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서울살이를 시작했을 때, 어딘가 허전하고 외로웠던 마음을 투박하게나마 어루만져준 곳이 있었다. ‘은★이네’라고 써진 길거리의 분식가게. 온 국민의 소울푸드라는 떡볶이와 어묵, 튀김, 순대를 제법 맛있게 그것도 싼 가격으로 파는 곳이었다.
한 번, 두 번 방문 횟수가 늘어갈수록 은★님 본인인지 은★님의 어머니인지 아직 알지 못하는 사장님께서는 나의 구매패턴을 기억할 정도로 나름의 심리적 유대감이 커지고 있었다.
아는 사람 별로 없는 낯선 대도시에서, 무엇인가로 나를 기억해주는 사람이 있다는 건 따뜻하고 감사한 일이다. 때로는 저렴한 가격에 출출함을 해소하고, 엄마의 맛있는 저녁밥이 그리울 때는 왠지 모르지만 위로를 주는 곳. 작은 분식 포장마차였지만 내게 은★이네는 그런 곳이었다.
오징어튀김과 고구마튀김을 꼭 주문하고, 튀김을 반으로 잘라 가며, 튀김을 떡볶이 소스에 버무려 먹지 않는 사람. 사장님께서 나에 대해 아는 정보는 이 정도가 전부였을 것이다. 생각해보면 그 정보란 게 그다지 유의미한 내용도 아니고, 그래서 나라는 사람을 정의하는 데에는 별 쓸모가 없어 보이지만, 모자를 푹 눌러쓰고 가도, 쫙 빼입고 가도 나를 알아보고 기억해주는 사장님의 능력과 한데 어우러져 대단한 정보인듯 둔갑하고는 했다.
나를 정의하는 데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 또 어떻겠는가. 그래도 식성을 기억한다는 건 함께 끼니를 나눴던 사이에서나 가능한 일이니까. 이런 것들로 보면 은★이네 사장님은 내게 단순히 분식집 사장님 그 이상의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한때 인기를 누렸던 한 SNS가 다시 부활한다고 했을 때, 그 공간에 저장된 옛 사진과 글을 다시 열어볼 수 있다는 사실에 한바탕 떠들썩했다. 판도라의 상자가 열리듯 몇 년 넘게 닫혀 있던 사진첩이 열리면, 누군가는 꺼내고 싶지 않았던 과거의 모습이 타의에 의해 드러나게 될 테니까. 그래서 어떤 사람은 분개했다. 꺼내고 싶지 않은, 잊어버리고 싶은 흑역사가 강제로 드러나게 된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했다.
때로는 잊고 싶은 기억이 있고, 잊히고 싶은 모습도 있다. 내 기억 속에서 그만 나가줬으면 하는 기억들, 아니면 어디 구석에 박혀서 더는 고개를 들지 않았으면 하는 기억들, 혹은 누군가의 머릿속에서도 지워지거나 떠오르지 않았으면 하는 기억들. 그것이 흑역사든, 뭐든 상관없이 어떤 기억은 그런 취급을 받는다.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라고 했다. 그래서 이미 10대, 20대의 기억은 흐릿해졌다. 10대의 기억은 이제 목소리 큰 사람이 이기는 처지가 되어 진위 여부를 확인할 수 없게 되었고, 20대의 기억도 굵직한 사건이 아니면 기억하지 못하는 신세에 이르렀다.
이미 떠나간 기억을 추모하며 그것들을 위해 살풀이를 하고픈 마음은 다행히도 없다. 잊지 않았다면 머릿속에 가득한 온갖 종류의 기억들이 시도 때도 없이 떠올라 슬프고, 기쁘고, 괴롭고, 행복하고 했을 것이다.
망각한다는 것은 과거의 슬픈 기억이 그때의 나를 괴롭혔듯 지금의 나를 괴롭히지 않는다는 것이고, 과거에 미워했던 누군가를 지금은 미워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고, 과거의 영광을 지금의 영광으로 받아들이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이 얼마나 다행인 망각의 자비란 말인가.
