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덧 처음 병원을 찾은 지 3년이 지났다. 올해 여름을 조증과 함께 떠나보내고 겨울만큼 성큼 우울 에피소드가 찾아왔다. 다시 시작된 과수면과 무기력의 늪에서 어찌할 바를 모르며 지내고 있는 지금, 기운을 짜내 책을 읽고 몇 마디 글을 쓴다. 운동도 못하고 학원은 못 가도 빨래를 하고 레오 밥을 챙기고 화장실을 치운다. 그런다 해도 크게 달라지는 것은 없다.
함께사는 고양이 레오.
우울증과 함께 지내며 나름 터득한 삶의 방법이 있다. 이른바 '일단 하자' 마인드다. 우울 삽화에 접어들면 으레 씻는 것, 밥 먹는 것, 그리고 그 밖의 모든 일이 귀찮아진다. 양 팔다리는 젖은 솜이불마냥 축축 늘어지고 아픈데 없이도 어딘가 아파온다.
한 SNS에서 우울은 수용성이라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씻고 싶지 않은 몸을 일으켜 일단 씻고 나면 우울한 감정이 조금은 사그라든다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 이야기를 하려는 게 아니다. 우울해서 머리 감는 일조차 벅찰 때 나는 '일단 한다'. 3일쯤 안 감은 머리로 일단 집을 나선다. 나가서 우유라도 사 온다. 혹은 병원을 간다. 그것도 어려울 땐 집 앞에 나가 바람이라도 쐰다. 우울이 수용성인지는 모르겠으나 무기력할 때는 몸을 물로 씻어낼 여력조차 생기 지않는 일이 다반사이기 때문이다.
혹자는 씻을 힘도 없는데 어찌 나가냐고 질문해올 수도 있겠다. '일단 하자'에서 중요한 것은 무엇이든 일단 하는 것이다. 밀린 설거지도 좋고 고양이의 간식을 챙겨주는 일도 좋다. 씻을 힘이 남아 있다면 따뜻한 물에 몸이 녹이는 것은 더할 나위 없이 좋다. 우리는 우리를 덮쳐오는 젖은 솜이불을 떨쳐내 볼 필요가 있다. 하루에 한 번, 단 한순간만이라도.
이도 저도 안될 때는 자신만의 안식처를 찾는 것도 한 방법이다. 나에게는 짧은 글이 실린 시집이나 에세이집을 읽는 일, 가까운 곳으로 떠나는 여행이 그것이다. 기껏 지하철을 타고 다다른 강변역 일대를 맴돌며 버스 시간만 확인하는 우유부단함 속에서도 '일단 한다'는 힘을 발휘한다. 일단 티켓을 끊는다. 그다음부터는 좀 더 쉽다. 시간에 맞춰 일단 차에 탄다. 그렇게 몸을 싣고 있다 보면 어영부영 여행지에 도착하고 어쨌거나 일단, 어디론가 발을 옮기게 되는 것이다.
강릉의 강문해변.
도저히 몸을 일으킬 기운이 없을 땐 더 작은 곳에서 시작한다. 일단 몸을 일으킨다. 고양이를 핑계 삼아 일단 엉덩이를 들고일어나 본다. 그다음은 손이 닿는 대로다. 종일 굶은 빈속에 달콤한 과자를 집어넣기도 하고 괜스레 거울을 보기도 한다. 그러다 내키면 환기도 해보고 도로 누워 배달 어플을 뒤적이기도 한다. 그렇게 하루가 가더라도 크게 달라지는 것은 없다.
'일단 한다'에서 중요한 것은 바로 이점이다. 우리가 무엇을 하든 세계는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때로 가만히 누워 우울에 젖어 있어도 이 세계는 아무 일도 없다는 듯 굴러간다. 하루, 이틀, 혹은 일주일쯤 누워있어도 마찬가지다. 그러니 일단 숨을 내쉬어 보자. 일단, 해보자. 스스로를 몰아세우지 않고도 발을 내딛는 연습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