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제주도에 버린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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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서 전화가 한통 걸려왔다.
그가 폐암에 걸렸다는 소식이다.
하지만, 아빠의 소식은 나에게 전혀 비극적이지 않았다.
금연을 늘 내일로 미루던 그였기에, 20대 청춘에 이국땅에서 화약과 고엽제를 과도히 들이마셨기에, 또한 더욱 가지려 애쓰는 사냥꾼 같은 불완전한 인간이었기에 누군가의 증오와 저주를 피할 수 없었을 테다. 사실, 그 저주의 꽤 많은 양은 나에게로부터 기인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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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거칠고 술을 좋아했으며 자주 취해 있었다.
베트콩의 머리통을 갈기던 그의 손가락과 인질의 아구창을 찢어놓았던 군홧발은 전쟁이 끝났다는 소식을 아직 듣지 못했나 보다.
늦은 밤 이따금 그의 매질이 시작되면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었다.
<우리는 인질이 아니고, 적도 아니고, 가족이란 말이야 씨빨>
그러나 나는 내 속의 화를 그의 앞에서 끄집어낼 만큼, 축적된 두려움과 맞설 용기가 없었다.
내 어미가 우는 모습을 자주 목격했다. 그럴 때마다 그녀는 눈물을 훔치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비를 사랑하라 말했다. 그녀를 향한 연민과 그에 대한 두려움, 그리고 대항하지 못한 나의 나약함에 대한 원망이 날을 거듭할수록 더해져 아주 위태롭고 위험한 것이 되었다.
시곗바늘이 자정을 넘어가도 그가 귀가하지 않았다는 것은 불안한 신호다. 근육 없는 나의 작은 육체가 술에 취한 퇴역군인의 단련된 폭력으로부터 어미와 누이를 지키기 위해서는 다른 무언가의 도움이 필요하다 생각했다. 그리고 내 베개 아래에 사냥개의 이빨 같은 것을 두고 잠들었다. 한 번은 어미가 그것을 발견하고 충격을 받았는지 크게 울며 나를 꼭 껴안고 몇 시간 동안 수백 번 반복해 그 말을 되뇌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빠를 사랑해야 해.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빠를 용서해야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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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위에는 사춘기 소년이 기대어 쉴만한 곳은 없었다. 부드러움은 없고 온통 거칠거나 날카로움 뿐이었다. 소년은 늘 바위를 먼발치에서 미운 시선으로 쳐다보기만 했다. 바위가 훨씬 작아지고 외로워 보이기 시작했을 때, 그는 칠순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었고, 소년은 바위보다 훨씬 키가 큰 나무가 되었다.
바위의 둘레만 볼 수 있었던 눈은 이제 나뭇가지 끝으로 옮겨가 그의 이면과 그를 둘러싼 환경을 보다 높은 곳에서 넓게 바라보았다. 그리고 자라난 키만큼 땅 깊숙이 내린 잔뿌리로 바위의 밑동을 스르륵 감싸 어루만져보니 바위는 자신이 선 자리 밑에 그의 애수와 은밀한 로맨스, 결코 아무에게도 들키고 싶지 않은 치부, 고민, 한때의 원대한 꿈같은 것들을 숨겨두었다.
보릿고개를 지나 전쟁을 겪고, 다시 전쟁 같은 현실의 삶까지 갖은 풍파의 세월 속에서 딱딱히 굳어버린 바위는 가족의 사랑으로도 녹이지 못했고, 종교조차 들어 옮기지 못할 만큼 무거웠으며, 땅 깊숙이 박혀 있었다.
지진이나 폭풍 같은 것이 일어, 자력으로는 도저히 뒤집을 수 없었던 그의 삶의 꼴을 발랑 까발려 주었으면 그는 좀 더 멋진 남자, 남편, 아빠가 될 수 있었을까.
그는 어제 무사히 수술을 마쳤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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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인간의 나이 앞에는 인류가 살아온 모든 역사의 나이가 생략되어 있다. 이 보이지 않는 나이는 역사가 남긴 고전의 지혜를 얼마나 제 것으로 소화했느냐에 따라 주민등록상의 나이가 아닌 진짜 나이로 그의 얼굴과 언행에 묻어 나온다>
내 나이 앞에 숨겨진 나이를 어느 정도 채우고 나니오랜 시간 겹겹이 퇴적되어 온 아버지에 대한 두려움과 교육된 존경심이 저절로 사라진 것을 알아차렸다. 그리고, 정서적으로 하나로 묶여 있던 여인, 엄마의 시선이 아닌 오롯이 나 자신의 시선으로 아버지라는 역할을 맡아온 동거인을 있는 그대로 마주 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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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나를 외롭게 만드는가.
오랫동안 풀지 못한 숙제의 실마리를 나의 아버지. 그가 가지고 있을 것이라는 확신, 그리고 근본적으로 해소하지 못한 채 살아온 증오의 시간들을 완전히 청산하기 위해 나는 나의 토양인 <남자>를 공부해야만 한다.
관계의 시작인 내 부모의 것과 순탄치 않음이 밖으로의 무수한 인연들과의 이별을 초래하지 않았나.
그의 생의 종료, 우리의 이별
그것에 점점 가까워지기 시작한 오늘에서야 나는 날카로운 이빨을 거두고 대신, 그를 기록하기 위해 펜과 악기를 꺼내 들었다.
그리고 내 안 깊숙이 들어앉은 외로움과 대면하기 위해 나를 부르는 큰 울음소리를 향해 한 걸음 한 걸음 바위 안으로 우산을 쓰지 않고 비 맞으며 걸어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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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이 태어나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주기를 계절로 비유하자면 내 아비는 아마도 아주 짧은 가을을 지나 겨울에 가까워지고 있을 테다. 아비에게 가을을 맞이하는 법을 배운 적이 없는 나도 씨 뿌렸지만, 잘 돌보지 못해 사랑이란 이름으로 묶인 관계, 그리고 애썼던 모든 일들이 대단한 결실 없이 이별만 무성하다.
추수할 것 없는 가을을 반복하며 슬퍼하고 있을 때,
향기로운 귤나무는 <괜찮아, 이건 한 번의 해걸이 계절인 걸>이라고 위로해주었다.
봄의 계절이 다가오지만, 씨 뿌리는 것 자체를 머뭇거리고 낙담하고 있을 때,
사철 푸른 삼나무는 <괜찮아, 이건 겨우 한 번의 계절인 걸>이라고 다독여 주었다.
다시 고랑을 파고 씨를 뿌리고, 수로를 대고, 잡초를 뽑고, 해충을 쫓는다. 이번 가을엔 꼭 사랑하는 친구들을 집으로 초대해야지. 연어 그라브락스, 바질 패스토 파스타, 흑돼지 퀘사디아, 청귤 샐러드, 멋진 요리와 쉬라즈, 그리고 신나는 음악도 준비해야지.
올해는 꼭 추수할 것이 많은 가을을 맞이할 거야.
https://youtu.be/NBWi3WzZXJ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