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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경미 Dec 21. 2023

종이 위에서 펼쳐지는 화려한, 펜의 춤

퇴고, 첨(添)보다 삭(削)


초고를 쓰고 나면 원고를 수정하는 과정을 거칩니다. 바로 퇴고의 단계입니다.

퇴고(推敲). 퇴고는 당나라의 시인 가도가 시구를 지을 때 밀다(推)를 쓸 것인가, 두드리다(敲)를 쓸 것인가 고민한 것에서 유래해 지어졌습니다. 길을 가면서도 어떤 표현이 좋을지 고민하느라 맞은편에서 오는 사람을 보지 못하고 부딪혀버린 가도의 마음이 느껴지시나요?

우리는 이제, 가도가 되어 보다 적확하게 어울리는 표현을 찾기 위해 심사숙고하는 마음으로 퇴고의 단계를 넘어가면 됩니다.     


퇴고하다 보면 이따위로 초고를 써놓은 과거의 나를 소환하고 싶어집니다. 과거의 나도 나고, 지금의 나도 난데, 세포 좀 바뀌고 흰머리 몇 개 더 낫다고 글이 이렇게나 마음에 들지 않을 수 있나 하는 생각이 저절로 듭니다.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글을 퇴고한답시고 마주하고 있노라면 과거의 나를 지금으로 끌어다 앉혀놓고 도대체 무슨 의도로 이렇게 썼는지 설명 좀 해보라고 다그치고 싶어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런 상상을 한들 이뤄질 수 없으니 과거의 내가 싸놓은 무언가를 치운다는 마음으로 퇴고에 임합니다. 결자해지라고 했으니 글을 쓴 자가 책임지고 수정할 수밖에는 방법이 없는 것이지요.     




퇴고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퇴고하는 방법을 알아보기 전에 마음가짐에 관해 먼저 말씀드리겠습니다. 퇴고의 시간이 되면 한없이 겸손해집니다. 한편으로는 한없이 거만해지기도 합니다. 

우선 글이 얼마나 날아가든 개의치 않습니다. 겸손한 마음으로, 이상하거나 불필요하거나 어울리지 않는 부분은 과감히 삭제해버립니다. 위치가 적당하지 않거나 미심쩍은 부분도 별도로 표시하면서 수정 대상에 올립니다. 이런 판단을 하는 나는 일말의 아쉬움도 미련도 없습니다. 제법 ‘거만한’이라고 하기엔 좀 그렇고, 냉정하고 이성적인 사람이 되어 아니라고 판단되는 부분은 가차 없이 삭제합니다. 이 양립 불가능한 태도가 가능한 시간이 바로 퇴고의 시간입니다.     



퇴고는 ‘삭(削)’의 미학입니다. 불필요한 것을 빼내고 덜어내는 과정에서 글이 더 아름다워집니다. 물론 필요한 것을 채워넣기도 해야 하지만 말입니다. 무엇을 빼야 할까요. 


우선 주제와 상관없는 것을 덜어냅니다. 중언부언한 부분이나 반복되는 부분도 쳐냅니다. 다시 읽으며 흐름을 방해하는 부분도 삭제합니다. 글의 주제를 생각하면서 말하고자 하는 바와 상관없거나 글을 전개하는 데 불필요한 부분, 관련이 적은 부분은 미련 없이 지워야 합니다.      


글에서 불필요한 부분을 잘 지웠다면, 이제 다른 것들도 봐야 합니다.


어떤 역할도 하지 않는 단어나 문장이 있는지 다시 한번 점검해봅니다.

중복되거나 긴 문장도 삭제하고 줄여야 합니다. 그래야 의미가 정확히 통하고 글이 간결한 느낌이 나면서 이해하기도 쉽습니다.


수식어와 부사, 접속사가 많이 쓰이진 않았는지 확인하고, 의미가 통한다면 당연히 삭제합니다. 이런 것이 너무 많으면 문장이 쳐지고 호흡이 길어지기도 합니다. 명확하게 전달하기 위해 부사, 형용사, 접속사가 들어가야 할 것 같지만, 이런 것들이 없어도 독자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적당히 삭제하고 글을 간결하게 쓰는 게 글의 맛을 끌어올리고, 독자는 잘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독자를 믿고 과감히 삭제해보세요.     


글에 쉼표를 너무 많이 사용했다면 그것도 빼야 합니다. 쉼표는 휴지(休止)를 의미합니다. 쉼표가 있는 자리마다 독자는 무의식적으로 호흡을 쉬며 멈추게 되는데, 이건 독서를 방해하는 요인입니다. 그러니 쉼표를 남발하지 말길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라는 표현을 자주 쓰지는 않았는지 꼭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이 글은 내가 쓴 글이고, 앞으로 나올 책은 내가 쓴 책입니다. 특별한 상황이 아닌 이상 글의 화자가 작가라는 걸 독자는 잘 알고 있습니다. 따라서 ‘나’는 쓰지 않아도 좋습니다. 인물을 혼동할 경우가 아니라면, 있어야 의미가 통할 부분이 아니라면 ‘나’는 삭제하는 것이 좋습니다.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나는 점점 뜨거워지는 온기를 느끼며 눈을 떴다. 벌써 침대가 놓인 곳까지 햇빛이 들어오다니. 나는 평소와는 다른 아침 풍경에 놀라 시계를 찾아 고개를 두리번거렸다. 맙소사, 10시였다. 나는 깜짝 놀라 침대 밖으로 뛰어나와 부랴부랴 챙기기 시작했다. 어차피 지각인데 그냥 쉴까 하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쳤지만, 나는 오늘 중요한 회의가 있다는 사실에 어쩔 수 없이 떨어지지 않으려는 발걸음을 옮겼다.     


이 문장에서 앞에 나오는 ‘나는’을 제외하고 나머지는 모두 삭제해도 좋습니다. 행위의 주체가 변하지 않고 동일하니까요. 물론 문법적으로 틀렸기 때문에 빼라는 건 절대 아닙니다. 다만 더 매끄럽게 읽히기 위해 빼라는 것입니다. 글이 매끄럽게 술술 읽혀야 잘 쓴 글이라는 느낌을 받게 되니까요.        


  



《유혹하는 글쓰기》의 저자 스티븐 킹은 ‘퇴고=초고 –10%’라고 말했습니다. -10%라니, 이건 정말 적은 수치 아닌가요? 퇴고하다 보면 절반이 날아가고, 절반 이상이 날아가는 게 퇴고인데 말입니다. 이건 비단 스티븐 킹만의 말이 아닙니다. 어떤 소설가의 글쓰기 방법을 들은 기억이 납니다. 원고를 써놓고 없어도 되는 부분을 지우길 반복하면 정말 좋은 한 편의 소설이 완성된다고 말한 소설가가 있었습니다. 요지는 이것입니다. 불필요한 내용을 빼라!     


이제 본격적인 퇴고의 시작입니다. 퇴고할 때 의식적으로 생각하면서 말씀드린 부분을 찾아보시길 바랍니다. 다음에는 퇴고하는 방법을 들고 찾아오겠습니다.



(사진 출처: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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