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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향 Feb 13. 2023

포르투갈로 가는 길(2)

공항에서 만난 영국인 부부

  프랑크푸르트에서 포르투갈 리스본으로 이동하는 날. 숙소에서 새벽부터 일어나 짐을 싸고 아침을 챙겨 먹고 9시쯤에 서둘러 나왔다. 공항까지 가는 S-bahn을 타야 하는데, 플랫폼을 잘못 찾아서 지나가는 청년에게 물어보니 건너편 플랫폼이라면서 직접 가는 안내해 주었다. 내가 탈 기차가 이미 도착한 것을 보고, 그 청년이 직접 무거운 내 슈트케이스를 들고 에스컬레이터에서 뛰어 내려가기까지 했으나 눈앞에서 기차를 놓치고 말았다.


  다음 기차는 30분 뒤에나 있었다. 허탈한 마음을 뒤로하고, 청년에게 고맙다고 감사 인사를 전했다. 전광판을 몇 번이나 꼼꼼히 확인해 가며 다음 기차를 타고 10시 20분쯤 프랑크푸르트 암마인 공항 도착. 여기저기 물어 겨우 에어 포르투갈 카운터를 찾았는데, 아직 발권 시작을 안 해서 또 한참을 기다려야 했다.


  수하물 비용을 추가해서 위탁수하물이 23kg인데, 체감상 슈트케이스 무게는 25킬로를 넘는 듯했다. 다행히 근처에 저울이 있어 재봤더니 26kg. 급하게 버릴 것을 버리고, 책과 우산 등 무게 나가는 것을 기내에 들고 갈 백팩에 옮겼더니 슈트케이스는 겨우 23.8kg. 0.8 정도야 봐주겠지 생각하며, 무거운 백팩을 메고 또다시 한참을 기다리자 그제야 발권을 시작했다.


  내가 끊은 항공권은 에어 포르투갈(TAP)로 프랑크푸르트에서 13시 25분에 출발하여 3시간 10분 비행하여 리스본에 15시 35분(시차 1시간) 도착하는 것이었다. 발권을 해 준 직원은 지연되어 보딩 시간이 14시 10분으로 늦춰졌다고 말했다. 탑승구에 가서 다시 확인해 보자 생각하고, 바로 보안검색대로 향했다. 줄도 길고, 보안 검색대를 통과하는 시간도 꽤 오래 걸렸다. 탑승게이트를 찾아가니 항공기 지연게이트도 바뀌었다고 표시되어 있었다. 다시 정확하게 확인하기 위해 줄을 서서 직원에게 물어보며, 보딩 패스에 바뀐 보딩 시간과 탑승구를 적어달라고 했다. 직원은 탑승구는 안 바뀌었다며 보딩 시간만 15시 15분으로 바뀌었다고 했다. 화면에 분명히 게이트 체인지가 쓰여 있길래 다시 물어보니, 그제야 다시 확인한 직원은 바뀐 게이트 번호를 써 주었다.


  뭔가 꺼림칙해하며 서 있는 나에게 근처에 서 있던 민머리의 외국 아저씨가 바뀐 내용을 제대로 이해했냐면서 먼저 말을 걸어왔다. 직원이 써 준 보딩 패스를 보여주자 비행기가 너무 많이 딜레이 되었다며 항공기 지연에 대한 보상으로 푸드 바우처를 달라고 말해야겠다고 했다. 여태껏 수차례 비행기를 타 봤지만, 비행기가 지연된 경우가 없어서 그런 것이 있는지도 몰랐기에 그런 것을 주냐면서 나도 같이 받고 싶다고 했다. 는 자기가 말해 볼 테니 자기 부부 옆에 있으라고 했다. 이 대화를 계기로 이들 부부와 꽤 긴 시간을 함께 하게 되었다. 영어를 꽤 잘하는 독일인인가 싶었는데, 알고 보니 두 사람은 영국인이었다.

<왼쪽 항공사 직원과 안내 표시, 오른쪽 백팩을 맨 두 사람이 나에게 말 걸어 온 영국인 부부>

                    

  직원에게 가서 바우처를 요구한 에게 직원은 무뚝뚝하게 자신은 바우처 관련해서 안내받은 게 없다고 답했다. 근데 이 영국인 아저씨, 푸드 바우처에 아주 많이 진심인 듯했다. 조금 뒤에는 자신의 아내에게 가서 다시 물어보라며, 자신은 이미 물어봤으니 저쪽에서 숨어 있겠다고 했다. 아내가 물어봤을 때에도 역시나 직원은 바우처가 없다고 했다. 나는 그냥 포기하고 영국인 부부와 인사하고 근처 의자에 앉아 쉬었다.


