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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뚜벅뚜벅 Sep 03. 2021

이집트 수수께끼의 문자를 풀다

소년 샹폴리옹 이야기

이집트에 대한 관심은 세대를 불문하고 꽤 뜨겁다. 쿠푸, 투탕카멘, 람세스 2세 같은 파라오들의 이름도 익숙하다. 그런데 불과 200년 전만 해도 우리는 이집트의 많은 유물을 보면서 누가 왜 만들었는지 전혀 알 수 없었다. 하도 오랜 세월이 지나서이기도 했지만 그것만으론 좀 설명이 부족하다. 왜냐하면 이집트는 선사 시대가 아닌 역사의 시대였기 때문이다. 기록이 전승된 시대란 얘기다.


정확하게 얘기하면 이집트에선 기원전 3000년 경 고대 문자가 출현했다. 대략 고왕조, 피라미드 시대부터 이집트는 역사의 단계로 돌입했다고 보면 된다. 신전과 오벨리스크엔 또렷하게 히에로글리프 Hie'roglyphes가 각인돼있었다. 처음 글자가 만들어진 이유는 당연히 종교적 맥락이었다 . 제례의식이나 신념 체계의 표현에 쓰인 것이다. 히에로글리프란 말 자체가 '신성한 조각'이란 그리스어다.

이 히에로글리프는 필기체까지 있어서 일상에서도 사용되던 문자다. 이런 고대 이집트 상형문자는 당연히 이집트의 비밀을 푸는 열쇠였다.


문제는, 불과 200년 전까지 아무도 해독할 수 없었다는 점이다. 까막눈도 그런 까막눈이 없었다. 왜 그랬을까? 바로, 고대 이집트 제국이 몰락했기 때문이었다. 로마 제국이 융성해진 상황에서 대부분은 라틴어를 썼고 히에로글리프 사용은 전혀 이뤄지지 않았다. 그래서 문자가 사실상 사라진 것이다. 그 후 고고학자들이 발견해도 읽을 수 있는 사람이 전혀 없었던 이유다.

Temple of Hathor, Dendera

그리고, 1822년 프랑스의 고고학자 샹폴리옹은 이 상형문자의 비밀을 발견한다.


출발은 로제타석의 발견이었다. 1798년 시작된 나폴레옹 이집트 원정 과정에서 로제타석이 발견된 이야기는 이미 잘 알려진 이야기니 간단하게 사실관계만 확인해두자. 1799년 나일 삼각주에 위치한 라시드 Rashid에서 군사 요새를 만들던 피에르 부샤르 대위가 이 로제타석을 발견했다. 참고로 라시드에서 발견했으니 라시드석이라 하는 게 맞지만, 아랍어에 무지했던 유럽인들은 라시드를 ‘로제타’라고 잘못 읽었다. 참고로 프랑스가 약탈한 로제타석은 나폴레옹이 영국과의 전투에 패한 후 다시 영국에 뺏겼고 지금은 대영박물관에 소장 중이다.


높이 1.2m, 너비 75cm, 두께 28cm의 돌덩어리가 고대 이집트어의 비밀을 푸는 열쇠가 된 이유는 뭘까?

로제타석 Rosetta Stone

로제타석에 새겨진 내용은 프톨레마이오스 5세의 법령과 왕의 통치 기간 동안 나일강의 범람에 대한 기록이다. 그런데 고대 이집트인들은 상당히 민주적이었다. 같은 내용을 세 가지 언어로 적었다. 바로 고대 이집트 성각문자(Sacred carving), 필기체 즉 이집트 민중 문자, 그리스어다. 이 중 그리스어가 해독의 결정적 열쇠가 됐다. 고대 그리스어를 아는 이는 많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단순 비교를 통해 이집트 성각문자의 비밀이 드러난 건 아니다.

Temple of Edfu

사람들은 오랫동안 이집트 성각문자를 한자와 같은 표의문자로 해석해왔는데 이게 함정이었다. 왜 그랬을까 찾아보니 기원 후 4세기에 이집트 상형문자를 연구한 호라폴로가 이집트 문자를 표의문자로 해독했고 그 이후 정설처럼 굳어진 해석법이었다. '굽이치는 세 개의 선'은 당연히 물을 뜻하고 '깃발'은 신을 뜻한다고 해석하는 방식이다. 상당히 그럴싸한 해석이다. 당연히 1300여 년 동안 정설로 굳어져 온 견해이기도 했다. 기원후였긴 하지만 그나마 고대 이집트와 가까운 시대를 살았던 사람이 표의문자라고 주장하는데 감히 누가 이견을 달 수 있었을까? 하지만 오늘의 주인공, 샹폴리옹의 생각은 달랐다.

Temple of Hathor, Dendera

도저히 풀리지 않는 비밀을 앞에 두고 그는 생각을 바꿨다. 표음문자가 섞여있다고 본 것이다. 천재적인 직관이었다. 그리고 로제타 스톤의 내용이  왕에 대한 칭송이니 분명 프톨레마이오스란 이름이 나올 거라고 추정했다. 게다가 왕의 이름이니 뭔가 강조 표시가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래서 긴 타원형으로 강조된 부분이 프톨레마이오스라고 적힌 부분이 아닐까 가설을 세우고 연구를 시작했다.

람세스 Ramesses IV 묘의 성각문자

그러던 중 신전의 상형문자 연구를 통해 이번엔 클레오파트라의 이름에 대한 성각문자를 발견하게 됐다. 열쇠가 된 알파벳은 프톨레마이오스와 클레오파트라, 두 단어의 공통 글자 네 글자였다. P L T O. 상형문자엔 또렷하게 공통 글자가 쓰여 있었다. 이 순간은 샹폴리옹이 이집트 성각문자의 비밀 해독에 확신을 갖는 때이기도 했다. 이집트의 상형문자는 표음문자와 표의문자가 섞여있었고, 그래서 해독에 오랜 시간이 걸렸던 것이다.


샹폴리옹은 그 후 아부심벨의 탁본 사본을 입수해 분석했다. 역시 파라오의 이름이 적혀있었다. 샹폴리옹은 스스로 발견한 해독법에 따라 파라오의 이름을 읽어나갔다. 파라오의 이름이 최초로 발음되는 순간이었다. 람세스.

아부심벨 신전 Abu Simbel
람세스3 신전 Medinet Habu

그 후 샹폴리옹이 관련 논문을 발표한 1822년은 히에로글리프 해독의 해라고도 불린다. 소년 샹폴리옹이 이집트 문자 해독의 꿈을 꾼 지 21년 만의 일이었다.


샹폴리옹이 어렸을 때 이집트 문자를 보고 뜻을 물었을 때 주변의 답은 '아무도 모른다'였다. 읽을 수 없는 언어에 매료된 한 소년은 고고학자가 됐고 인생을 바쳐 연구를 했다. 덕분에 고대 문명은 그저 돌무더기나 수수께끼의 문자가 아닌 찬란한 역사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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