하나씩 기억이 사라지고, 공간을 비워주기에 오늘과 내일에 또 다른 경험을 기억하고 마음속에, 머릿속에 간직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을 사는 내게 필요한 건, 이미 커버린 내가 사는 데 도움이 되는 방법을 기억하는 것이지, 1살 무렵 엄마 젖을 먹던 방법이나 엉금엉금 기던 방법을 기억하는 것이 아니니까.
그래, 그러니 망각은 여러모로 신이 인간에게 내린 축복이 맞다.
언젠가 유난히 살이 탱글탱글한 오징어튀김을 베어먹으며, 언제라도 이곳을 떠나면 은★이네 오징어튀김이 제일 아쉬울 거라고, 가끔씩 부지불식간에 떠올라서 괴로울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요즘 은★이네 사장님이 보이질 않는다. 처음 문이 닫힌 걸 보았을 때는 쉬는 날인가 싶었고, 다음에는 휴가를 갔나 싶었고, 그 다음에는 무슨 일이 있으신가 싶었고, 그 다음에는 편찮으신가 싶었다. 한 달이 지나도, 두 달이 가까워져도 은★이네의 문은 여전히 굳게 닫혀 있다. 영업 중단의 시간이 길어지자, 나는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면 안내문 한 장이 적혀있지는 않을까 싶어 발걸음의 속도를 늦추고 굳게 닫힌 문의 이곳저곳을 살폈다.
오늘은 은★이네 문 열었어?
- 아니, 오늘도 닫혀 있었어.
영문도 모른 채 굳게 닫힌 은★이네 천막을 보며, 아직 은★이네를 잊지 못하고 기억의 한 가운데 머물러 있는 나를 마주한다. 잊는 것에는 시간이 걸리기 마련이니까. 언젠가는 그립지 않을 거라는 걸 알고 있지만, 그럼에도 잠시 신의 축복을 받길 유보하고 잊고 잊히는 과정을 조금 더 온몸으로 느끼고 있다.
설령 잊는 것보다 빨리 잊히더라도, 언젠가는 잊음으로써 신의 축복을 온전히 누릴 수 있게 된다고 하더라도 아직은 아니다. 아직은 잊을 수 없는 것들이 있다. 그곳의 냄새와 따뜻한 공기, 고소하고 매콤한 냄새, 서로 주고받던 눈빛과 따끈한 음식들이 줬던 위로들. 그 찰나의 위로를 아직 잊을 수 없다. 오며 가며 눈빛으로 나눴던 인사와 미소를 잊고 싶지 않다. 그래서 나는, 이 세상에서 기꺼이 나를 기억해주는 누군가가 있다는 건, 내가 이 세상에 존재함을 증명하는 또 하나의 방법이자 외딴 섬 같은 인생이 사실은 그렇지 않음을 깨닫게 해주는 고귀한 일이라고, 잊혀질 권리가 있다고 주장하는 이 세상에서 감히 주장한다.
‘그럼에도 기억해주는 누군가가 있다는 건 참 소중한 일이야. 어떤 기억은, 어떤 관계는 충분히 그런 대우를 받아도 되는 것들이야.’
단골이었던 가게 사장님이 어느 날 자신을 기억하며 인사를 건넨 뒤로는 그곳을 방문하기 싫어졌다는 누군가의 말을 들었다. 그는 자신을 병풍처럼, 공기처럼 있는 듯 없는 듯 대해주는 것이 오히려 편하다는 말을 덧붙였다. 그래, 그럴 수 있지. 존재의 흔적을 남기는 것이, 그것도 나도 모르게 남겨지는 흔적 같은 것들은 부담스럽기 짝이 없으니까.
