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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향 Feb 13. 2024

<소설 티처스-안녕하세요, 선생님!> 15화

15화. 만연한 일

  권 변호사와 통화를 끝내고 들어 온 은혜를 살피며, 혜진은 심각한 얼굴로 물었다.

  “변호사와 연락을 하는 거 보니 너 무슨 일 있지? 얼굴도 안 좋고, 살도 너무 빠진 것도 그렇고. 대체 무슨 일이야?”

  할 수 없이 은혜는 지금 겪고 있는 모든 상황에 대해 혜진과 진욱에게 간단하게 말했다. 아동학대 신고를 당해서 수사를 받고 있으며 휴직까지 하게 되었다고. 경찰서에서 수사를 받으면서, 정신의학과에서 상담을 받으면서, 은혜를 염려하며 상황을 묻는 각각의 지인들에게 수차례 반복하며 이 사건에 대해 말하고 있지만, 이 이야기를 할 때마다 은혜의 목소리는 가늘게 떨렸고 불쑥불쑥 눈물이 흘렀다. 혜진과 진욱은 은혜의 말을 들으며 분노하며 어이없는 상황에 크게 화를 냈다. 혜진은 속상한 마음을 누르고 은혜를 가만히 바라보다 답답한 상황에 커다란 한숨을 내쉬었다. 


  “사실 얼마 전에 우리 학교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었잖아.”

  무거운 분위기 속에서 혜진이 입을 열었다.


  혜진은 부산의 K 중학교에서 교무부장을 맡고 있다. 얼마 전 그 학교에서 근무한 10년 차 국어 교사 박민영도 비슷한 일을 겪고 휴직 중이라며, 혜진은 그 학교에서 일어난 일에 대해 자세히 전했다.      

  지필 평가를 앞두고 민영은 아이들에게 자습 시간을 주며 개별적으로 질문을 받고 있었다. 교실 뒤편의 남학생 무리들이 계속 떠들면서 시시덕거려서 민영은 주의를 주었다. 담임교사의 수업 시간인데도 아이들은 개의치 않고 떠들었다. 


  그중 재빈이가 “선생님, 성현이가 자꾸 ‘야메떼’라고 해요”라고 일러바쳤다. 때로는 “너희는 친구 간에 의리도 없냐?”라고 민영이 면박을 줄 만큼 중학생들은 장난치고 놀다가도 사사건건 선생님한테 일러바쳤다. ‘야메떼(やめて)’는 단순하게 생각하면 일본말로 ‘그만해! 하지 마.’라는 뜻이었지만, 일본 성인물에서 성관계를 할 때 쓰이는 말로 야동을 보는 아이들 사이에서는 성적인 의미로 변질되어 사용되고 있었다. 5년째 중학교 2학년을 가르치고 있는 민영은 남학생들이 은어로 쓰는 그 말의 의미를 이미 알고 있었다.  

  “성현이 좀 나와 봐.”

  민영은 성현을 쳐다봤다. 성현은 “아, 왜요?”라며 두 손을 바지주머니에 넣은 채 건들거리며 걸어 나왔다. 

  “다들 공부하는데 방해되게 왜 떠들어. 조용히 해야지.”

  “아, 왜 저만 갖고 그래요? 쟤네들도 같이 떠들었는데.”

  성현은 짝다리를 짚고 인상을 팍 쓰며 민영을 사납게 쳐다보았다. 지적을 당했을 때 죄송하다고 빠른 인정을 하면 짧게 훈계하고 끝날 일인데, 아이들은 매번 왜 자기한테만 그러느냐고 항변을 해서 항상 일을 키웠다. 민영도 성현의 눈을 똑바로 마주 보았다. 

  “너, 야동 봐? 야동에서 나오는 그런 안 좋은 말을 교실에서 왜 하니? 앞으로는 그런 말 하지 마! 들어가.”

  성현은 짜증을 내며 교실 뒤편 자리로 들어가 뭐라고 작은 목소리로 구시렁댔다. 민영은 매시간 수업을 방해하고 막무가내인 성현을 이대로 둘 수가 없었다. 교실 뒤편 무리에게 가서 민영이 “방금 뭐라고 했니?”라고 물었고, 성현은 딴청을 피우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평소 같으면 미주알고주알 일러바쳤을 아이들도 민영의 굳은 얼굴을 보며 분위기를 직감했는지 성현의 눈치를 보며 민영에게 입을 열지 않고 머뭇거렸다.      

  점심시간에 성현의 주변에 있던 재빈과 강민이 민영을 찾아와서 성현이 구시렁거리면서 했던 말을 알려 주었다. 민영은 처음에 아이들이 하는 말의 뜻을 정확히 이해하지 못해서 복사기에서 A4종이를 꺼내 주며 글로 적으라고 했다. 아이들의 글에는 ‘오징어’, ‘확 찢어 버릴까 보다’라고 쓰여 있었다. 민영은 못생겼다는 의미로 오징어라고 말한 것으로 짐작했으나 다른 의미가 있는 것 같아 종이를 도로 주며, 그 의미까지 쓰라고 했다. 아이들은 여성의 생식기 냄새를 은어로 오징어라고 말한다는 것을 그 설명을 보고 알게 되었다. 순간 민영은 수치심에 몸이 부르르 떨리고 어질 했다.     

