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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안 Aug 16. 2021

도서관 빌런 총출동



한적한 동네
날씨 좋은 날 바닷가



우리 동네에서 한 시간 반 동안 차를 타고 작은 시골 마을에 왔다. 3만 명의 적은 인구수를 보유한 이곳은 한국 읍내와 얼추 비슷한 느낌이다. 날씨가 좋았으면 예쁘기로 유명한 바닷가를 따라 거닐며 시간을 보냈을 텐데 아직까지 겨울 냄새가 물씬 나는 바람이 불어서 아쉬웠다. 마을에 딱 하나 있는 도서관에 들렀다. 지금까지 뉴질랜드에서 보았던 도서관 중에 가장 세련되었다. 내부 역시 아이들의 흔적으로 장식을 가

득해놨고 책들도 보기 쉽게 정리되어있었다. 평일 오전이었는데도 의외로 안에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가만 보니 워낙 작은 크기라 그런지 몇 없는 사람 숫자에도 금방 꽉 차 보이는 게 사실이었다.



도서관 외관



자동문을 통해 들어오면 바로 보이는 데스크에서 오른쪽으로 지나오면 작은 공용 공간이 보인다. 거기에는 주황색과 초록색의 소파들이 도서관 이용자들이 앉았다 간 모습 그대로 제각각 놓여있다. 그 뒤로 책꽂이들이 줄지어 서있고 도서관 가장 안 쪽에는 독서실처럼 공부할 수 있는 책상들이 한 줄로 배치되어있다. 때로는 널찍한 곳에 가서 마음에 드는 책 한 권과 자리 하나를 찾는데 한참 걸리는 것보다 크기가 작은 만큼 선택의 여지가 얼마 없는 곳이 편리하기도 하다. 더군다나 오늘은 타 도서관에서 빌린 책을 마저 읽을 계획이라 푹신한 소파 자리 하나면 만족스러운 여가 시간이 될 것만 같았다. 평화로운 계획과 달리 도서관이라는 공간에서 빌런을 마주할 거라곤 생각조차 하지 않은 게 당연했다



책 읽는 메인 공간
공부하기 편한 공간, 단 6석




1. 냄새 폭격

초록색과 주황색 중 쿠션이 더 깨끗해 보이는 소파에 앉았다. 맞은편 소파에는 머리에 큰 장미꽃 핀을 꽂은 할머니께서 먼저 앉아계셨다. 그 옆에 놓인 빈 소파는 다른 사람이 와서 금방 차지했다. 그의 등장과 동시에 공기의 흐름이 바뀌었다. 과장 아니냐며 야유받을지언정 따뜻했던 공기가 차마 표현하지 못할 심각한 공기로 뒤바뀌는 건 순식간이었다. “암내”라고 혹시 다들 알까? 단어부터 불쾌한 뉘앙스가 풀풀 넘치는 암내는 실제로 맡아보면 정신이 혼미해진다. 과장이 아니다. 맡아본 사람은 반드시 아는 냄새가 있다. 어마 무시한 이 냄새는 뉴질랜드에서 밖에 나가면 하루에 한 번씩 훅치고 들어와 강제로 맡아진다. 코 끝이 매워지는 느낌을 받는데 차라리 마비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 사람이 앉자마자 차마 바로 자리를 옮기기는 그렇고 땅바닥을 보면서 타이밍을 재고 있다가 살짝 고개를 들었더니 맞은 편의 할머니는 진작 코를 막고 계셨다. 정신을 찌르는 냄새에도 눈치 보며 방어하지 못한 나와 다른 할머니의 단호함이 부러워졌다. 삼 분은 지나갔을까, 냄새로 지배당한 지 얼마 되지 않은 그 짧은 시간에 코를 막고 계시던 할머니는 자리까지 옮기셨다. 냄새로 모세의 기적을 만들어내는 이 부류는 과연 오늘의 빌런이라고 할 수 있을 만큼 강력했다.



2. 목소리 자랑

조용히 집중을 하려던 찰나, 온 신경이 너무 한데 모여 환청이 들리는지 착각이 들었다. 그게 아니라면 뒤통수에 대고 누가 말을 거는 줄 알았다. 범인은 내 뒤에서 여기가 도서관인지 시장터인지 구분하기 어렵도록 큰 소리로 통화하던 사람이었다. 이어폰이 가방 속에 들어있기를 바라며 뒤적였다. 언제였는지 비상용으로 하나 챙겨놨던 이어폰이 있어서 다행이라 생각하고 얼른 귀에 꼈다. 그러자 노래를 듣는 건 나인데 누군가 허밍을 하는 소리가 동시에 들려왔다. 이번에는 바로 옆 자리에 앉은 사람이었다. 성능 좋은 헤드셋을 끼고 있어서 그런지 본인 목소리가 얼마나 크게 새어 나오는지 모르는 당당함이었다. 다 같이 사용하는 공공장소에서 후각에 이어 청각까지 고통받아야 하는 애석한 시간이었다. 혹시 이 사람들, 나만 모르는 또 다른 도서관 문화가 있기라도 한 건 아닐까 의문이 들기까지 했다.    



