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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주갑부훈 Aug 24. 2021

내가 제주도에 버린 것들

프롤로그.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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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 행원리에서 10분만 걸어 나가면 제주 대표 관광명소, 월정리가 있다. 지금은 많은 관광객들이 찾는 바다지만, 10년 전 만해도 이곳은 외로움을 즐길 줄 아는 고독한 여행가와 히피들의 낙원이었다.


sns에서 월정리 키워드로 검색하면 나오는 인기 포스팅은 대개 이국적인 풍경의 에메랄드 빛 바다와 이를 배경으로 찍은 인물 사진들이지만, 사실 이 바다는 낯가림이 심해 저녁이 돼서야 그 황홀한 이면을 살며시 보여준다.


달이 정차하는 곳이라 하여 이름 지어진 월정.


이곳의 밤바다는 세상 모든 좋은 풍경 맛집을 빠짐없이 다녀본 까다로운 여행 미식가들의 입맛을 충분히 매료시키고도 남았다. 그들은 이곳에서 풀문 페스티벌을 값없이 열었고, 지나는 누구나 축제에 초대받았다. 그날도 바다 위엔 둥근달이 찼고, 모 없이 둥근 자갈을 닮은 사람들은 바다 위에 둥둥둥 떠다니거나, 어떤 무리는 둥글게 원을 그리며 이 밤이 다 가도록 춤추고, 노래를 불렀다.

 

이제는 사라진 그 바다가 그립지만, 풍문에는 바다는 고래가 되어 다른 곳으로 옮겨갔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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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여름의 시작 6월에서 낮과 저녁의 일교차가 크지 않은 9월 말 까지 가벼운 옷차림으로 달을 만나러 자주 월정 바다로 간다. 어릴 적 달과 관련된 전설과 이야기를 유난히 좋아했다. 그래서인지 난 지금도 달을 좋아한다.


사람들이 붉은 노을을 보러 바다에 나올 때, 같은 시각 나는 어서 화려한 것은 저물고, 담백한 고독이 차오르길 바랐다. 낮 동안 수많은 방문객이 남긴 발자국을 하나씩 지우는 파도의 수고가 발끝에 닿으면 어느새 어둠도 함께 와 있다.


슬리퍼와 펑퍼짐한 셔츠를 가로등 아래에 벗어두고, 오늘도 수고한 바다를 토닥이며, 소란스럽지 않게 바다로 스르륵 들어간다. 그리고 둥근 보름달과 눈을 마주치고 수면 위에 힘 빼고 누워 오늘 하루 있었던 이런저런 일들을, 혹은 후회되고, 가슴 미어지는 오래된 이야기를 다소 차분히 내어놓는다.

 


달아, 달아,  마음에도  많은 달이  있단다.
사라진  알았던 그리고 지웠다 생각한  굵은 상흔들이 어느 날은 유쾌한 구름에 가려져 의식하지 못하기도, 초승달처럼 작아져  보이지 않기도, 하늘 한번 올려다볼 삶의 여유가 없어 그냥 지나치기도 .

하지만, 달은 오늘도 멈추지 않고 조금씩 채워져가고 있어서, 어떤 날은 내가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크고, 선명하고, 가깝게 차오르기도 .

있잖아,  마음에 한번 들어온 것들은 좀처럼 깨끗이 지워지지 않는  같아. 그래서  마음속 사라지지 않을, 지워지지 않을 것들과는 되도록 적으로 지내지 않으려 . 그런데 그게  말처럼 쉽지 않은 .

남의 일에는 현인인 나는 정작  일에는 좁밥이야.  일을 남일처럼 대할 수만 있다면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대부분의 고민은 아마 손쉽게 해결될  같은데.

나로 사는 것이 중요하다지만, 갈팡질팡 우유부단  나는 오히려 내가 나로 살지 않고, 오히려 <타인의 태도로  삶을 사는 > 괴로운 일이 유난히 많은 요즘을 무사히 헤쳐나갈  있는 방법이지 않을까 싶어.

, 어렵다 어려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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