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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주갑부훈 Oct 22. 2021

여름 같은 괴로움

내가 제주도에 버린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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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의 성질을 띈 불쾌하고 불편한 괴로움은 하루라도 빨리 발랑 벗어던지려고 했다.

 

사랑하는 이의 죽음이 그랬다. 그가 한 생으로 내게 말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간직하고, 슬픔은 하루라도 빨리 벗어던져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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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의 피에 흐르던 암 덩어리들이 모두 불에 타 사라졌다.

지난 삼 년간 끈질긴 병마와의 싸움을 끝내고 아이는 아주 가벼운 몸으로 가족과 함께 고향집으로 돌아왔다.


한 줌의 재가 되어.

 

사냥꾼이 새끼 원숭이를 포획해 배에 실었다. 그 광경을 지켜보기만 해야 했던 어미 원숭이는 몇 날 며칠을 잠도 자지 않고 그 자리에서 괴로워하며 울다 죽었는데, 이를 지켜보던 이가 그 울음소리가 하도 기이해 죽은 어미의 배를 갈라보니 창자가 토막토막 끊겨 있었다고 한다.


창자가 끊어지는 듯 한 아픔. 자식을 잃은 단장의 아픔이다. 10년도 채 제대로 살아보지 못하고 져버린 아이의 안타까운 죽음 앞에서 나는 아무런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아이의 죽음을 자신들의 탓으로 돌리는 부모에게 나는 어떠한 위로의 말도 건넬 수가 없었다. 그들이 삼키려 애쓰는 저 아픔을 내가 얼마나 공감할 수 있다고 일언반구 하겠나. 창자가 끊어지는 듯 한 아픔, 자식을 잃은 단장의 아픔 앞에서 나는 고개만 떨구었다. 양지공원에 아이를 누이고 돌아 나올 때까지 이를 악물고 눈물을 참았다. 하지만 속으로는 땅이 꺼져라 고함쳤다.

 

이 모든 책임은 신이 져야 한다.

호전과 재발을 반복하는 동안 놓지 않았던 가족들의 희망을 조롱한 신이 이 모든 원망을 들어야 한다.

그리고 아이를 다시 어미의 품에 안겨줘야 한다


아이는 작은 미소 하나만을 가족들에게 남기고 하늘나라로 올라갔다. 얼마 뒤 지나가는 동네 꼬마 녀석들을 불러 아무런 이유 없이 아이스크림 하나씩을 사줬다.

 

아이들은 시원해했고, 나는 따뜻해졌다.

하늘은 푸르게 일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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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또 다른 친구가 죽었다.

 

그의 첫인상은 유쾌하고, 밝았다. 원래가 긍정적이고 유머러스한 사람이라고 주변에서 평을 했지만, 그것은 그의 몸에서 기생하는 암덩어리와 싸우는 그만의 무기였을 테다.

 

“훈 생각해봐. 내가 교통사고로 즉사하지 않아서 얼마나 다행이야. 암은 어떻게 보면 참 축복이야. 그간 내 삶을 정리하고, 죽음을 준비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졌잖아. 내가 증오했던 사람들을 찾아가 ‘나 이제 곧 죽어부난’ 너스레 떨며 화해하고, 못마땅한 이들에겐 ‘ 나 이제 곧 죽어부난’ 똑바로 살라 일침도 하고, 아꼬운 내 새끼들한테 허락된 시간 안에서 무한한 사랑도 줄 수 있으니까.”


하늘나라로 떠나기 석 달 전 그는 나를 찾아왔다.

작별인사라고 얘기하지 않았지만, 그의 듬성한 머리가, 담아가려는 눈빛이, 기억하려는 손끝이 대신 말해주었다.

 

“잘 있어”

 

나는 손수 만든 요거트를 대접하며 답했다.

 

“응 잘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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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또 다른 친구가 죽었다.

 

호라는 가쁜 숨을 내 쉬다 가족의 품에서 조용히 생을 마쳤다. 성견이 되어 입양한 호라와 참 많이도 싸웠다. 호라가 가지고 있는 파양의 트라우마와 개는 개처럼 키워야 한다는 나의 선입관이 격렬히 부딪혔기 때문이다. 나와 친구들에게 입질도 여러 번 했고, 응수하는 나의 반격으로 갑부가 되려는 내 마음의 평화는 완전히 엎질러져 다시 거지로 돌아가기 부지기수였다. 고약한 성격을 가진 우리의 동거는 서로를 불편하게 만들었고, 나는 속으로 수십수백 번이나 저 새끼 곧 내다 버려야지 생각했다.

한 번은 이런 사건이 있었다.

 

육지 공연, 무대 오르기 바로 몇 분 전,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들려오는 다급한 목소리의 주인공은 경찰. 내가 시베리아 허스키 견주인지 확인하고, 지금 개가 가스통을 끌고 도로를 달리고 있다는 경악스러운 뉴스를 전했다. 무대에서 내가 무슨 정신으로 노래했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이후 예정된 스케줄을 모두 취소하고, 공연이 끝나자마자 제주로 넘어와 벌어진 일들을 수습했다. 또 살던 곳에서 불합리하게 쫓겨나 몇 달 거리 신세를 진적이 있었는데 그러다 미운 정이 들었나 보다. 그렇게 우리는 서로 미워하고, 책임지며, 가끔 위로받으며 살았다.

 

한동안 뭉그적거리며 결단을 미루어 왔던 일에 대해 고민하는 데 호라와 보내야 할 시간을 전부 써버렸다. 사실은 내가 그렇게 시간을 조정했다. 가족이니까 그래도 된다 생각했다. 가족이니까 기다려주어야 한다 생각했다. 가족이니까 나를 이해해줘야 한다 생각했다. 씨발 가족이니까. 주치의는 적어도 보름은 지났을 거라고 했다. 발병하고 생명이 위태로워지기 시작한 지가. 호라가 짖거나 낑낑대지 않았다고 나를 변호했다. 그렇다면 녀석은 저 나름의 신호를 보내며 오랫동안 참고, 기다렸을 거라고 주치의는 말했다. 그 말이 나의 마음을 새게 후벼 팠다.

 

머리로 충분한 계산과 검산을 거친 후 수용하듯 뱉는 말이 <미안해> 라면, <용서해줘>는 나를 변호하는 우산을 쓰지 않고 차갑고, 뾰족한 비 맞으며 그의 마음에 한 발짝 한 발짝 천천히 다가가는 온전한 순응이다.

 

그래서 <하지만>이라는 변명의 여지가 붙을 수도 있는 <미안해> 보다, <마침표> 외 어떤 사족도 덧붙일 수 없는 <용서해달라>는 말이 여기에 더 적절할 것 같아. 용서해줘, 호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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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로 지새우던 축축한 날들 위로 건조한 바람이 조심 스래 지나간다. 길고 긴 여름이 이제 끝이 나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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