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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향 Feb 29. 2024

<소설 티처스-안녕하세요, 선생님!> 17화

17화. 아이들의 박수 소리

  2학기가 시작되었고, 교감은 은혜에게 전화로 월요일 7교시 자율시간에 해당 학급에 들어가서 아이들을 만나도 좋다고 전해왔다.  


  몇 달 만에 학교로 가기 위해 운전대를 잡고 있는 은혜의 손에 땀이 났다. 은혜가 요청하여 아이들을 보게 되었지만, 막상 만나려니 두려운 마음도 들었다. 경찰 조사에서 들은 사실확인서의 내용처럼 아이들이 오해하고 적대감을 품고 있으면 어떻게 하지. 아이들이 어떤 눈으로 은혜를 바라볼지 무섭기도 하고 불안하기도 했다. 향진중학교 근처 사거리에서 신호 대기 중에 이대로 운전대를 돌려 집으로 가 버릴까 싶은 생각이 잠시 스치기도 했다. 잠시 후 파란불이 들어오자 은혜는 마음속으로 기도하면서 살며시 액셀을 밟았다.


  학교는 모든 것이 그대로였다. 은혜 대신 새로운 기간제가 수업을 할 뿐,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나 하나 없어도 학교는 아무렇지도 않게 잘 돌아가는데, 왜 그동안 학교에서 나 아니면 안 된다고 생각하며 우직하게 일해왔는지 은혜는 코웃음이 삐져나왔다. 은혜가 왔다는 소식에 부장 언니들이 가장 먼저 5층 융합부 교무실로 찾아왔다.      

  “아이고, 도대체 살이 얼마나 빠진 거야?”

  “가뜩이나 작은 얼굴이 완전 반쪽이 다 됐네.”

  은혜의 모습을 본 사람들이 염려하며 다들 한 마디씩 건넸다. 

     

  교감 이철용도 5층 교무실로 올라왔다.

  “해당 반 담임들한테는 미리 말해 두어 알고 있으니 각 교실을 돌면서 간단하게 이야기하고 나오면 돼요.” 

  “교감 선생님, 은혜 샘이 교실에 들어갈 때 제가 같이 들어가서 아이들 표정도 살피고 상황을 같이 볼까 해요.”

  은혜의 곁에서 든든하게 힘이 되어주려는 지수의 사려 깊은 말에 은혜는 마음이 울컥해졌다.

  “아, 그래요. 그것도 좋겠네. 나는 잠깐 회의가 있어서 이만 내려갈게요.”       

  교감이 내려가고, 은혜는 부장들과 1학년 교실 쪽 복도로 향했다. 

  “너무 긴장하지 말고, 그냥 담담하게 솔직하게 속마음을 전하고 나와요.”

  선영이 긴장된 은혜의 표정을 보며 등을 다독여주었다.

  “우리는 복도에서 지켜볼게. 잘 얘기하고 나와.”

  영심이 현정과 함께 뒤따르며 말했다. 은숙은 은혜의 손을 살짝 잡았다 놓으며 응원의 눈짓을 보냈다. 은혜는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내쉰 후 교실 문을 노크했다. 10반 담임 권민호가 교실에서 나오며 은혜를 보고 가볍게 목례했다. 


  아이들은 오랜만에 모습을 드러낸 은혜를 숨죽여 쳐다보았다. 은혜의 발걸음을 따라 움직이는 아이들의 집중하는 눈빛이 낯설게 느껴졌다. 은혜는 잠시 숨을 고른 후 교탁 앞에 서서 아이들을 둘러보며 눈을 마주치고 입을 열었다.       

  “오랜만이네요. 3월에 한 달 동안 선생님과 국어 수업했었는데, 선생님 기억하나요?”

  은혜의 물음에 아이들이 큰 소리로 네,라고 대답했다.

  “선생님이 여러분 얼굴 보면서 마음도 전하고 인사도 하고 싶어서 왔어요.”

