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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향 Mar 31. 2023

리시드는 튀르키예에서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인천공항에서 만난 리시드

  인천공항에서 꼬박 하룻밤을 보내면서 잠도 못 자고, 의자에 앉아 일기를 쓰고 있었다. 물병을 꺼내려고 가방을 열고 있는데, 어떤 외국인 아저씨가 다가와서 무슨 말을 했다. 영어도 아니고 어느 말인지 몰라서 못 알아듣겠다고 했더니 그는 핸드폰의 번역기에 대고 또박또박 다시 말한다. 


  "이스탄불에 가는 비행기를 타야 하는데, 어디에서 기다리면 되나요?"


  그가 보여 준 핸드폰에는 이렇게 번역이 되어 있었다. 이후 그의 폰에 있는 탑승권을 보니, 아침 09시 35분에 이스탄불로 출발하는 아시아나 항공이었다. 그때 시간이 02시 30분. 아직 발권 시간이 많이 남았다고, 모든 카운터가 불을 꺼 놔서 어디가 아시아나 항공 카운터인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그는 시간이 많이 남은 것은 알지만, 미리 발권하는 곳에 가서 기다리고 싶다고 했다. 

  불과 몇 시간 전에 이스탄불 공항에서 경유하면서 지연된 비행기를 타기 위해 어디로 가야 하는 건지, 환승 구역이 어디인지를 한참 찾아 헤매면서 불안하고 걱정했던지라, 그의 심정을 누구보다 더 잘 이해할 수 있었다. 

 

 "알았어요. 나도 체크인 카운터를 잘 모르니 우리 함께 찾아봐요."

  내 짐을 실은 카트를 끌고, 그와 함께 3층 출국장 곳곳을 살폈다. 


<왼쪽 리시드의 비행기 예약, 가운데 새벽의 인천 공항 모습, 오른쪽 인천공항 3층 B구역  아시아나 항공 마일리지 적립하는 곳>


  인천공항의 밤은 조용하고 어둡다. 직원들도 거의 보이지 않았다. 한참 걷다 보니 순찰하는 직원이 우리 쪽으로 오고 있었다. 얼른 다가가서 아시아나 항공 카운터가 어디인지를 물었다. 아까 내가 일기를 쓰고 있었던 B구역이라고 해서 다시 그와 함께 B구역으로 돌아왔다. 그에게 아직 시간이 이르니 여기서 쉬고 있다가 세 시간쯤 전에 발권하면 된다고 알려주고, 내가 앉았던 의자에 다시 앉았다.

 

  배가 출출하여 가지고 있던 샌드위치를 꺼냈다. 뜯어보니 샌드위치 반쪽 자리가 2개 있길래, 그중 한 개와 물 한 병을 들고 가서 그에게 주었다. 그는 처음엔 사양하더니 말없이 받았다. 그는 자신의 고향에 지진이 났다고, 가족을 만나러 가야 한다고 힘없이 말했다. 그의 얼굴빛이 어두웠다. 

  어제 이스탄불 공항에서 경유할 때 한국인 부부가 튀르키예에 큰 지진이 나서 비행기가 안 뜨는 건지 모르겠다고 말해서 처음으로 지진 소식을 들었었다. '아, 가족의 생사를 확인하러 기 위해, 아침 비행기인데도 한밤중부터 공항으로 달려왔구나.' 속으로 생각하며, 그에게 새벽이 될 때까지 좀 자라고 말하고 다시 내 자리로 돌아왔다.   


  자리에 앉아 일기를 쓰다 보니 어느새 시간이 4시가 넘었다. 4시 15분쯤이 되자 3층 출국장에 불이 조금씩 밝아졌다. 잠시 후 아시아나 항공 마일리지 적립하는 곳에 직원이 들어왔다. 얼른 가서 마일리지 적립을 한 후, 그 직원에게 튀르키예로 가는 아시아나 항공 발권을 어디에서 몇 시에 하는지 물었다. 그는 옆에 C구역에 가면, 지금 발권이 가능하다고 했다.


  나는 얼른 벤치에 누워 있는 그에게 다가가서 C구역으로 가보자고 했다. 각자의 짐을 끌고 C구역으로 가서 알아보니, 거기에 있는 직원은 6시쯤 B구역에서 발권하는 거라고 했다. 우리는 다시 B구역으로 돌아왔다. 마일리지 창구 직원에게 다시 가서 상황을 말하니, C구역 키오스크에서는 지금도 발권이 가능하며, 거기 있는 직원에게 도움 받아서 셀프체크인을 먼저 하라고 했다. 우리는 다시 C구역으로 갔다. 키오스크 쪽에 있는 직원에게 부탁하여 그의 항공권 발권을 마쳤다. 


  "5시 50분에 저기 건너편에서 수하물을 부치고, 3번 탑승구로 들어가면 돼요."

