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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주갑부훈 Oct 17. 2021

어떤 멍청한 녀석의 오타, 삶의 목적

내가 제주도에 버린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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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출복으로 갈아입고, 아직 깊은 잠에 빠져 있는 식구들 발 사이를 비집고 걸어 나와 그대로 운동화에 몸을 얹는다. 오늘은 내가 좋아하는 산책로가 아닌, 내 허리를 감싸 안은 바람이 에스코트하는 쪽으로 걸음을 뗐다.


고집부리지 않는다면 걷기는 한결 편해진다.


돌담을 지나 완만한 언덕을 넘으니 아직 거뭇한 바다가 보인다. 지난밤 외풍이 많다 싶더니, 첼리스트 Eugene Freisen의 Shadowplay 연주처럼 파도가 거칠다. 나는 더 이상 나아가지 못하고 그 자리에 웅크리고 앉아 고개를 가슴 깊숙이 처박고 잠시 묵직한 고요함에 잠긴다.

 

해가 완전히 오르기 전 아직 어둑한 가운데 홀로 옅게 달빛을 반사하는 물푸레나무의 떡잎이 바람에 부딪혀 비트를 만들면 지구를 벗어난 우주인이 가장 그리워하는 땅의 소리, 귀뚜라미와 찌르레기의 이중주가 그 위로 멜로디를 만든다.


작고 소중한 것들에 몰입할 수 있는 마음의 눈과 귀가 열리면, 자세를 고쳐 가부좌로 틀어 앉아 요추의 미는 힘과 아래 복부의 당기는 힘의 마찰로 열을 내어 콧 속으로 들어오는 차가운 공기를 가슴 흉부에서 따뜻하게 데운다. 데워진 열은 온몸 구석구석으로 보내져 내 안의 옹졸한 것들을 꼭 안아 깨운다.


감은 눈 안으로 눈부신 별무리가 후드득 쏟아져 들어온다. 그리고 잠시 뒤 오늘의 시작을 알리는 붉은 종소리가 바다와 하늘의 구분이 사라진 곳에서 울려 퍼진다. 이 우주에 사는 모든 생명이 그 소리를 기준으로 시간을 맞춘다. 새벽을 즐기기 시작한 지 오래되지 않은 나도 그간 두세 시간 뒤로 밀려있던 내 심장 박동 시계를 재조정한다. 그러다 문득 <무한의 태양과 부지런한 심장은 아마 같은 조물주의 공장에서 나오지 않았을까> 하는 상상으로 혼자 피식 웃으며 새벽의 인사에 화답한다.

 

해가 올라 어둠을 바다 건너로 밀어내면, 눈앞에 살아있는 것들의 속도가 보인다. 비가 되어 곧 사라질 구름도 저리 여유로이 걷는데 뭐가 그리 분주했는지. 하지만 그땐 그랬다. 진지하여 무겁고, 치열하여 버거운 숱한 질문을 던지며, 뒤로는 쫓아오는 불안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앞으로는 <삶의 목적>을 찾기 위해 나를 채찍질하며 힘주어 걸었다. 그리고 <삶의 목적>에 다다를 때마다 고대하던 것들은 보이지 않고, <삶이 목적>이라는 방향 없는 이정표만이 반복해 나타났다.


삶의 목적은 삶이 목적


이토록 단순한 사실 하나 겨우 알기 위해 그동안 나는 그토록 찾고, 떠나는 괴로움을 반복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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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 녀석 중 하나가 삶의 목적을 찾아 떠난다 했다.


<가지 마소, 어떤 멍청한 놈의 짓인지는 몰라도, 그것은 오타요. 삶의 목적이 아니라, 삶이 목적이라고>


터져 나오려는 열변을 꿀꺽 집어삼키고, 다시 돌아오기 위해 떠나는 친구의 뒷모습을 배웅했다. 문을 열고 길을 나서야지만이 실은 문을 연적도, 길이라고 인식했던 옳고 그른 방향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기에.


다만. 언젠가 다시 돌아올 내 사랑하는 당신을 위해 나 대신 그대를 맞이해줄 오늘 나의 음성을 기록해둡니다.





어서 오게
구름 사이로 찬란한  내리는 해님의 관용과 작은 나뭇잎들이  온몸으로 당신께 보내는 갈채는 그대의 행진을 밝히기 위함이오.

왕과 함께 걸어도 냉정을 잃지 않는 당당한 걸음으로 돌아온 그대.
처음과 끝이 닿은 분절 없는  위에  있는 그대.

그대의 본질은 거지. ( ) ( )

모든 땅이 그대의 것이기에 어딘가에 구태여 
욕심을 쌓아두지 않고 언제든 두려움 없이 떠날  있는 진짜 갑부,

선의  끝이 둥글게 연결된 하나의 사람으로 경계 없이 자유로워진 그대의 천진난만한 웃음의 모양은  것과는  어떻게 다를는지 어서 보고 싶구려.

바다와 하늘의 구분이 사라진 곳에서 판단하지 않는 아이의 목소리로 당신을 불러봅니다.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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