3. 생리현상의 참을 수 없는 가벼움

우리 신체는 가끔 부끄러운 돌발행동을 일으키곤 한다. 트림이나 방귀, 재채기는 생리현상으로 당연히 금지할 수 없다. 하지만 적어도 공공장소에서는 그 소리를 조금은 낮추는 성의를 보이는 일도 당연한 게 아닐까? 탄산 없이 그렇게 큰 트림 소리를 들어본 건 이 날이 처음이었다. ‘끄억-‘ 시간이 지나도 선명히 기억하는 이유는 듣고 싶지 않은 남의 생리현상 소음이 한 명으로 그치지 않아서였다. 트림 대결이라도 자기들끼리 주고받는지 엄청난 소리와 횟수를 선보였다. 그들의 생리현상은 이어폰 속 노래 소리를 무자비하게 뚫고 들어왔다. ‘푸우웅~푸우우우웅~’ 게다가 10초 이상 지속되는 방귀소리까지! 여기가 자기 집 안방이 아니면 어디라는 말인가. 미처 막지 못한 생리현상을 대변해 줄 사소한 습관이 여기서는 마치 나만 알고 있는 쓸데없이 진지한 매너 같았다. 정말 다행이었던 점은 그들과 나의 거리는 조금 멀리 떨어져 있었다는 것이다.



4. 혼자 사냐며 치근덕거리던 아저씨

도서관에 들어올 때부터 살짝 부담스럽게 쳐다보던 아저씨가 있었다. 조용한 적막을 뚫고 굳이 큰 소리로 인사를 건네길래 짧은 인사말로 받아치고 그 자리를 지나왔다. 독서실 책상처럼 일렬로 놓여있는 자리 중에 콘센트가 있는 곳에 가서 앉았다. 열심히 핸드폰을 하고 있는데 등 뒤에서 기척이 느껴져 돌아보니 아까 그 아저씨였다. 빈자리도 많은데 굳이 내가 가방을 올려둔 자리에 앉겠다고 해서 가방을 치워줬다. 예상한 시나리오대로 아예 내 쪽으로 몸을 돌려 말을 걸어왔다. 무시하는 태도로 일관하던 중에 어디서 왔냐고 묻는 말에 사우스 코리아에서 왔다니까 그게 어디냐고 되물어왔다. 실제로 한국이 어딘지 모르는 외국인을 만나니까 나도 당황스럽기는 마찬가지였다. 뉴질랜드에서 12시간 걸린다고 알려주고 말았다. 결정적으로 혼자 사냐고 묻길래 남편이랑 산다고 말하니 잠깐 당황하는 듯 보였다. 다행히 남편이 도서관에 막 도착해서 일방적인 대화는 더 이상 진전되지 않았다. 남편이 오자 상황에 맞지 않는 게임 얘기를 하더니 금방 자리를 떴다. 질문의 수준을 보아 혼자 사는 아시안인 줄 알고 접근을 해온 게 분명하다. 여기나 저기나 혼자로 보이는 여성에게 무례하게 말을 걸고 불편한 기색을 내비쳐도 물러서지 않는 사람들은 자기 자신을 좀 알아야 한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이 아저씨가 오늘의 빌런 왕관을 수여받아야 한다. 남편이 오지 않았다면 어떻게 상황이 대치되었을지 상상하기도 싫은 지독한 부류다.     




보통의 날과 다름없이 도서관에 가서 책을 읽으려던 시간은 거기 머물던 다른 사람들로부터 방해받다가 끝이 났다. 꼭 오늘이 아니더라도 남들에게 민폐를 끼치는 사람은 어디를 가나 항상 있기 마련이다. 도서관 출입구를 오갈 때마다 엠뷸런스만큼 소리가 큰 센서를 가뜩이나 작은 도서관에 울려 퍼지게 만든 장본인이었던 내가 도서관 빌런으로 또 한 명의 후보였을지도 모른다. 흔히 “내로남불”이라고 하던가? 내가 하면 별 거 아닌 일에도 정작 당할 때만큼은 사소한 행동이 큰 민폐로 쉽게 다가온다. 공공장소뿐 만 아니라 어디서든 최소한 타인에게 피해는 주지 않는 조용한 타인이 되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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