  직원이 알려 준 대로, 그에게 알아들을 수 있도록 여러 번 천천히 말해 주었다.

  "당신 이름이 무엇인가요?"

  나는 그제야 그에게 이름을 물었다. 

  "리시드. 리시드입니다."

  "리시드, 잘 가요."

  "정말 고맙습니다. 당신에게 모든 일이 행운이 있기를 바랍니다."

  "아니에요. 당신을 도울 수 있어서 내가 더 기뻐."


  번역기를 통해 고마움을 표현하는 그의 얼굴에 깊은 진심이 느껴졌다. 이번 여행에서 많은 도움을 받아 왔는데, 이렇게나마 다시 누군가에게 조금이라도 갚은 것 같아 오히려 내가 더 기뻤다. 우리는 짧지만, 깊은 인사를 나누고 헤어졌다.


  1층에 내려와 집으로 가는 공항 리무진 표를 끊으러 갔다. 첫차 시간을 5시 40분으로 알고 있었는데, 표를 파는 직원이 7시 10분에 첫차가 있다고 말해 주었다. 첫차 출발 시간까지는 꽤 시간이 많이 남았다. 아무래도 그가 가는 길을 끝까지 안내해 주고 싶었다. 나는 카트를 끌고, 다시 3층 출국장으로 올라갔다. 그는 아까 내가 알려준 카운터에 수하물을 부치기 위해 줄을 서 있었다. 그가 짐을 부치고 나올 때까지 한참을 기다렸다. 


  "짐 잘 부쳤어요? 여기에서 잠깐 앉아서 수하물 이상 없는지 확인하고 가요."


  그는 다시 내가 다시 와서 잠깐 놀랐지만, 아무렇지 않게 내 말에 따랐다. 

  그의 얼굴이 아까보다 더 어둡고 슬퍼 보였다.  

  "리시드, 당신 괜찮아요?"


  조심스럽게 묻는 나에게 그는 핸드폰을 꺼내 여러 장의 사진을 보여주었다. 지진으로 인해 무너진 마을과 집의 모습이 찍힌 여러 장의 사진이었다.


  "우리 집이 다 무너져 버렸어요."

  "어머, 어떡해요..."

  "지진으로 인해 우리 형과 이모가 돌아가셨습니다."


  그는 눈물을 흘리며 울먹이며 말했다. 그에게 어떤 위로의 말도 해 줄 수가 없었다. 한없이 우는 리시드 옆에서 나도 소리 없는 눈물을 흘렸다. 그와 같이 눈물을 흘리는 것밖에는 아무것도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가족의 생사를 확인하러 급히 고국에 가는 줄로만 알았는데, 이미 가족도, 집도 잃어버렸던 거였다. 한참을 우는 그에게 가지고 있던 물 한 병을 조용히 건넸다. 그리고, 잠시 후 그와 함께 3번 출국장으로 가서, 정말 마지막 인사를 나누었다. 


  "리시드, 조심해서 가요."

  "정말 고맙습니다."

  "잘 가요. 리시드!"

  "감사합니다."

 

  이스탄불 공항에서 항공기 지연으로 6시간가량 대기하면서 들었던 튀르키예의 지진 소식이 이제 그저 먼 나라의 뉴스로 들리지 않았다. 너무나 생생하고 뼈아프게 내 피부로 그 슬픔과 고통이 그대로 느껴졌다.


  처음에 리시드가 도움을 요청했을 때에는 내가 받아 온 도움에 조금이나마 은혜를 갚는 마음으로 돕고 싶었었다. 하지만 생각해 보니 누군가를 돕는다는 것은 도움을 받아서 되갚는 마음보다는, 숨을 쉬고 밥을 먹으며 살아가는 것처럼 우리의 삶에서 당연하고 자연스럽게 이루어져야 하는 일이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뉴스에서 연일 튀르키예 지진 소식이 전해져 온다. 사망자가 수만 명이 넘었다는 소식에 내가 직접 알지도 않은 사람들이지만, 리시드의 가족이 생각난다. 리시드는 튀르키예에서 지금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리시드의 가족을 비롯하여 지진으로 인해 피해를 입은 수많은 사람들이 언제쯤 일상을 다시 회복할 수 있을까.  


  주일 예배 때 목사님이 우리 교회에서도 튀르키예 지진 피해 지원과 복구를 위한 모금을 총회 차원에서 시작한다고 하셨다. 몇 주간의 모금을 마치고, 총회장이신 우리 교회 목사님께서 직접 피해 현장에 모금액을 전달하기 위해 지난주에 튀르키예로 가셨다.


  리시드와 그의 남은 가족을 비롯하여 지진으로 피해를 입은 모든 사람들이 다시 삶을 회복하고, 평안을 찾기를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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