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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람부는 버드나무 Oct 20. 2021

소멸의 이유를 택할 수 있다면 그건 사랑이고 싶다.

몇 해 전 tvN에서 방영된 드라마 <검색어를 입력하세요 WWW>는 트렌드를 이끄는 IT 업계 여성 리더들의 이야기로, 일과 사랑 앞에서 주체적이고 당당한 캐릭터들로 큰 화제를 모았다. 묵직한 대사가 유독 많은 드라마였지만, 국내 1위 포털사의 이사이자 재벌가 며느리인 송가경(전혜진 분)이 자신을 조롱하는 시어머니에게 한 대사는 특히 마음이 시렸다. “가경아, 너는 대체 꿈이 뭐냐?”, “... 사라지는 거요”


명예와 재력을 거머쥔 성공한 여성, 하지만 시댁의 무한한 권력 앞에 무릎 꿇고 양심을 판 대가는 결코 자아를 허락하지 않았다. 진짜 나를 잃어버리고 껍데기만 남은 그녀는 지는 노을처럼 세상에서 사라져버리는 것이 유일한 소망이 되어버렸다.     


돌이켜보면 우리는 꽤나 자주 소멸을 갈망한다. 사라지고 싶다, 죽고 싶다, 싹 다 없어져버리면 좋겠다, 세상이 멸망했으면, 그냥 하늘과 땅이 딱 붙어버렸으면... 내가 한없이 작고 초라해질 때, 세상살이가 너무 버거울 때, 사랑이 혹은 꿈이 나를 배신했을 때, 온 우주가 내게 등 돌린 것 같이 외로울 때. 그런 순간들은 수시로 우리를 급습하고 그럴 때마다 우리는 생으로부터 도망치고 싶어진다.      


하긴, 영생을 부여 받은 <도깨비> 김신도, 천년 넘게 이승에 발이 묶인 <호텔 델루나> 장만월도 모두 소멸하는 것이 유일한 소원이었으니, 어쩌면 사라질 수 있음은 축복인걸까. 불교에서는 소멸이 깨달음에 이른 자, 즉 붓다에게만 허락되는 궁극의 경지라는데 그렇다면 우리네 삶은 완전한 멸을 바라며 부단히 정진해 나가는 과정인걸까.     


인간의 오랜 욕망인 불로장생. 하지만 형벌로써 영생을 부여받은 그들은 정작 소멸을 꿈꾼다. tvN 드라마 <도깨비>(좌), tvN 드라마 <호텔델루나>(우) 


만약 소멸이 신의 은총이라면, 우리는 때때로 생의 한가운데서 소멸을 잠시 허락 받곤 한다. ‘나’라는 자아를 압도하는 강렬한 무언가를 맞닥뜨렸을 때다.      


너무 아름다운 것을 목도하여 감격한 나머지 그것에 흡수되고 동화되어 버리는 순간이 있다. 처연한 자줏빛으로 번지는 아침놀을 맞이할 때, 황금빛으로 물 드는 석양빛에 말을 잃었을 때, 갑자기 온 세상이 숨을 멈춘 듯 시간이 정지하고 내가 발 디딘 공간이 사라지는 느낌이 들 때가 있다. 그 순간 나는 인간으로서의 자아를 탈피하여 잠시 거대한 대자연의 일부가 되어버린다. 무한한 존재에게 흡수되어 개체적 인식이 사라져버린 기분은 제법 홀가분하고 꽤나 경이롭다.     


격렬한 신체 활동에 몰입하다보면 고통의 강도가 점차 상승하다가 어느 순간 희열로 바뀌는 하이(High)의 경지에 다다르기도 한다. 미친 듯 춤을 출 때, 한계를 뛰어넘어 달릴 때, 마치 굿을 하다 트랜스 상태에 빠진 무당처럼 내 모든 실제적 감각과 상념이 사라진다면 그 순간 잠시 나는 세상에 없다. 그저 충만한 황홀함만 남아있을 뿐이다.        


누군가를 진심으로 사랑할 때 그의 아픔이 내 아픔이 되고 그의 기쁨이 내 기쁨이 되어본 적 있는가. 네 대신 차라리 내가 아프고 싶고, 네가 웃을 때 온 세상이 웃는 듯 행복해진다면, 나는 곧 네가 되어버린다. 그가 내 삶의 우선순위가 된 순간 이제 둘 사이에 ‘나’라는 이기적 경계는 없다.

만약 그 사랑하는 이가 위험에 빠졌다면 나는 더욱 철저하게 소멸한다. 연인이 혹은 가족이 위독해서 병원에 입원해 본적 있는가. 잠시라도 눈을 떼면 영영 떠나버릴까 두려워 종일 침상 곁을 지켜본 적 있다면, 수면욕과 식욕이라는 인간의 기본욕구도 사라진 채 온 신경과 일상이 오직 그로 가득 채워지는 초인적 순간을 경험하게 된다.      


때론 공동체의 위기 앞에서 개인이 생명유지 본능과 두려움을 극복한 채 이타적 존재로 거듭나는 기적을 목격하기도 한다. 5.18민주화운동 때 계엄군의 무차별 폭력에 맞서 거리로 뛰쳐나온 시민들에게, 침몰하는 배에서 호스를 몸에 감고 학생들을 구조하던 승객에게, 한밤중 원룸빌라에 화재가 나자 집집마다 초인종을 누르며 주민들을 대피시킨 학생에게 양심은 ‘나’라는 개별적 존재를 지워버릴 만큼 압도적이고 강렬한 이끌림이었다. 소설가 한강의 표현대로라면 “눈부시게 깨끗한 보석이 내 이마에 들어와 박힌 것 같은” 순간이었을 테다.     


그대 오늘도 소멸을 꿈꾸는가? 그대가 바라는 소멸은 어디쯤인가?

지친 삶의 마지막 도피처인가, 지상의 목표를 이룬 완생의 경지인가, 무한한 존재를 향한 회귀인가, 더 큰 합일을 위한 내 영혼의 탈피인가, 이기적 자아를 극복하려는 숭고한 희생인가.     


내가 소멸의 이유를 택할 수 있다면, 그건 사랑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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