하지만 이제는 그 말에 동의해줄 수가 없다. 이제야 깨닫게 되었다. 망각하고 잊히는 건, 그것은 내가 바라는 것이 아니고, 내가 해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만약 내가 당신을 기억한다는 이유만으로 단절의 이유가 되어야 한다면, 그런 관계를 받아들이지 못하겠노라 말하는 아날로그 같은 사람, 그런 사람이 바로 나다. 어떤 관계는 잊을 수 없고, 잊어서는 안 되는 것도 있다는 것을 이제야 알았다.
은★이네의 문은 왜 닫혀 있을까. 안타깝게도 사장님에 대해 아는 것이 아무것도 없어 매번 떠오르는 궁금증과 걱정을 뒤로 하며 근거 없는 위로를 덧붙였다. ‘언젠가는 분명 은★이네의 문이 열리는 날이 오겠지’라고.
생각해보면 우리의 관계는 얼마나 간단명료했던가. 살가운 안부의 말 한마디 없이 ‘안녕하세요’와 ‘많이 파세요’가 전부였던 짧고 삭막했던 내 말을 이제야 후회한다.
언젠가, 어디론가 떠날 거라고, 그러면 이곳이 생각이 날 거라며 이별을 염두에 두었던 나였지만, 아직 이렇게 찾아온 이별의 순간을 받아들일 수가 없다. 무엇보다 이유를 알 수 없는 이별이라면 더더욱.
그러나 이 이별이 끝나지 않을 것이라면, 그래서 영영 은★이네 사장님과 갓 튀겨낸 오징어튀김을 다시 만나지 못한다면, 어디 좋은 곳에서 괜찮은 점포를 만나 그곳에서 추위와 더위를 피하며 장사를 하셨으면 좋겠다. 그런 연유라면 은★이네가 앞으로 이곳에서 문을 열지 않아도 받아들일 수 있을 테니까. 앞으로 이 낯선 동네는 나 홀로 있겠지만, 나를 기억해주는 사람 한 명이 사라졌어도 말이다.
당신의 안녕을 위해서라면 어쩌면 이별은 괜찮을 수 있는 거라고 문득 용기를 내어 헛헛해진 마음을 달래는 수십여 일의 밤이 있었다.
은★이네가 문을 닫은 지 몇 개월이 지났을 때, 다행히도 은★이네가 다시 문을 열었다. 사장님을 오랜만에 다시 만났다는 사실이 반가워서, 이제 막 밥을 먹어서 배가 불렀음에도 떡볶이와 튀김과 순대를 샀다. 떡볶이만 살 수도 있었지만, 은★이네가 다시 문을 연 것이 사실인지 확인하고 싶었고, 오랫동안 보지 못해 속상했던 마음을 달래고 싶어 이것저것 고르고 또 골라 제법 두둑하게 사 들고 집으로 돌아왔다.
사장님과 나눈 눈빛, 많은 말을 나누지는 않았지만 서로 주고받은 몇 번의 끄덕거림. 음식이 담긴 봉투를 건네받으며 나눈 눈웃음. 그것들이 말해주고 있었다. 나도, 사장님도 이곳에서의 일들을 아직 잊지 않았다고. 우리에게는 아직 서로를 기억할 시간이 남았다고.
하얀 종이봉투에 담긴 따끈따끈한 튀김과 순대, 그리고 떡볶이는 오랜 시간 잊힘과 그리움에 대해 생각하며 사장님을 잊지 못했던 나에 대한 위로의 시간이기도 했다. 그동안 무사했음을 확인하는 안도의 시간이었고, 앞으로는 우리에게 아직 서로를 조금 더 기억할 시간이 남았음을 확인하는 증거물이기도 했다.
내 머릿속엔 아직은 잊을 수 없고, 쉽게 잊어버릴 수 없는 어떤 기억들이 아직 나를 이루고 있다. 나는 오늘도 그렇게 살아가고 있다.
Q. 당신이 기다리는 존재, 그리워하는 존재에 대한 추억을 떠올려 보세요. 하지 못했던 이야기를 꺼내 기억을 매듭지어 보세요.
(사진 출처: 픽사베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