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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향 Mar 23. 2023

항공기 지연은 너무나 괴로워.

6시간 넘게 이스탄불 공항에 머물다

  귀국 편 항공사는 터키 항공. 리스본을 출발할 때부터 항공기 지연으로 한 시간도 넘게 늦게 출발했다. 환승하는 이스탄불 공항에서 경유 시간이 두 시간가량 밖에 안 되어서 비행기 환승을 놓칠까 봐 가슴을 졸였다.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서둘러 환승구를 찾았다. 전광판으로 가서 게이트를 확인했는데, 다행히 경유 비행기도 지연이었다. 그런데 얼마나 지연되는지, 탑승 게이트가 어디인지 전혀 안내되지 않았다. 환승구역 표지판도 없어서 넓은 공항에서 도대체 어디에서 대기해야 할지 참으로 난감했다.


  다행히 나와 같은 비행기를 타야 하는 한국인 부부를 만나 우리는 공항에서 같이 헤매기로 했다. 이런 돌발 상황에서 한국인을 만나면, 뭔지 모르게 의지가 되고 든든하다. 밤 12시가 넘은 시각이라 공항에 직원들도 거의 보이지 않았다. 여기저기 헤매다 겨우 직원 한 명을 발견하고 한국으로 가는 비행기를 환승하려면 어느 쪽으로 가야 하는지, 언제까지 기다려야 하는지 등을 물었다. 직원의 말로는 새벽 4시까지 지연될 것이며, 환승구역은 아래층이라고 알려주었다. 우리는 직원이 알려 준 구역에서 적당히 한적하면서도 외지지 않고, 전광판도 멀지 않은 곳에 각자 의자를 차지하고 앉았다. 돌아가면서 눈을 붙이고, 전광판에 안내 표시가 뜨면 알려주기로 했다. 한국인 부부와 함께 있어서 내 백팩과 손가방을 맡기고 편하게 화장실에 가서 양치도 하고 올 수도 있었고, 불안감도 덜했다.


  리스본에서 탑승수속을 밟고, 이스탄불 공항에 도착할 때까지 좁은 기내 좌석에서 불편해서 잠도 제대로 못 잤고, 몸은 지치고 피곤했다. 그런데도 막상 자려고 누우니 잠도 오지 않았다. 딱딱하고 불편한 의자 때문이기도 했지만, 항공기가 언제까지 지연될지, 그로 인해 한국 도착 시간이 늦어지면 집에는 어떻게 가야 할지, 이런저런 걱정이 되어 심란했다.

  일어나 앉아서 주변을 가만히 살펴보니 한국인으로 보이는 사람들의 무리가 여기저기에 눈에 띄었다. 아마도 우리와 같은 비행기를 타는 사람들인 것 같았다. 그들 중에는 한밤중에 어디에서 뜨거운 물을 구했는지 모르겠지만, 컵라면을 끓여 먹고 있는 사람들도 있었다. 한국 사람들의 생존력은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새벽 4시가 되었을 무렵, 드디어 탑승구 안내 표시가 떴다. 우리는 서둘러 짐을 챙겨 탑승게이트로 향했다. 지난번에 프랑크푸르트에서 리스본으로 가는 비행기가 지연되었을 때, 영국인 아저씨 덕분에 15유로짜리 푸드바우처를 받았던 경험이 떠올랐다. 터키 항공 직원이 보이길래 얼른 다가가서 물었다.


  "갑작스럽게 항공기가 지연되었는데, 바우처 같은 거라도 제공해 주나요?"

  "탑승게이트 쪽에 약간의 음식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같이 기다렸던 한국인 부부에게 음식을 제공해 준다는 정보를 알려주며 함께 가보니, 말 그대로 정말 약간의 음식을 나누어 주고 있었다. 속에 치즈 한 장 달랑 들어있는 샌드위치와 음료수 한 개가 전부였다. 보상치 고는 너무나도 보잘것없었지만, 일단 받아두었다. 탑승구 쪽 의자에는 앉을자리도 없어서 어디에 앉아서 먹을 수도 없었다.


  탑승이 시작되기를 기다린 지 한참이 지났으나 탑승구는 열리지 않았고, 안내판에는 비행기 출발 시간만 조금씩 계속해서 늦춰지고 있었다. 조금이라도 빨리 탑승하기 위해 줄을 미리 서 있는 사람들 중에는 조금 떨어진 반대편 탑승구 쪽으로 하나둘씩 가서 앉아있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시간이 삼사십 분 넘게 지나도 탑승 기미는 보이지 않았고, 길게 줄을 서서 기다리던 사람들은 기다리다 지쳐서 결국엔 바닥에 쭈그려 앉았다. 나도 슬슬 지쳐갔다. 무거운 백팩을 계속 메고 있어 어깨가 꺼지는 것처럼 짓눌렸고, 면세점에서 산 그린 와인과 무거운 코트가 든 면세점 비닐봉지를 들고 있던 손바닥은 벌겋게 자국이 났다. 놀라운 건 그렇게 한참을 기다리는 동안 승객들이 피곤하고 지쳤지만, 항공사에 항의하거나 따지는 사람이 단 한 명도 없었다는 점이다.


<왼쪽. 지친 모습으로 기다리는 사람들, 가운데. 항공기 지연으로 제공된 샌드위치와 음료, 오른쪽. 항공기 지연 안내>


  얼마나 기다렸을까. 기다리다 지쳐서 다들 멍하니 있을 때쯤 탑승이 시작된다는 방송이 나왔다. 어떤 이유로 지연이 되었는지에 대한 설명도 없었고, 미안하다는 사과도 전혀 없었다. 이스탄불 공항에 12시 넘어서 도착했으니 거의 6시간 넘게 공항에서 대기하고 나서야 탑승을 할 수 있었다. 리스본에서 출발한 비행기가 한 시간 넘게 지연되어 경유 편을 놓칠까 봐 걱정한 것이 무색하기 짝이 없었다.


  비행기에 올라 좌석을 확인해 보니, 이럴 수가!!! 분명히 통로 쪽 좌석으로 배정해 달라고 체크인할 때 요청했는데, 내 자리는 3-3-3열의 가운데 3열 중에서도 가운데 자리였다. 리스본에서 이스탄불까지 오는 비행기와 이스탄불에서 인천공항까지 가는 비행기 자리 둘 다 통로 좌석인지 직원에게 다시 확인하였고, 통로가 맞다고 확인까지 했는데 어찌 된 일일까. 직원이 내 발음을 못 알아들었나. 리스본에서 오는 비행기 좌석이 통로였던 것을 보면, 그건 아닌 듯한데...  

  어디에서 잘못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이제 와서 좌석을 바꿀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화장실에 자주 가는 편이 나에게는 10시간이 넘는 장거리 비행에서 가운데 자리는 참으로 불편하기 짝이 없었다. 내 오른쪽에 앉은 중년의 한국인 여성은 내가 화장실에 갈 기미가 보이면 슬그머니 눈을 감고 자는 척을 하기도 했다. 다행히 왼쪽에 앉은 금발머리 소녀가 싫은 내색하지 않고 화장실에 갈 때마다 자리에서 일어나 주었다.


  그리하여 이스탄불에서 새벽 6시 30분이 넘어 출발한 비행기는 10시간 정도의 비행 끝에 인천 공항에 다음날 밤 12시가 다 되어서야 도착했다. 리스본에서 출발한 시간부터 따지면, 거의 30시간 만에 아주아주 힘겹게 인천 공항을 밟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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