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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람부는 버드나무 Sep 11. 2021

나는 버드나무가 좋다

- 당신이 좋아하는 식물은 무엇인가요?

나는 버드나무가 좋다. 한글로 발음할 때 목구멍으로 얕은 숨이 밀려 나오는 여운 있는 느낌이 좋다. Willow, 영어로 읽을 때 입술이 둥글게 오므러졌다 구르며 펴지는 느낌도 좋다. 柳, 한자를 쓰다 보면 길고 가는 잎줄기가 낭창낭창 바람에 흔들리는 것 같아서 좋다.   


유연해서 강한 바람에도 쉬이 부러지지 않고, 습하거나 척박한 땅에서도 금세 적응해 빠르게 자라나며, 백번 잘라내도 다시 돋아나는 끈질긴 생명력을 가졌다. 껍질에는 통증을 가라앉히는 ‘살리신산’이 들어 있어 기원전부터 민간의 소염진통제로 널리 사용되었으며, 열이 나거나 두통이 올 때 흔히들 먹는 ‘아스피린’도 이 성분으로 만들어졌다.  

      

버드나무는 우리나라를 포함한 유라시아 북방 유목 문화권의 공통 신화소로서 자주 등장한다. 고대부터 버드나무는 생명과 탄생, 치유와 재생, 인간계와 천상계를 연결하는 통로의 상징으로 신성한 나무(神木)이자 우주목(세계수)이었다. 만주족의 태모신 포도마마(Fodoho), 고구려 주몽의 어머니인 유화부인(柳花婦人), 켈트족의 모신 브리짓(Brigit)은 모두 버드나무와 관련되어 있으며, 일본 홋카이도의 아이누족은 인간이 버드나무에서 나왔다고 믿기도 했다.      


또한 이승과 저승의 경계에서 악한 기운을 몰아내고(벽사), 부정한 것을 정화하는 상징이기도 했다. 우리나라는 기우제를 지내거나, 청명·한식 의례로 새 불을 피워 백성에게 나눠줄 때, 무당이 귀신을 쫓을 때, 민간에서 학질 환자 병을 떼는 주술을 할 때, 죽은 자를 염하는 숟가락을 만들 때 버드나무를 사용했다. 몽골, 거란 등 북방 유목민족은 중요 제천 행사나 즉위식 때 신목으로써, 게르를 짓는 신성한 재료로써, 죽은 자의 무덤에 가지를 꽂아두는 마니수로써 사용하기도 했다. 우리에게 익숙한 아메리카 원주민이 나쁜 꿈을 쫓기 위해 만들어 달던 ‘드림캐쳐'의 재료도, 애니메이션 <포카혼타스>에 나오는 숲의 정령 '할머니 나무'도 바로 버드나무이다.


놀라운 생명력, 유연한 적응력, 신비로운 상징성, 생활재로서의 유용성과 약재로서의 효용성. 하지만 그 모두를 제처 두고 그저 바람에 한들한들 춤추는 그 모습만으로도 충분히 좋다. 물가에 나란히 서서 온 몸의 힘을 뺀 채 늘어져있는 버드나무를 보고 있자면, 나도 끝없이 태평한 한량이 된 기분이다. 움츠린 어깨의 긴장을 풀고, 꽉 조인 마음의 문을 열고 그냥 저리 가볍게 살고 싶어 진다.      


사실 내 이름에 들어가 있는 글자이기도 하다. 어쩌면 단지 그 이유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포카혼타스가 고민이 있을 때마다 찾아가던 할머니 나무 'willow'(이미지 출처 : 구글 검색)



* 참고자료: 최혜영, 버드나무 신화소를 통해 본 유라시아 지역의 문명 교류의 가능성 혹은 그 接點, 동북아역사논총,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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