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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향 Oct 22. 2023

여행에서 늘 새로운 나를 만난다

에필로그

  나에게 여행은, 어쩌면 유일한 사치이다. 여행은 신나고 설레기도 하지만, 때로는 긴장되고 두렵기도 하다. 그래서 막상 여행을 가서는 지칠 때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행을 좋아하고, 늘 다음 여행을 꿈꾼다. 여행을 통해 체험하는 새로운 문화가 호기심을 자극하고, 스치는 사람들의 모습이 흥미로우며, 낯선 도시에 잠깐 머물며 그 거리와 풍경이 익숙해지는 일련의 과정이 짜릿하다. 예상치 못한 상황에서 대처하는 내 모습을 통해 내가 어떤 사람인지 새로운 나를 만나기도 한다.

 

  한동안 여행을 못했다. 그래도 다행히 코로나19가 막 시작할 무렵인 2020년 1월에 대만 일주를 다녀왔고, 이번 여행은 그 뒤 삼 년 만의 해외여행이다. 사실, 단순히 해외여행이라고 할 수 없는 글로벌 스터디 연수로 팀원들과 해외기관 탐방을 다녀오는 김에 혼자 남아서 여행하고 하고 온 것이라 온전한 여행이라 말할 수는 없다. 연수 과정은 우여곡절도 많고 어려웠지만, 그래도 남아서 여행을 할 수 있어 행복하고 감사했다.

 


  여러 가지 일들로 인해 이제부터는 일에 쏟는 에너지를 좀 줄이고, 나를 위한 시간을 더 많이 보내고 주말이나 방학 때는 쉬면서 보내기로 굳게 다짐까지 했더랬다. ‘그래, 이제는 아무것도 하지 말고, 나를 위해 쉬면서 재충전하자.’

 

  다짐이 무색하게 2022년 5월에 모 기업의 재단에서 교사를 대상으로 기업가정신 교육을 주제로 근 9개월에 걸친 장기 연수를 신청하고 말았다. 대학 자소서에 버금가는 심층적인 질문을 담고 있는 4개 문항에 일주일 동안 끙끙대며 지원서를 작성했다. 선발과정이 어찌나 까다로운지 마치 입사시험 마냥 2차 심층 면접까지 치렀다. 연수를 같이 받자고 나를 꼬드긴 H언니는 1차 서류 작성 때 이미 포기했던 터라, 혼자 굳이 장기간의 연수를 받을 의욕도 없어 마음을 비우고 2차 면접을 보고 왔다. 결과는 전국에서 30명의 교사를 선발하는 연수 과정에 높은 경쟁률을 뚫고 합격. 평일 저녁 온라인 줌 연수, 주말 집합 연수, 방학 동안의 합숙 워크숍 등 9개월 간의 힘든 연수 끝에 팀별로 기업가정신 교육 프로그램을 개발했고, 그 마지막 과정으로 기업가정신 관련 해외 선진 기관을 탐방하는 글로벌 스터디를 가게 되었다.

 

 코로나19로 인해 2,3기 연수생들은 글로벌 스터디를 가지 못한 상태였기에 우리 4기 역시 글로벌 스터디를 갈 수 있을는지는 미지수였다. 감사하게도 2023년 1월, 우리 4기 연수생 전원이 미국, 프랑스, 독일, 네덜란드, 스위스 등으로 기관 컨택을 직접 하고, 드디어 팀별 글로벌 스터디 출발!

 

 삼 년만의 해외 출국이라 설레기도 했고, 단순 여행만이 아닌 컨택한 기관을 탐방하여 인터뷰를 하고, 추후 보고서와 지원금 정산까지 해야 하는 복잡한 과정에 마음이 무겁기도 했다. 주로 혼자 자유여행을 다녀봐서 팀원들과 함께 하는 여행이 괜찮을지 염려도 되었다. 우리 팀이 기관탐방을 하기로 한 곳은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로테르담, 에인트호벤에서 4개 기관, 그리고 마지막 일정은 독일 베를린에서 1개 기관을 방문했다. 약 9일 정도의 짧은 기간 동안 5개 기관을 탐방하고, 짬을 내어 여행도 해야 하는 빡빡한 일정이었다.