 

  민영은 방과 후에 교무부장인 혜진에게 아이들이 쓴 종이를 보여주며 교권보호위원회를 열어달라고 정식으로 요청했다. 혜진이 종이를 보여주며 교감에게 보고했고, 교감은 학교장에게 보고했다. 학교장은 바로 교권보호위원회를 열어주지 않고 한참을 고민했다. 교감과 교무부장 혜진을 불러 어떻게 처리하면 좋을지 의견을 물었다. 혜진은 이건 엄연히 교권 침해이자 성희롱이니 당연히 교권보호위원회를 열어야 한다고 말했다. 다행히 교감도 그러는 게 좋겠다고 거들었다.     



  다음 날, 학교에서는 성현을 비롯해 그 주변에 있던 재빈, 강민을 불러 사실확인서를 받고 상황을 조사했다. 이 일을 알게 된 성현 엄마의 진상 갑질은 그때부터 시작되었다. 교장실로 쫓아와서 도리어 큰 소리를 쳤다.

  “아니, 선생이 우리 애를 애들 앞에서 공개적으로 야동 보는 애로 몰아간 거 아니에요?” 

  성현 엄마는 민영이 했던 말을 꼬투리 잡았다. 학교 측에도 조사를 어디서 어떤 방법으로 했느냐며 절차를 따졌고, 왜 바로 학부모에게 연락을 안 했는지 트집을 잡았다. 성현 엄마는 교장실 소파에서 다리를 꼬고 팔짱을 끼고 앉아서 이 일을 교권보호위원회로 넘겨서 자기 아들을 가해자로 만들면 가만두지 않겠다고 협박까지 했다. 수업 시간에 아이가 떠든 것이니 생활교육위원회에서만 잘잘못을 따지라고 온갖 진상을 부리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혜진이 여러 차례 교장을 설득했고, 교장은 고민 끝에 며칠 뒤 교권보호위원회를 열도록 겨우 허락했다. 교권보호위원회에 출석한 성현 엄마는 알고 지내는 일본어 전공자가 써 준 ‘야메떼(やめて)’의 실생활 표현과 의미를 적은 참고 자료까지 제출했다. 교권보호위원회의에서는 만장일치로 교권 침해라고 판단하고 성현에 대해 학급교체의 처분을 내렸다.      


  그러자 성현 엄마는 교장실에 찾아와 소리를 지르며 행패를 부렸다. 

  “우리 애가 그 선생한테 공개적으로 명예훼손 당한 것을 어디에서 보상받느냐고! 선생이 야동을 보는 거 아니야? 노처녀가 시집도 못 가고 집에서 야동이나 보는 거지. 아니야? 선생이 야동을 보니까 일상생활에서 쓰는 일본어 표현을 그런 식으로 해석하고 순진한 내 아이들을 야동 보는 애 취급한 거 아니냐고! 그리고, 시험 전날인데 수업 시간에 수업은 안 하고 뭐 했어?”

  성현 엄마는 분이 풀릴 때까지 막말을 쏟아 놓은 뒤 인사도 없이 돌아나가 교장실 문을 쾅 닫았다. 지속적인 항의에 대응이 없자 급기야 성현 엄마는 경찰에 민영을 명예훼손으로 고소하고 정서적 학대로 신고했다. 국민신문고와 교육청에도 나란히 민원을 넣었다.      


 또한 민영에게 성현이 한 말을 일렀다는 이유로 친구인 재빈과 강민을 학폭 가해자로 신고했다. 아이들이 성현과 예전부터 몰려다니며 서로 장난치느라 물 뿌리고 신발이나 책을 숨기고 했던 지난 일들을 꼬투리 잡아 신고했다. 그 결과 성현과 장난치는 과정에게 욕설을 한 적이 있는 강민은 징계를 받아 공개 사과와 교내 봉사를 했다.     


  민영은 두 달 병가를 냈고 경찰 수사를 받으며 길고 긴 시간 동안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내야만 했다. 다행히 경찰에서는 민영의 사건을 지도과정에서 타당한 일이라고 판단하여 불기소로 종결했다. 하지만 성현 엄마는 항소하여 형사 사건으로 검찰에 다시 고소를 했다. 성현의 친구 몇 명을 집으로 불러 치킨과 피자를 사 주면서 평소에 민영이 어떠했는지 묻고, 꼬투리 잡을만한 내용에 대해 부모 동의도 없이 참고인 진술서까지 써서 첨부했다. 성현 엄마의 행동은 아들에 대한 사랑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악랄했고 집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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