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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향 Mar 27. 2023

인천 공항에서 보낸 하룻밤

인천 공항에서 여행을 마무리하다

  인천 공항에 도착해서 짐을 찾고 나니 밤 12시가 넘은 시간이었다. 이미 지하철도 다 끊겼고, 집에 갈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이스탄불 공항에서 대기 중에 검색해서 알아본 결과, 집으로 가는 리무진 첫차는 새벽 5시 30분. 근처 호텔에 묶을까도 생각해 봤으나 5시간도 안 되는 시간을 머무르고 오기에 숙박비와 오가는 택시비를 생각하니 효율적이지 않았다. 인천 공항에 있는 캡슐 호텔을 이용할까 했으나 당일 예약시간도 이미 지나서 묶을 수 없었다. 할 수 없이 새벽까지 공항에서 노숙을 하기로 결정하고, 조용하고 안전하게 쉴만한 장소를 물색했다.


  입국장인 1층보다는 3층 출국장이 좀 더 한산한 것 같았다. 사람들이 번잡하게 오가지 않으면서 화장실도 가깝고, 타고 온 비행기의 마일리지를 적립하고 갈 수 있는 아시아나 항공사 카운터 근처의 벤치가 그나마 좋았다. 한밤중이라 그런지 공항 안에 조명을 대부분 꺼두어 어두운 실내는 잠을 자기에 나쁘지 않아 보였다. 화장실에서 양치만 간단히 하고 담요를 꺼내 벤치에 누웠다. 하지만 막상 자려고 하니 딱딱한 의자도 불편하고, 많은 짐을 놔둔 채 잠이 드는 것도 불안하여 편안하게 잠을 잘 수가 없었다.  

<왼쪽 인천공항의 밤풍경, 오른쪽 벤치에서 자는 사람들>


  10시간의 장거리 비행에서도 거의 뜬 눈으로 있어서 몸은 정말 천근만근이었는데, 잠은 오지 않고 할 수 없이 다시 의자에 앉았다. 이런저런 생각을 정리하기도 하고, 매일 돌아다니느라 피곤해서 쓰다 만 여행 일기를 쓰기도 했다. '다큐 3일'을 촬영하는 것 같은 기분으로 '인천 공항에서의 하룻밤'을 관찰하듯이 공항의 밤풍경 응시하며 앉아 있기도 했다. 공항에 올 때마다 정신없이 체크인하고 탑승수속을 밟느라 한가하게 앉아 있었던 적도 없고, 이렇게 고요하고 한가한 공항의 풍경을 본 적도 없었다. 공항에서 밤을 지새우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참 많다는 것도 알았다. 대부분은 이른 아침에 출발하는 비행기를 타야 하는 사람들인 것 같았다. 그들은 겉옷이나 담요를 덮고 누워 코를 골기도 하면서 편안하게 잘 자고 있었다.


  잠시 화장실에 다녀오려고 일어났더니, 어떤 아주머니가 다가와서 말을 걸었다.

  "내가 이 비행기를 타야 하는데, 어디로 가야 합니까?"

  연변 사투리를 쓰는 아주머니는, 중국 연변으로 가는 항공권을 보여주며 물었다. 중국에서 잠깐 지낼 때 연변에 다녀온 적이 있어 나는 괜히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마침, 내가 탑승카운터 위치를 알고 있는 항공사였기에 아주머니께 알려 드렸더니, 너무 고맙다고 감사 인사를 하며 황급히 걸음을 옮겼다. 이번 여행에서 정말 많은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왔는데, 내 나라에 도착하니 별거 아니지만 누군가에게 작은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것이 뿌듯하기도 했다.


  새벽 4시가 조금 지나자 어두웠던 공항 곳곳에 순차적으로 조명이 켜지기 시작했다. 4시 30분쯤 되었을 무렵부터는 출국하려는 사람들이 카트에 많은 짐을 싣고 속속 들어왔다. 어둠 속에 고요했던 출국장이 사람들의 발소리와 말소리로 웅성웅성해졌다. 항공사 카운터에도 어느새 불이 켜지고, 유니폼을 입은 직원들도 여기저기에 눈에 띄었다. 사람들로 북적거리고 활기찬 인천 공항에서의 하루의 시작은 새벽 4시 30분부터였군. 공항 노숙을 해보니 몸은 고됐지만, 공항의 다른 모습을 새롭게 볼 수 있었다.   


  그 무엇보다 인천공항에서의 이 하룻밤을 잊지 못할 만큼 깊은 인상을 남겨 준, 리시드를 만났다.


이전 21화 항공기 지연은 너무나 괴로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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