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필휘지 글쓰기
글쓰기 강의에서 만난 분들이 종종 말합니다.
“글을 쓰려는데 도무지 속도가 안 나서 답답해요.”, “글을 어떻게 써야 할지 모르겠어요.”
글을 어떻게 써야 할까요. 저마다 쓰는 법이 다르기 때문에 다양한 글쓰기 방법과 노하우가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자신에게 맞는 방법으로 글을 쓰시라고 말씀드리지만, 추천하지 않는 글쓰기 방법이 있습니다. 바로 글을 쓰면서 앞으로 올라가고, 또 한참을 쓰다가 다시 앞으로 올라가고, 다음날 아침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서 글을 쓰는 방법. 자꾸 앞 내용을 확인하거나 검열하면서 쓰는 것만큼은 지양하는 것이 좋습니다.
글을 쓰려는데 속도가 나지 않은 이유 중 하나는 자꾸 앞으로 되돌아가기 때문입니다. 왜 자꾸 앞으로 가게 될까요.
뒤에 이어 쓸 내용이 기억나지 않아서 , 틀린 표현이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쓰면 안 되는 내용이 있지는 않은지 확인하기 위해, 내용이 샛길로 빠지지는 않았는지 확인하기 위해 등등 앞으로 돌아가는 이유는 매우 많습니다.
맞춤법이 틀리지는 않았는지, 인용문이나 예시가 틀리지는 않았는지 확인하기 위해 머무르고, 쓰면 안 되는 내용을 검열하느라 앞에 머무르고, 샛길에서 돌아오기 위해 앞에 머무르는 동안 시간은 속절없이 흐릅니다.
이런 불상사가 생기는 걸 막기 위해서 글을 쓸 때는 생각이 나는 대로 쭉 쓰는 것이 좋습니다. 글을 쓰다가 생각이 새어 주제와 전혀 상관없는 내용을 쓰고 있다고 해도 말입니다. 설령 퇴고하는 시점에 싹둑 잘라 버려질 부분이라도 떠오르는 대로 쓰시길 추천합니다. 운이 좋으면, 삭제하지 않고 다른 이야깃거리로 쓰거나 서론이나 사례 등으로 활용할 수도 있으니 말입니다.
글을 쓸 때는 쓰는 그 순간에 몰입해야 합니다. 딴생각은 접어두고 글 쓰는 행위에 집중해서 떠오르는 내용을 손이 가는 대로 쓰는 겁니다. 그렇게 쓰다 보면 선물 같은 녀석이 찾아옵니다. 바로 ‘영감(靈感)’입니다.
글 쓰는 행위에 집중하다 보면,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이야기들이 술술 써지기도 하고, 본래 머릿속에서 구상하지 않았던 어떤 이야기들이 등장하기도 합니다. 소설을 쓴다면, 글을 쓰기 전에는 생각하지 못했던 방향의 스토리가 제멋대로 써지고, 나중에 읽어보았을 때 참신한 생각이었다고 스스로 만족하는 경우도 생깁니다.
집중해서 글을 쓰는 동안 생각의 물꼬가 트여서 저도 모르게 글을 쓰는 경험을 하게 되면 꾸준히 글을 쓰는 재미를 느끼게 되고, 이 경험은 책 한 권을 완성하는 원동력이 됩니다.
쓰는 것과 퇴고하는 것은 글쓰기의 영역이지만 둘은 엄연히 다른 과정입니다. 조각가가 작품을 만들 때를 떠올려보세요. 돌덩어리에 대상을 스케치하고 깎아내는 과정을 거치고 나면, 마무리 작업을 할 때는 도구도, 작업 방법도 달라집니다. 글쓰기와 퇴고도 마찬가지입니다. 초고를 쓸 때는 초고 쓰기에 적합하게, 퇴고할 때는 퇴고하기에 적합하게 하면 됩니다.
쓰는 건 창조적인 활동인 반면 퇴고는 더 규범적입니다. 글쓰기는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하는 영역이고, 퇴고는 유(有)를 더 그럴듯하게 다듬는 과정입니다. 발휘해야 하는 능력도 다르고, 활용하는 기능도 다릅니다.
창조적인 두뇌를 사용하여 글을 쓰다가 앞으로 돌아가서 틀린 게 없는지 찾으면 어떻게 될까요. 이 문장 저 문장 고치고 드러내느라 이성적인 뇌를 사용하게 돼서 열렸던 영감의 문이 닫혀버려 영감이 찾아올 기회가 사라지게 됩니다. 글을 쓰는 동안 형성된 자연스러운 흐름이 끊긴다면 어떤 내용을 쓰려고 했는지도 기억나지 않게 됩니다. 그러니 영감을 차단하지 마시고 쓰는 행위에 집중해서 글을 쓰길 바랍니다. 글을 쓰는 동안 영감이 지유롭게 떠오를 수 있도록 충분한 시간을 내어야 합니다.
우리의 뇌는 기계처럼 빠르게 모드 전환이 되지 않습니다. 유능한 능력이 있어 바쁜 모드 전환이 가능하다면 다행이지만, 그렇지 않다면 창조적인 머리에 기름칠이 되었을 때 창조적인 뇌를 잘 사용하시길 추천드립니다.
몰입해서 쭉 써야 하는 이유가 하나 더 있습니다. 바로 효율성이 떨어지기 때문입니다. 자동차 조립하는 공장도 아닌데 효율에 대해 말하는 게 어불성설 같으시겠지만 말입니다.
문법적으로 틀린 표현을 찾아내느라, 다음에 이어질 내용을 떠올리느라 계속 앞으로 가고, 문장을 고치고 단어를 바꾸며 글을 수정하는 방식으로 글을 쓰면 불편한 점이 있습니다. 문법을 체크하느라 시간이 소비되고, 그러다 보면 하루 내내 글 한 편을 완성할 수 없게 되고, ‘나는 글을 쓰지 못하는 사람이구나’ 하는 자괴감이 들게 되면 아예 글을 쓸 수 없게 됩니다.
꾸준히, 오래 글을 쓰는 원동력은 소소한 성취감입니다. 한 편 한 편 글을 완성하며 느끼는 성취감. 그것이 반복된다면 마흔 개의 꼭지를 거뜬히 써낼 수 있습니다. 글을 쓸 때 필요한 마음가짐은 쓸 수 있다는 자신감입니다. 글 한 편 한 편 완성하면서 느끼는 소소한 성취감도 도움이 됩니다.
한때 ‘중꺽마’라는 말이 유행했습니다. 그리고 또 누군가는 말했지요. ‘중꺾그마’라고. 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마음, 중요한 건 꺾였어도 그냥 하는 마음. 둘 다 좋습니다. 글을 쓰려는 그 마음만은 절대 꺾지 마시고 가져가세요. 그냥 쓰세요.
글 쓸 때는 일필휘지(一筆揮之)하세요. 유려한 문장을 멋들어지게 쓰라는 말씀이 아닙니다. 멋지고 그럴싸한 글이 아니어도, 지금 이 순간 떠오르는 정제되지 않은 생각을 자유롭게 펼치면 되는 겁니다. 거짓 없이, 꾸밈없이 솔직하게, 지금 떠오르는 생각을 자유롭게 손 가는 대로 쓰세요. 그럴싸한 문장, 설득력 있는 문장, 논리적으로 모순이 없는 문장인지는, 비유와 예시가 적절하고 주제가 명확한 글인지는 초고를 완성한 뒤, 퇴고하면서 하시면 됩니다.
(사진 출처: Pixabay, Pexels님의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