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주 대신 막걸리
난 원래 막걸리를 마시지 않는다.
퇴근길 편의점에서 막걸리 세 병을 산다. 늘 나의 선택은 맥주였다. 그러나 오늘 막걸리를 집어 들었다. 그가 생각나서이다. 그는 줄곳 술이라고는 막걸리만 마셨다. 신맛과 구수함의 조화, 그리고 톡 쏘는 청량감에 마시는 거라고 했는데 난 막걸리의 맛을 즐길 수 없었다. 내 입맛엔 신맛보단 시큼함이었고, 청량감보다는 어울리지 않는 탄산이라 느껴졌기 때문이다. 대학 캠퍼스 잔디밭에서 즐겨먹던 막걸리라며 그 추억을 안주삼아 말을 해도 난 그런 추억이 없으니 이질감만 느꼈던 기억이 난다. 생각해보니 그와 나는 공통점이 없었다. 그게 문제였을까, 아니면 그것 때문에 사랑이라 확신했을까.
터벅터벅. 어두운 골목을 지나 집 앞까지 걸어 올 동안 나는 낡아빠진 나의 구두를 보며 걷는다.
'첫 만남 때도 이런 검은색 구두를 신었었지, 어울리지도 않는 하늘색 원피스에.'
사촌언니 졸업식엔 화사해야 한다고 엄마가 억지로 입혀준 원피스였다. 여전히 난 스타일에 발전이 없다.
'대신 화장은 하지 않겠다고 했어.'
한 번도 제대로 된 화장을 해본 경험이 없었다. 백수에게 화장품은 사치다. 난 예쁜 여자의 조건이 없는 사람이었다. 그렇게 립글로스만 덕지덕지 문지르고 나갔었다. 엄마는 그런 나를 못마땅해 여겼지만 아마도 대학 캠퍼스에 있던 여러 여자들 속에서 딸이 초라해 보이지 않도록 신경 써줬던 거라고 나중에서야 생각이 들었다.
문을 열고 들어서니 고고가 날 반긴다. 어느덧 고고와 산지 4년째다. 키울 생각이 없었는데 집 앞에서 밤새 우는 바람에 문 안으로 들여놓은 것이 계기가 되었다. 그 후로 고고는 절대 문 밖으로 나가지 않는다. 고양이는 스스로 집사를 간택한다고 들었다. 난 고양이에 대한 지식은 없지만 귀찮게 안 하는 걸로 고고와 서로 평화스러운 합의가 이루어졌다.
고고에게는 사료와 물을 주고, 난 막걸리에 김치를 선사한다. 조촐한 저녁이다. 티브이를 켜니 시끄러운 소리가 거실 가득 울린다. 시끄러운 소음 속에서 난 아무것도 듣지 못하고 있다. 그저 맛없는 막걸리만 꿀떡꿀떡 넘기며 김치를 손으로 집어 입에 넣는다. 아삭아삭 씹히는 식감과 고춧가루의 매콤함은 여전히 막걸리의 신맛을 없애주지는 못한다. 샤워도 하지 않은 채 자정이 될 때까지 막걸리 3병을 마셨다. 취기가 안 오르는 듯하다가 한 번에 훅 하고 정신이 아찔해지더니 그대로 옆으로 눕는다. 막걸리는 이런 맛으로 마시는 건가 싶다가 그대로 잠이 든다.
그와의 첫 만남이 있던 그날, 공대 뒤편 벤치에서 그와 전화번호를 교환했다. 그와의 진한 스킨십이 있을 거라 기대했던 나와는 달리 그는 전화번호를 물어왔고, 나는 당연히 전화번호를 그의 핸드폰에 찍어줬다. 저장을 하면서 물어오는 내 이름에 나는 작은 소리로 수줍은 듯 대답했다.
"서. 지. 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