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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열음 Mar 11. 2024

너머에 있는

보이지 않는 것을 보게 하시고 영원한 나라를 바라게 해주세요. 이따금씩 하게 되는 기도이다. 현실이 팍팍할 때, 그 너머에 있는 진짜를 바라보지 못할 때- 생각했다. 나의 숲은 그 너머에 있다고.


멀리 있는 천국을 바라보며 초라한 현실을 견디라는 말이 아니다. 그저 작은 힘으로 아등바등하다가 힘을 탁 푸는 것이다. 나를 통해, 이 상황을 통해 이루시려는 하나님의 뜻을 묻는 것이다.



예배 후 모임에서 아직 믿지 않는 오빠가 물었다. 하나님은 선악과를 애초에 왜 만든 거냐고. 그냥 모두가 행복한 삶을 살면 되는 거잖아. 왜 불행의 초석을 깔아두신 거야. 사실 하나님은 나를 에덴 동산에 두실 수도 있었다.


대신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를 지으시면서 불행도 죄도 없는 완벽한 세계를 그들에게 맡기셨다. 너희가 친히 경작하고 돌보라고 말씀하시면서. 그러나 단 하나, 선악과만은 먹지 말라. 그것을 먹으면 반드시 죽는다.


우리의 첫 조상은 기어코 그 열매를 따먹었고 우리는 죄의 속성을 물려 받는다. 부당한가. 아니, 애초에 그것이 인간의 본성이다. 누군가의 기쁨으로 인해 조금은 불행해하고, 누군가의 불행으로 인해 조금은 기뻐하는 자들. 보이지 않는 곳에서는 온갖 크고 작은 악행을 저지르는 자들.


선악과를 통해 우리의 죄가 입증되었을 뿐, 그것이 원인은 아니다. 우리의 죄로 인해, 어쩌면 죄를 통해 '구원'이라는 장치가 생겼다.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죽으셨고, 하나님은 여전히 우리를 사랑하신다. 죄인이 아니었다면, 그러니까 에덴 동산에서 뛰어놀고 있었다면 당연했을 사랑이 이제는 간절히 필요하다. 


그 사랑 없이는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임을 알기 때문이다.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려고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여호와라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레위기 11장 45절]



우리가 가장 연약할 때 하나님은 우리의 하나님이 되신다. 삶의 고난들을 통과하게 하시는 이유도 그렇다. 애초에 힘든 일이 없다면 당연히 좋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온몸으로 느끼지는 못할 것이다. 그런 순간이 있다. 내가 뭘 하려고 하기도 전에 이미 하나님이 이루시는 것을 바라만 보는 순간. 잔뜩 설렌다.


새롭게 일을 시작하면서 앞으로의 근무 형태를 결정 짓는 중요한 시기를 보냈다. 처음에는 어느 쪽이 되든 괜찮다고 생각했다. 그러면서도 점점 원하는 구석이 생겼다. 혼자서도 살아보고 싶고, 일에 집중하고도 싶고... 그러나 어쩐지 반대쪽 방향으로 일이 전개된다는 느낌을 받았다. 조금 고민하다가 힘을 풀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잊었다. 하던 만큼 기도만 했다. 우선 일이나 하기로 했다. 그러려고 간 거니까. 며칠 뒤에 대표님과 면담을 했더니 생각지도 못할 만큼 최선의 답변이 나왔다. 내가 원한 것 이상을 충족시키는 결정이었다. 만둣국을 먹다 몹시 놀랐다. 역시 하나님은 하나님이다. 그냥 알아서 하시는구나... (쩝쩝...)


매일, 새로운 고민은 매일 생겨난다. 관계가 괜찮아지면 일이 문제고, 그 다음엔 건강이 문제고, 어쩌다 사역에서 고비를 넘고. 매일 넘어야 할 산이 있다. 그러나 여전히 나무만 본다. 산을 만드신 분께 묻지 않고 얼마나 빨리 걸어야 할지만 생각한다. 어떻게 해야 돌부리에 넘어지지 않을지 고민한다. 내가 선 땅이 어디든 눈만 들면 된다.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보여달라고, 간청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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