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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주갑부훈 Sep 05. 2021

할 수 있는 것을 할 수 있는 만큼

내가 제주도에 버린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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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알기로 우리 교육은 유년시절 대부분의 아이들에게 동화전집과 위인전집을 읽힌다.


동화는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지혜를 가르치고, 위인전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정답을 알려준다. 모든 부모의 마음이 그렇듯이, 내 부모도 제 자식은 지혜롭고 위대한 인물이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적지 않은 돈을 써가며 동화전집, 위인전집을 초등학생인 내 책장에 꽂아두었다. 하지만 그것들은 내게 그 어떠한 흥미도 줄 수 없었다. 동화는 유치했고, 위대한 인물들과 나는 그 어떤 공감대도 형성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오히려 제주를 여행하는 여행길에서 많은 위인들을 만났다. 누군가 제주는 내게 어떤 의미인지 묻는다면 나는 이렇게 대답한다.


제주도는 <위인전집>이라고.


내가 누구인지, 또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맹렬히 고민할 때, 이 땅 위에 생존하기 위해 분투하는 수많은 풀과 벌레를 만났다. 이토록 살기 위해 애쓰는 것이 나뿐만이 아니라는 생각에 혼자라는 불안감을 조금 덜어낼 수 있었다.

생명을 틔우기 위해 돌을 뚫고 자란 비자나무숲의 연대기는 <나는 왜 사는가> 하는 어리석은 질문을 멈추게 했고, 아침 산책 때마다 만나지만, 매번 이름을 잊어버려도 꾸짖거나 마음 상해하지 않는 들꽃들에게서 성숙한 사랑은 무엇인지를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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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은 하고자 하는 것은 동물의 본성이다.


땅과 그 땅에 근거하여 사는 자연이 매일 내게 선물한 영감에 보답하고자 내가 지구를 위해 할 수 있는 일들을 찾기 시작했다. 그리고 자연에 버려진 쓰레기들을 내 손으로 수거하는 여행을 시작했고, 창조하는 일에 비해 덜 중요하다 여겼던 수습하는 역할의 소중함과 불편함을 즐기는 나를 발견했다.


이것은 참으로 뿌듯하고 보람된 일이었지만, 동시에 내 마음 한켠에서 불편한 것이 자라나고 있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내가 사랑하는 제주의 환경을 보호한다는 의도로 시작한 즐거운 일이 마구잡이로 일회용품을 사용하고, 쉽게 버리는 이들에 대한 증오로 모양이 변한 것이다. 그리고 이 증오의 화살은 내게로 되돌아와 나의 삶을 위태롭게 만들었다. 왜냐하면, 숲과 바다에 버리지만 않았지, 사실 나 또한 이들과 크게 다를 바 없이 문명을 소비하고 쓰레기를 만드는 인간이니까.

 

채식주의자로 살기 어렵다는 어느 직장인 여행자의 고뇌를 핑계 삼아 일회용의 편의를 간헐적으로 누리며 살아가는 나의 위선을 때때로 용인하고 묵인했었다. 이상을 꿈꾸는 머리와 그를 따라가지 못하는 습관이 크게 부딪혀 사나운 굉음을 냈다.


매일 아침 올라 108배하던 아부오름에게,

나의 노새 오토바이 피카추와 함께 달리던 1136 도로에게,

언제고 나의 입장을 거부하지 않은 바다에게,


하루에도 몇 번이나 사랑한다 고백한 제주이지만, 그 말의 무게에 걸맞은 <완벽한 에코라이프>를 살지 못하는 나의 모순 때문에 한동안 많이도 괴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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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을 위해 오늘을 희생하지는 말아야 한다> 역설하는 나의 스승은 내게 나의 모순이 만드는 괴로움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하나의 지혜를 일러주었다.


<할 수 있는 것을, 할 수 있는 만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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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초 정들었던 투투투를 폐차시켰다.


반려동물에게 이름 지어주듯이 집, 자전거, 오토바이 같은 나와 친밀도가 가까운 것들에도 친근감의 표시로 이름을 지어준다. 28살에 갖게 된 내 첫 번째 차는 98년식 카렌스. 녀석의 외관이 개구리 왕눈이의 빌런 투투를 닮아 투투로 지었더랬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두 번째 입양한 차의 이름은 투투 Two가 되었다. 하지만, 투투투가 들으면 섭섭할 만도 한 것이 06년식 쎄라토 투투투는 투박하게 생긴 투투와는 다르게 내외부가 서킷용으로 개조되어, 수동기어와 터보 엔진이 장착되어 있었다. 그래서 변속 때마다 람보르기니급의 출력과 포르셰급의 배기음을 자랑했으며, 사이버 포뮬러급의 스포틱 어피얼런스를 갖추었다고 나는 강력히 주장한다.


행행행 친구들이라면 누구나 투투투와 함께 한 여행을 선명히 기억할 것이다. 우리는 투투투에 올라 함께 산을 넘고, 쏜살같이 들판을 달렸으며, 그 안에서 안신애 미발매 앨범 <미친년>을 미친놈처럼 따라 불렀다. 어떤 때는 캠핑카가 되어주고, 어떤 때는 나를 위한 무대로 변신하기도 했으며, 최근까지의 내 모든 연애를 꿰고 있는 입이 무거운 신뢰할만한 녀석이고, 반려견 호라의 마지막을 배웅한 곳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 투투투를 폐차했다.

불편함을 즐기자는 둥, 석유 석탄 에너지가 우리 아이들 미래를 망친다는 둥 무대에서 실컷 멋들어지게 떠들고 나서, 정작 연기 폴폴 날리는 디젤 노새를 타고 퇴근하는 내 모습이 너무 우스웠다.


얼마 뒤 KEB 하나은행과 함께 최신 전기차를 샀다. 이름은 <투루투투>

어떻게 보면 전기차도 완벽한 ecofriendly는 아니다. 운행을 위해 사용하는 전기 또한 석탄 원자력 에너지를 주원료로 사용하는 발전소에서 만들어지는 것이니까. 하지만, 적어도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할 수 있는 만큼> 당장 실천해내며, <내 삶에서 생각과 말의 모순, 말과 행동의 모순을 하나씩 걷어내고 있다는 것>으로 오늘 무대에서 만나는 사람들에게 <제주도 이곳에 버리고 가는 것은 당신의 지친 마음뿐이었으면 좋겠습니다>라고 좀 더 진짜로 노래할 수 있을 것 같아 마음이 좋아졌다.

 

또, 점진적으로 플라스틱 사용을 줄여나가는 대신, 급진적으로 휴지 사용을 끊었다. 화장실에서 휴지를 쓰지 않은 날로부터 6년, 이제 외출할 때에도 휴대용 비데를 가지고 다닌다. 그동안 나는 몇 그루의 나무를 지켰을까.


명함으로만 환경운동가가 되지 않기 위해,

입으로만 사랑하는 연인이 되지 않기 위해,

모순의 괴로움에 빠지지 않기 위해


나는 오늘 <할 수 있는 것을 할 수 있는 만큼> 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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