  한참 시간이 지난 후에 영국인 부부가 다시 나에게 왔다. 바뀐 게이트에 가면 푸드 바우처를 받을 수 있다면서 자신들이 받은 바우처를 보여 주었다. 알려주어 고맙다고 말하고, 급하게 바뀐 38번 게이트로 갔더니 바우처를 받기 위해 사람들이 줄을 길게 서 있었다. 줄을 기다려서 받은 바우처는 공항 내에서 쓸 수 있는 15유로. 멀리 가기도 힘들고 해서 가장 가까이에 있는 음식 코너에 가서 요거트, 빵과 음료를 골랐다. 가격이 정확히 쓰여 있지 않았는데, 매장 직원은 바우처를 써서 그런지 굉장히 불친절했고, 금액을 조금 속인 것 같은 느낌이 들었으나 꼼꼼히 따질 여력도 없고, 그러기에 언어의 한계도 있어 넘어갔다.

   

<왼쪽 내가 고른 빵과 음료, 요거트. 오른쪽 공항 내 식품 매장>


  3시간 연착으로 긴 시간을 오랫동안 프랑크푸르트 공항에서 대기해야 했다. 보딩 시간이 다 되어서 영국인 부부를 자연스럽게 다시 만났다. 바우처에 대해 알려줘서 고맙다며 내가 가지고 있던 초콜릿을 드렸더니 아주 좋아했다. 리스본에 며칠 있을 건지 등 여행에 대한 대화를 나누다가 아저씨가 리스본 공항에서 숙소로 어떻게 이동할 계획인지 물었다. 지하철로 갈 생각이라고 하니 자신들도 지하철로 이동할 거라면서 리스본에 도착해서 같이 이동하자고 했다. 안 그래도 리스본 공항에 있는 티켓 머신에서 지하철 표 끊는 방법을 정확하게 몰라서 고민하고 있던 차에 잘되었다 싶어서 너무 좋다고 대답했다.

  

<비행기 지연으로 대기 중인 사람들>


   비행기가 리스본에 도착한 것은 저녁 18시 30분이었다.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영국인 부부와 함께 셔틀로 공항으로 이동했다. 셔틀버스에서 비행기를 타면서 두었던 핸드폰을 켰는데, 이게 웬일인가. 핸드폰에 유심칩의 핀번호를 다시 입력해야 전원을 켤 수 있었다. 순간 머리가 하얘졌다. 핀번호가 적힌 종이를 핸드폰 카메라로 찍어 두었는데, 폰을 켤 수가 없으니... 갖고 다니는 수첩에 적어둘 걸 후회해도 소용없었다. 유심 안내종이를 어디에 두었더라. 설마 아까 공항에서 쓸데없는 거 버릴 때 딸려가서 같이 버린 건 아니겠지. 온갖 생각이 머릿속에 스쳤다. 핸드폰을 못 쓰게 되면 남은 여행은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모든 정보와 예약 내용 등이 핸드폰 안에 다 들어있고, 이동할 때마다 길도 찾아야 하는데 만약에 그 유심 안내 종이를 못 찾게 되면 어찌해야 하나... 진땀이 나고, 말 그대로 멘붕이었다. 핸드폰이 없는 여행은 상상을 할 수도 없었다.


  영국인 부부에게 상황을 말하고, 짐을 찾으면 슈트케이스에서 핀번호 적힌 종이를 먼저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들은 상관없다고 말하얼마든지 기다려 줄 수 있다고 말했다. 하필이면, 미안하게 영국인 부부의 짐이 내 것보다 먼저 나왔다. 잠시 후 다행히 내 짐도 찾을 수 있었다. 공항 한편에서 급히 슈트케이스를 열었다. 감사하게도 내가 생각한 곳에서 금방 유심 안내 종이를 찾았다. "오! 하나님, 감사합니다." 기도와 함께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영국인 부부에게 종이를 찾았다고 말하니, 엄지척 웃었다. 



  매트로를 타러 가는 길에 영국 아저씨가 내 슈트케이스가 무거우니 자기가 내 가방을 들겠다고 했다. 괜찮다계속 사양했지만, 그도 상관없다고 하여 결국엔 서로의 가방을 바꿔 이동했다.

  티켓 머신에서 표를 끊은 방법을 물어보려고 했는데, 아저씨는 이미 내 표까지 끊었다. 얼마냐고 돈을 드리겠다고 하니 처음엔 사양하다가 2유로라고 해서 드렸다. 처음 본 나에 대한 그의 친절과 배려가 너무나 고마웠다.


  같은 지하철을 타고 이동하다, 나는 환승을 해야 해서 지하철에서 이들 부부와 인사를 했다. 아까 짐 속에서 유심 안내 종이를 꺼낼 때, 한국에서 사 온 기념품을 미리 꺼내서 따로 갖고 있었다. 함께 해서 즐겁고 고마웠다고 말하며, 부부에게 각각 기념품을 드리니 깜짝 놀라면서 너무 고맙다고 했다.


  여행지에서의 친절한 사람들과의 만남은 여행을 더욱 풍성하고 즐겁게 만들어 준다. 예상치 못한 짧은 만남이지만, 영국인 부부의 친절한 태도와 웃음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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