지 않고 말을 걸어도 툴툴거렸다. 나이 오십을 바라보는 그의 아이 같은 행동이 참 꼴 보기 싫었다.


이런 일을 겪을 때마다 나는 어떤 사람인지 돌아보게 된다. 시어머니처럼 피곤함을 솔직하게 말하지 못하고 애꿎은 사람을 들들 볶는 사람이 나일지도 모른다. 시누이처럼 타인에게 내 마음을 다 받아주고 알아주기를 무턱대고 바라는 사람이 나일지도 모른다. 그들이 했던 행동 모두 내가 남편에게 했던 행동인 것 같아 살짝 뜨끔했다.


어쩌면 명절은 직장 다니느라 아니면 사는 게 바쁘다고 미뤄두었던 일을 하라고 있는 것 같다. 고마운 사람에게 인사와 선물을 건네고 부모님께 용돈을 드리고 형제를 만나 서로 못 볼 꼴을 보이고 다시 관계를 이어가는 기술을 연마해야 한다. 그러면서 나는 무엇에 고마움을 느끼고 그 고마움을 얼마의 돈으로 표현하고 싶은지 고민하고 형제라는 타인을 보며 나를 비추는 일까지 해낼 수 있게 된다. 결국 내가 만나는 타인 모두가 나를 비추는 거울이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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