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대추차, 건강한 온기를 선물하고 싶었어요

(feat. 대추차 레시피)

by 임경미


바람이 제법 차가워지는 계절엔 목덜미를 데워줄 옷깃을 찾고, 온기가 필요한 날엔 따뜻한 무언가를 찾게 된다.

군밤, 군고구마, 어묵 국물, 손을 녹여줄 따뜻한 손과 포근한 품 같은 것들.

이미 온기를 가진 것들은 몸이 춥거나 마음이 얼어붙었을 때 기꺼이 온기를 나눠주며 부드러워지길, 따뜻해지길 바란다.


그해 초봄은 유난히 추웠고, 서둘러 찾아오지 않는 온기를 기다리곤 했다. 그래서일까. 따뜻하게 몸을 데워주고 마음을 녹여줄 무언가가 줄곧 기다려지는 시간이었다.

무더위와 비의 맞교대 속에서 드디어 막을 내리는 여름의 끝자락에서, 그리고 가을이 짙어지는 계절인 요즘, 쌀쌀함과 긴 소매의 옷이 어색하지 않은 요즘 같은 날엔 유난히 엄마표 대추차가 그립다.


추운 계절에도 감기에 걸리지 않게 해준 엄마표 대추차.

유명하다는 대추차 맛집을 서너 곳 돌아다니고 난 뒤에야 비로소 엄마표 대추차가 얼마나 진국이었는지 알게 된 대추차.

대추와 생강만으로 온갖 한약재를 넣고 만든 대추차를 무릎 꿇게 만든 엄마표 대추차.

무엇보다 따뜻한 온기로 몸을 녹여주고, 달콤한 따뜻함으로 마음도 녹여준 엄마표 대추차.




올해 가을엔 일찌감치 그 맛과 온기가 그리워져서 엄마표 대추차가 마시고 싶다고, 서울은 비싸기만 하지 맛은 밍밍하다며 엄마표 대추차를 추어올린 뒤(그러나 진실이라는 사실!), 대추는 준비하고 곁에서 손도 보탤 테니 만들어달라고 말씀을 드렸는데, 등산하다가 넘어져 뼈를 다쳤다는데 어쩌냐 하는 말씀을 듣고 결심했다.

‘엄마표 대추차를 전수받아야 할 시간이 왔구나!’


언젠가 마음먹은 적이 있었다.

결국 사라지고 말 것들을 소중히 하자고.

사라지기 전에 남겨놓을 수 있는 것들은 남겨두자고.

시간이 훨씬 흐른 언젠가 문득문득 떠오를 것들, 그리고 그리워질 것들.


그런 것들의 개수가 점점 늘어나는 게 나이를 먹는 것이고, 인생을 더 오래 산 사람이 되는 것이라면, 그래서 그리워지는 것과 자꾸 생각나는 것들이 떠오를 기회를 줄이는 게 잘사는 방법 중 하나라면, 그렇다면 그 흘러가는 시간의 일부를 잡고, 기억할 무언가를 모아야 한다.

그리고 마음은 행동으로 나아간다. 그렇게 지난 주말, ‘전수받는 것’ 1번에 ‘엄마표 대추차’를 올려놓고, 겁 없이 대추차 만들기에 도전했더랬다.


우왕좌왕하고, 어지럽히고, 대추 씨앗은 몇 개, 대추 껍질은 더 많이 빠뜨리며 완성한 대추차였지만, 그 맛은 엄마표 대추차와 얼추 비슷해서 제법 만족스러운 결과물을 가지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지금, 엄마표 대추차가 아닌, 엄마 감독표 대추차이자 두 자매표 대추차를 컵에 한가득 부어놓고, 대추 향을 음미하며, 달콤함을 만끽하며, 서늘함이 해소되길 갈망하며 홀짝홀짝 대추차를 마시고 있다.


언젠가 온기가 필요한 날, 엄마표 대추차가 그리워지는 날, 누군가를 따뜻하게 위로해주고 싶은 날, 감기 따윈 걱정없이 한겨울을 무사히 넘기길 바라는 날, 그런 날엔 어머니께 직접 배운 대추차를, 손수 만들어 마실 테다.


자꾸 그립고 줄곧 생각나서, 온기라는 것은 항상 필요해서, 앞으로 매년 서늘함을 넘어선 추위가 득실거리는 계절엔 대추를 푹 고우며, 집안에 달콤한 대추 냄새를 가득 채우게 되겠지.


어머니께서 매년 그러셨듯, 맛있게 마시는 동안 건강해지고, 따뜻해질 누군가를 떠올리며.

그렇게 만들어진 대추차를 한 병 한 병 정성스럽게 담아 당신에게 건네며, 몸이 추워도, 마음이 얼어붙어도 추위에 지지 않기를, 얼어붙지 않기를 바라며 대추 한 알 한 알을 정성껏 씻고 인내심 있게 곤 뒤 갈아 다시 한번 끓이기를 반복하면서. 그렇게 추억 같은, 바람 같은, 사랑 같은 달콤한 것들이 담뿍 담긴 대추차는 완성될 것이다.


그리고 또!

언젠가 그리워질 무언가를 놓치지 않기 위해 엄마표, 남편표, 당신표 무언가를 기억해야지.







[엄마표 대추차 레시피 기억하기]


1. 잘 마른 대추를 물에 깨끗이 씻는다.

(대추가 달콤한 게 중요! 어머니께서는 보은 대추를 선호하심.)

2. 대추와 생강을 압력솥에 넣고, 대추가 물에 잠길 정도로 물을 넣은 뒤 푹 곤다.

(압력솥의 물이 끓기 시작하면 30~40분 정도 끓인다.)

3. 잘 익은 대추(익다 못해 약간 퍼진)를 식혀두었다가 채반에 조금씩 덜어 대추의 살만 걸러 받는다.

(채반에 거를 때 물을 부어주면서 하면 대추 살이 쉽게 모아짐.)

4. 채반에 대추 껍질과 씨만 남을 때까지 잘 걸렀다면 다시 끓인다.

(끓이기 전 너무 되직할 경우 물을 추가한다. 농도를 기호에 맞춰 조절.)

5. 간을 보고 팔팔 끓여 주면 완성!

(아무것도 넣지 않고 대추 고유의 단맛만 느끼고 싶으면 이대로 끝!

대추가 달면 설탕은 넣지 않아도 되며, 대추가 달지 않으면 설탕을 넣어야 될 수 있음.

소금을 약간 넣으면 단맛이 강해짐.)

6. 따뜻하게, 혹은 냉장고에 넣어뒀다가 차갑게 마셔도 좋은 대추차! 대추 슬라이스나 잣을 띄워 맛있게 마시면 온기도, 영양도, 사랑도 충전 완료!


※ 방부제가 들어가지 않은 수제 대추차이므로 만든 지 2주 이내에 다 마시라고 어머니께서 당부하셨음.

keyword
이전 06화굴무침, 그리움을 미리 채우는 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