  아이들이 눈빛을 반짝이며 은혜를 바라보았다. 중학교 교실이라고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작은 숨소리까지 들릴 듯 고요했다.


  “선생님이 지도했던 것이 혹여나 여러분에게 상처를 주었다면 정말로 미안해요. 여러분을 생각했던 선생님의 마음이나 의도와 달리 여러분이 상처를 받을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닫고 선생님도 마음이 많이 아팠어요. 여러분을 직접 만나 선생님의 마음을 꼭 전하고 싶었어요. 이렇게 여러분의 얼굴을 5개월 만에 보니 반갑고, 다들 잘 지내고 있는 것 같아 안심이 되네요. 2학기에도 학교 생활 즐겁게 잘하고, 여러분이 건강하고 행복하게 지내기를 기도할게요.”     

  차분하게 아이들을 바라보며 은혜는 진심 어린 말을 마쳤다. 잘 지내라고 인사하는 은혜를 향해 아이들이 일제히 박수를 쳐 주었다. 커다란 박수 소리가 은혜의 가슴에 칼날처럼 박혀있던 날카로운 무언가를 쓸어내려 주는 것 같았다. 박수 소리를 들으며 복도로 나오는 은혜의 눈에 눈물이 또르르 흘렀다. 곁에서 지켜보고 있던 지수의 눈가도 촉촉해졌다.            


  5개 반의 분위기는 거의 비슷했다. 은혜가 아이들에게 마음을 전달하는 동안 지수는 교실 한편에서 함께 하며 아이들의 눈빛을 확인하고 분위기를 살펴 주었다. 지수가 교실에 같이 있어준 것만으로도 은혜에게는 큰 힘이 되었다.      

  “아이들의 눈빛이 굉장히 우호적이고 진지했어요. 분위기도 괜찮았고요.”

  복도에서 기다리던 부장들에게 지수가 은혜 대신 상황을 전해주었다.

  “너무 다행이다. 휴우, 이제 한시름 놓겠네.”

  “우리 오랜만에 정 부장이 왔는데, 같이 맛있는 저녁 먹으며 회포를 풀죠.” 

 은숙의 말에 기다렸다는 듯이 부장들은 은혜보다 더 신이 나서 들뜬 목소리로 한 마디씩 했다.     

 “당연한 소리! 오래간만에 현남식당 가서 생고기와 어죽 어때요?”

 “딱이네요!”


  현남식당은 이들이 가끔 가던 향진의 맛집이었다. 신선한 고기는 육즙이 풍부하여 맛있고, 무엇보다 어죽이 일품이었다. 오랜만에 먹어보는 어죽에 은혜는 모처럼 입맛이 돌아 양껏 식사를 했다. 부장들은 배부르다면서도 솥에 남은 어죽을 긁어 야무지게 먹으며 못다 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한참을 분위기가 무르익고 있는 중에 테이블에 올려놓은 은혜의 핸드폰 진동이 울렸다. 발신인에 뜬 권 변호사 이름을 보고 은혜는 뭔가 불길한 느낌이 들었다.     

  “선생님, 사건이 검찰로 송치되었다고 연락이 왔어요.” 

  “결국 검찰로 넘어갔군요...”

  즐겁게 저녁을 먹던 은혜의 목소리에 힘이 쭉 빠졌다.

  “네, 이미 경찰 조사 때 조사관이 송치될 것 같다고 귀띔했었잖아요.”

  검찰로 송치될 수 있다고 생각은 했으나 막상 검찰로 넘어갔다는 말을 들으니 은혜는 또다시 아득해졌다. 앞으로도 이 일로 인해 얼마나 힘겨운 과정이 더 남은 것인지 끝이 보이지 않는 사막 한가운데를 맨발로 걷고 있는 것만 같았다. 옆에서 은혜의 통화를 들은 부장들도 이내 어두워진 표정으로 입을 다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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