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들처럼 평범하게 살 수는 없니?"
또 저 말이다. 수연은 알고 있었다. 아버지가 자신이 마음에 안들 때마다 저말을 한다는 것을.
엄마의 가출. 아버지는 혹시나 딸이 남들에 흉보일까 봐 수연이 사람들 눈에 띄는게 싫었다. 그게 좋은 일이든 싫은 일이든 말이다. 아버지 눈에는 똑똑하거나 재능이 없었던 수연. 아니, 사실 아버지는 그 걸 알아볼 눈을 가지지 못했다. 행여 수연의 가능성을 알아봤다 해도 작은 공장에서 생산 직원으로 평생을 일해온 아버지에게는 수연을 지원할 능력이 없었다. 그렇기에 아버지로서는 수연을 평범한 아이로 키우는 것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었다. 가능하면 다른 사람들과 비슷하게 살아야 흉도 가려진다고 믿었다. 하지만 수연은 이런 아버지와 매번 부딪칠 수밖에 없었다. 수연에게는 꿈이 있었고 욕심도 있었다.
"평범한 게 뭔데? 남들처럼 좋은 대학 가고, 좋은데 취직하고, 남자 만나서 시집가서 아이 낳고 사는 거?"
수연이 지겹다는 듯 대답했다.
"그래! 잘 아네!"
목소리를 높이는 아버지. 수연은 짧은 한 숨을 내쉬었다. 그리고는 목소리를 높이며 대들었다.
"그렇게 살라고 하는 거잖아!"
"뭐가 그렇게 살라고 하는거야? 우리 집 형편에 재수하는 게 말이 돼는거냐?!"
"평범하게 좋은 대학 가라며? 그래서 재수하겠다는 거잖아!"
"어짜피 서울대 못 갈 거면 점수 맞춰서 다른 국립대 가면 되잖아!"
순간, 서울대를 언급하는 아버지의 이 말은 간신히 붙잡고 있던 수연의 정신줄을 끊어 버렸다.
"아빠 그거 알아? 나 진짜 죽어라 공부했어. 그런데 그 죽어라 공부한다는 게 남들처럼 정말 공부만 한 건 줄 알아? 남들은 비싼 돈 내며 학원 다니고 인강 들을 때, 나는 남들이 풀다만 중고 문제집 사서 풀었어! 올해 나온 문제집 사려면 친구들이 시험 끝나고 놀러 갈 때 나는 아르바이트하러 가야 했어! 그 몇만 원이 없어서! 남들이 수시로 대학 간다고 대외 활동이랑 봉사 활동할 때 나는 정시만 준비했어. 돈도 시간도 없는 나한테는 그게 유일한 방법이었으니까!"
수연의 눈가에는 눈물이 맺혔다.
"뭐 괜찮아. 아빠는 관심 없었겠지만 나 공부 잘했어! 전교에서 놀았다고! 그래서 수능만 잘 보면 됐어. 수능 날 생리만 아니었으면 안 망했다고! 아빠가 말하는 서울대 갈 수 있었다고!! 재수할거야. 억울해서라도 서울대 갈거야!"
소릴 꽥 지르며 눈물과 함께 울분을 토하는 수연이었다.
잠시 정적이 흘렀다. 눈물을 훔쳐낸 수연은 무슨 말이라도 해야 할 것 같았다. 이 정적이 싫었다.
길게 내뱉은 아버지의 한 숨이 먼저 정적을 깼다. 수연은 마음이 급했졌다. 이 한숨 뒤에 아버지가 무슨 이야기를 할지 두려웠다. 이 싸움을 얼른 끝내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평범하게 살라고? 아빠 그거 알아? 엄마가 집을 나간 순간부터 나는 이미 평범해질 수가 없는 거야!"
순간, 수연은 아차 싶었다.
아버지는 고개를 푹 숙이고 바닥만 바라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