 

 해외에 한 번 나오는 게 얼마나 어려운데, 이렇게 타이트한 스케줄로 글로벌 스터디 기관 탐방만 하고 돌아가기는 너무 아쉬운 노릇이었다. 팀원들은 귀국하고 나는 혼자 남아 더 여행하기로 계획을 세웠다. 여행 중에 글로벌 스터디 보고서 작성과 회계 정산으로 바빠서 5시간도 채 잘 수 없는 상황이었던지라 일기조차 제대로 쓰지 못했다. 혼자 여행하면서도 하루하루의 일정이 피곤하여 자세하게 기록을 남기지 못했다. 일정만 간략하게 써 놓은 채 듬성듬성 비워 놓은 일기장을 귀국한 날 인천공항에서 채웠다.

 

 여행에서 남는 건 사진뿐이라는데, 유럽의 1월은 날이 궂어 사진도 많이 찍지 못했다. 네덜란드에서는 계속 우산을 쓰고 다녔고 세찬 비바람에 팀원 K의 우산이 망가졌을 정도였다. 베를린에서는 다행히 비가 오지는 않았지만, 거친 바람에 패딩만 입고 다녔다. 포르투갈로 건너가니 비로소 하늘은 맑고 푸르렀으며 날은 화창했다. 1월인데 낮에는 반소매 옷을 입고 다니는 사람들이 많았다.

 

 여행을 마치고 몇 달이 흐른 지금에야 다시금 일기장과 수첩을 꺼내 보고, 사진첩을 뒤적거리며 지난 여행을 정리해 본다. 팀원들과 함께 했던 네덜란드와 베를린에서의 공식적인 일정과 짧아서 더 알차게 보낸 자유시간, 그리고 혼자 남아 즐긴 하이델베르크와 포르투갈 여행. 그곳에서 우연히 만난 사람들과의 추억 등 마음 한 편에 저장되어 있는 이야기들을 담아내었다.

 


  오랜만의 해외 나들이, 이번 여행에서 내가 경험하고 느낀 것은 무엇이었을까. 혼자 해외를 다니면서 여러 가지 감정을 느끼곤 한다. 아름다운 경관을 보며 감탄하고 황홀해하다가도 거대한 자연 앞에 선 한낱 미물과 같은 인간의 존재를 깨닫고 겸허해졌다가 온 세상 만물을 질서 있게 움직이시는 하나님의 섭리에 경외감이 들기도 한다. 태어나서 처음 먹어보는 새로운 요리에 포만감 못지않게 만족감을 느끼며 인생의 행복이 별다른 게 아니구나, 소소한 행복을 느끼기도 한다. 대단히 좋은 일이 생겨야만 삶이 기쁜 게 아니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평안한 삶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깨닫기도 한다. 나와 마주친 사람들이 흔쾌히 베푼 크고 작은 친절과 도움을 통해 더불어 세상을 살아가는 태도와 자세를 지니고 작게나마 실천하는 것이 인류애의 시작임을 알게 된다.


  또한, 모든 존재는 마땅히 존중받아야 하는 소중한 존재임을 깨닫는다. 무엇보다 나는 소중하며, 내가 먼저 나를 더 많이 사랑해야겠다는 마음이 든다. 여행을 통해 나는 늘 새로운 나를 만나게 되고, 조금 더 성숙해져서 돌아온다.

 

  여행 이야기를 정리하다 보니 벌써 다음 여행을 떠나고 싶다. 싱가포르, 호주, 뉴질랜드, 캐나다, 핀란드 등 가보고 싶은 곳이 너무 많다. 계속해서 또 다른 여행을 하며 새로운 나를 만나고, 그 이야기들을 꾸준하게 담아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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