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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후 Jul 11. 2022

3분 소설

검은색 비누

 후욱후욱. 평상시 훈련 때보다 훨씬 빠른 속도. 감독님이 봤으면 근육에 문제가 생긴다며 잔소리를 했겠지. 아니나 다를까 결국 햄스트링이 올라오며 넘어졌다. 넘어지면서 무릎 팍이 깨졌다. 붉은 피가 배어 나왔다.


'유진이 너는 까매서 피가 잘 안 보이네?'


다섯 살 때였나? 아마 그때도 지금처럼 무르팍이 깨졌던 것 같다. 어린이 집에서의 기억은 거의 없지만 이 말만은 잊혀지지 않는다. 정확히는 그런 말 하면 안된다며 선생님이 그 친구를 혼냈던 장면이 기억에 남는 거겠만 말이다. 그때는 유진도 그 친구도 선생님이 왜 혼을 내는지 몰랐다. 그저 선생님이 무섭게 혼을 내는 모습에 놀랬을 뿐이다. 그래서인지 지금도 피가 날 때마다 그 친구의 순수했던 이 말이 귓가에 맴돈다.


"아아악!"


아무도 없는 운동장에서 유진은 하늘을 향해 소리를 질렀다. 이 답답함이 좀 사라지길 바라면서.


사실 검은 피부색 때문에 친구들에게 놀림을 받는 것은 이제 별 거 아니었다. 이골이 났다. 유치원 때는 어설픈 한국어 발음 때문에 더 놀림을 받지 않았는가. 어머니가 외국인이라는 것도 그때 알았다. 어렸을 때는 좀 혼란스러웠지만 이제 웬만한 놀림에는 의연하게 대처할 수 있었다. 사실 거의 무시였지만...

그런데 오늘은 좀 달랐다. 하필이면 그녀 앞이었던 것이 문제다.

유진은 달리면서 생각했다. 그녀는 잘못이 없다. 그녀는 그저 나의 고백을 거절했을 뿐이다. 문제는 친구들이 그 장면을 몰래 훔쳐봤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또래 남자 애들이 으레 그렇듯이 몇몇 무리들이 거절당한 유진에게 몰려와 짓궂게 놀렸을 뿐이다.


"와 김유진! 흑역사 생성의 순간!"

"야 이찬우! 말이 심하네. 유진이한테 흑역사라니!"

"아! 쏘리쏘리!"


괜찮다. 평상시에도 자주 하는 농담이다. 어쩌면 친하니까 저런 농담이 가능한 거다. 그런데 왜 하필 그녀 앞이냐는 거다. 어색하게 웃고 있던 그녀의 표정이 유진을 괴롭게 했다.


절뚝거리며 집으로 돌아온 유진은 욕실로 들어갔다. 샤워기를 틀고 깨진 무릎에 가져갔다. 쓰라렸다. 비누칠은 안 되겠지? 아니다. 하고 싶지 않다. 하필이면 비누도 검은 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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