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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매그넘 Sep 30. 2022

진동벨이 없는 스타벅스

서울시 중구 을지로의 어느 스타벅스, 오후 12시 30분 경.


‘OOO 고객님, 주문하신 음료 나왔습니다!’

‘A-47번 고객님, 주문하신 라떼 나왔습니다!!’


이미 목이 쉰 직원의 목소리가 떠들썩한 매장 내 울려 퍼진다. 아르바이트생은 콜록거리다가 다시 목청 높여서 주문한 사람을 부르고, 한켠에서 수다 떨던 여자들은 ‘어머, 우리 거 나왔네?’라는 말과 함께 종종 걸음으로 다가가 음료를 받아 간다.


우리나라에는 이미 많은 커피 전문 매장이 생겼지만 진동벨을 쓰지 않는다는 똥고집을 고수하는 곳은 스타벅스밖에 없는 듯 하다. 구글을 검색해 보니 스타벅스의 최고 경영자 하워드 슐츠는 예전에 이탈리아에서 손님들 이름 부르며 소통하는 모습이 좋아서 그 방식을 고수한다고 한다.



이건 뭐 병신도 아니고..


이런 장면을 상상해 봤다. 이탈리아의 작은 동네 카페가 있고, 카페 사장은 그 집의 단골들의 이름을 안다. ‘본 죠~르노, 시뇨리나 마리아!’, ‘챠오, 로베르토! 꼬메 스따이?’ 이런 대화를 나누며 커피를 건네는 모습이 좋아 보였을 수 있다. 슐츠는 낯선 환경에서 보는 정겨운 장면에 순간적으로 심취되어 그것을 그대로 가져와서 대형 커피 매장에 적용하고 싶은 욕심이 발동된 것이 아닐까 한다.


옷도 때와 장소와 행사에 맞춰서 입어야 한다면, 경영 방법도 때와 장소와 문화에 맞춰야 한다는 것을 왜 생각하지 못했는지 나는 도무지 이해를 할 수가 없다. 그것도 최고 경영자라는 인간이.


사람들의 이름 불러주면서 커피를 소통의 매개체로 사용하는 건 소형 매장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유동인구가 많고 붐비는 대형 커피 전문점에서 고객들의 이름을 목청껏 부르는 건 비효율의 극치다. 아르바이트생 목도 상하고, 고객은 자리도 맡지 못하고 자기 이름 부를 때를 대비해서 픽업대 근처를 맴돌게 되고, 특히 사람들이 몰리는 시간에는 그 틈새를 비집고 다니기도 여간 불편한 게 아니다.


사이렌 오더를 이용할 수도 있지 않느냐라고 반박할 수 있지만 사이렌 오더를 쓰지 않는 사람들도 많다. 사람들의 이름을 부르며 소통한다는 말은 대한민국 매장에서는 해당되지 않는다. A-58, B-25번 등 영수증의 번호로 누군가를 부르는 건 마치 AI 로봇을 부르는 것처럼 들릴 때도 있다.


사람들이 스타벅스를 가는 이유는 직원과 소통하기 위해 가는 게 아니라 단지 커피를 마시고, 여름에는 시원한 에어컨 바람을 쐬고, 컴퓨터를 사용하고, 나름 자기만의 시간을 갖기 위해서 간다는 것을 모르지 않을 텐데, 진동벨을 쓰지 않는 입장을 고수하는 스타벅스의 아집은 도대체 뭔지.. 네거티브 마케팅인가, 아니면 ‘어쨌든 그렇대도 너흰 스타벅스를 이용할 수 밖에 없어’라는 마인드인가?


스타벅스에 갈 때 마다 목이 쉬어 있는 젊은이들을 보는 것이 안쓰러워 웬만하면 다른 커피샵을 이용하고 있지만, 잊을만하면 들어오는 스타벅스 기프티콘들을 쓰기 위해 그곳을 영원히 안 갈 수는 없을 듯 하다.


입안에 남겨진 커피가 오늘따라 유난히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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