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제주도에 버린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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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는 돈을 보관하는 네 개의 주머니가 있다.
수익구조를 극대화하는데 돈을 쓰는 대형 프랜차이즈가 아닌 음식의 본질인 건강한 맛에 투자하여 땀 흘리는 로컬 가게에 소비하는 주머니가 그중 하나인데, 이 주머니는 대개 매우 신중하지만, 때론 무척 기분파이다. <작지만 진짜인 것을 하고 싶다>라는 모토로 음식을 만드는 서귀포의 한 식당을 찾을 때면 1일 1식 하는 그와 나는 반드시 과식하고 만다.
또 하나의 주머니는 보다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나 대신 차가운 거리로 나서는 활동가들을 보조하고, 내 능력 밖 분야에서 우리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 지속 가능한 에너지와 제품을 연구 개발하는 기업에 힘을 실어주기 위한 것이다.
이 주머니는 <내가 원하는 세상에 살기 위한 투자의 목적>으로 마련됐다.
그리고 모든 주머니 가운데 크기가 가장 큰 것은 저축하는 주머니인데, 내 건강보다 사실 내 돈에 관심이 많은 보험사와의 계약을 끝내고 자연에서 스스로 건강을 돌보기 시작하면서 이 주머니의 크기는 좀 더 커졌다.
이 주머니의 주 기능은 <만약>이라는 이빨 센 두려움과 좀 더 적극적으로 협상하여 내일의 불안함이 아닌 오늘의 소중함에 보다 자주 몰입해 살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그렇지만, 주머니라는 곳의 속성이 그렇다. 그 깊이가 어찌나 깊은지 돈이 한번 들어가면 도로 꺼내기란 여간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마지막 내 이웃과 친구를 위한 주머니는 처음부터 그 깊이를 확연히 얕게 만들어 둔다. 그리고 처음부터 그쪽으로는 쳐다보지도 않고, 마치 내 것이 아닌 것처럼 여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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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처한 녹녹지 않은 상황과 그가 꿈을 향해 걸어가는 고단한 발걸음을 보고도 눈을 돌린다면 나는 다른 그 누구와도 친구가 될 수 없다 생각했다.
내 친구 띠아조는 버마난민학교 선생님이다.
2017년 태국령 메쏫 난민촌 버마난민음악학교에서 그를 처음 만났다. 첫 만남 때, 띠아조는 미얀마 현재 정치 군사적 갈등과 부족 간의 분쟁 그리고 교육문제 등 풀기 어려운 산적한 이슈들을 그 부족 특유의 침착한 어투로 한참을 떠들었다. 그러다 약간은 격앙된 목소리로 무엇보다 이 나라의 미래를 위해 교육 분야의 혁명이 시급하다 힘주어 말했다. 같은 해 그는 혁명가의 결연함으로 난민촌을 떠나 미얀마 본토로 들어갔다.
한참 소원하다가 4년이 지난 올해 난민촌이 아닌 본국 미얀마, 만달레이에서 그를 다시 만났다. 다소 핼쑥해진 그의 모습에서 그간의 고생을 미뤄 짐작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의 눈은 여전히 총총 빛이 났고, 그간에 있었던 에피소드를 나에게 전해주느라 띠아조는 전에 없이 무척 흥분해 보였다. 하지만 나는 좀처럼 그의 이야기에 전혀 집중할 수 없었다. 내 앞에 서 있는 것은 띠아조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선한 동기로 시작된 순수한 열정 그 자체>
그렇게 그는 한참이나 그간 진행해 온 학교 짓기와 교육혁명에 대해 열변했고, 그동안 나는 여전히 그의 눈이 발산하는 아름다움에 빠져 귀를 담그고, 둥둥둥 떠다니고 있었다.
그와의 재회 이후 나는 더 이상 기부하지 않기로 결심했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가진 자가 가지지 못한 자에게 베푸는 거룩하게 포장된 선행이 아니라, 내 아이들이 자랐으면 하는 세상, 내가 죽기 전까지 보고 싶은 세상을 만들기 위한 <이기적 투자>로 용어를 정리하기로 했다. 그러고 나서 <제주갑부훈과 행행행 친구들> 이름으로 띠아조의 실험에 이기적 투자를 결정했다.
그간 많은 친구들이 *행행행을 방문했다.
들판을 뛰어다니고, 산을 오르고, 바다 위에 둥둥둥 떠다니다, 며칠 밤낮으로 같이 노래하고, 서로의 외로운 마음을 채워주고, 같이 밥을 지어먹고, 술에 취해 울고 웃다, 또 같이 아침을 맞으며 친구들이 내게 맡겨둔 천만 원을 깊이가 얕은 주머니에서 꺼내 우리 모두의 이름으로 전달했다.
괴로움은 잠시 잊고, 즐거움으로 가득 채웠던 우리들의 여행이 누군가의 간절한 미래를 위한 좋은 마중물이 된다는 것은 정말로 짜릿한 일이지 않나.
*행행행_ 작가의 집 이름인 행행행은 마음이 가난한 여 <행> 자가 제주 <행> 원리에 정착하여 <행> 복 비스무리한 것을 되찾은 곳이다. 행행행은 작가와 비슷한 고민을 가지고 제주를 여행하는 이들의 휴식공간이자 실험공간이기도 하다. 현재 오프라인 행행행은 지리산 자락 어딘가에 새로운 터를 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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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마 난민의 탄생은 이렇다.
경제적, 정치군사적 이유로 제 고향으로 돌아가기 막막한 이들은 국경지대 인근 태국 영토에서 난민 생활을 시작했다. 가장 낮게는 넝마로 생계를 유지하고, 집이라고 하기엔 너무나도 초라한 곳에서 가정을 꾸렸다. 희망이라는 이름의 아이들이 태어나면서 다수 부족 중심으로 저마다의 공동체 학교를 짓기 시작했고, 현재 이곳 난민촌에는 3세대가 자라고 있다. 그리고 4대 아이들이 태어나겠지만, 현실은 잔인한 법.
<이곳에 희망은 있으나, 미래는 없다>
뿌리내려 주권을 가질 수 없는 땅, 언제 변할지 모르는 당국 난민 정책으로 오로지 아이들 교육 외에는 희망 둘 곳 없다. 때문에 보다 나은 삶으로 환생을 꿈꾸며 이번 생은 제 한 몸 완전히 연소하려는 부모들의 이토록 지독하게 고단한 하루를 나는 여태껏 소설과 영화 밖에서는 단 한 번도 목격한 적 없었다.
내가 아무리 힘준다고 해서 과연 이 상황이 미동이나 할까? 정작 내 곁에 사람도 잘 돌보지 못하면서 1년에 한 번 고작 몇 주 동안 이 먼 곳까지 날아와 누군가를 돌본다는 것이 위선은 아닌가.
나는 지금 충분히 선한 의지를 가지고 아이들을 만나고 있는 것인지, 또 아이들에게 주는 웃음이 진심인지 싸구려 동정인지 하루에도 수십 번 의심하고 채찍질하며 이곳에도 미래는 있다는 말을 내 입으로 듣고 싶어 정해진 답을 재촉했다.
하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여전히
<이곳에는 희망은 있으나, 미래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