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 샹폴리옹 이야기
이집트에 대한 관심은 세대를 불문하고 꽤 뜨겁다. 쿠푸, 투탕카멘, 람세스 2세 같은 파라오들의 이름도 익숙하다. 그런데 불과 200년 전만 해도 우리는 이집트의 많은 유물을 보면서 누가 왜 만들었는지 전혀 알 수 없었다. 하도 오랜 세월이 지나서이기도 했지만 그것만으론 좀 설명이 부족하다. 왜냐하면 이집트는 선사 시대가 아닌 역사의 시대였기 때문이다. 기록이 전승된 시대란 얘기다.
정확하게 얘기하면 이집트에선 기원전 3000년 경 고대 문자가 출현했다. 대략 고왕조, 피라미드 시대부터 이집트는 역사의 단계로 돌입했다고 보면 된다. 신전과 오벨리스크엔 또렷하게 히에로글리프 Hie'roglyphes가 각인돼있었다. 처음 글자가 만들어진 이유는 당연히 종교적 맥락이었다 . 제례의식이나 신념 체계의 표현에 쓰인 것이다. 히에로글리프란 말 자체가 '신성한 조각'이란 그리스어다.
이 히에로글리프는 필기체까지 있어서 일상에서도 사용되던 문자다. 이런 고대 이집트 상형문자는 당연히 이집트의 비밀을 푸는 열쇠였다.
문제는, 불과 200년 전까지 아무도 해독할 수 없었다는 점이다. 까막눈도 그런 까막눈이 없었다. 왜 그랬을까? 바로, 고대 이집트 제국이 몰락했기 때문이었다. 로마 제국이 융성해진 상황에서 대부분은 라틴어를 썼고 히에로글리프 사용은 전혀 이뤄지지 않았다. 그래서 문자가 사실상 사라진 것이다. 그 후 고고학자들이 발견해도 읽을 수 있는 사람이 전혀 없었던 이유다.
그리고, 1822년 프랑스의 고고학자 샹폴리옹은 이 상형문자의 비밀을 발견한다.
출발은 로제타석의 발견이었다. 1798년 시작된 나폴레옹 이집트 원정 과정에서 로제타석이 발견된 이야기는 이미 잘 알려진 이야기니 간단하게 사실관계만 확인해두자. 1799년 나일 삼각주에 위치한 라시드 Rashid에서 군사 요새를 만들던 피에르 부샤르 대위가 이 로제타석을 발견했다. 참고로 라시드에서 발견했으니 라시드석이라 하는 게 맞지만, 아랍어에 무지했던 유럽인들은 라시드를 ‘로제타’라고 잘못 읽었다. 참고로 프랑스가 약탈한 로제타석은 나폴레옹이 영국과의 전투에 패한 후 다시 영국에 뺏겼고 지금은 대영박물관에 소장 중이다.
높이 1.2m, 너비 75cm, 두께 28cm의 돌덩어리가 고대 이집트어의 비밀을 푸는 열쇠가 된 이유는 뭘까?
로제타석에 새겨진 내용은 프톨레마이오스 5세의 법령과 왕의 통치 기간 동안 나일강의 범람에 대한 기록이다. 그런데 고대 이집트인들은 상당히 민주적이었다. 같은 내용을 세 가지 언어로 적었다. 바로 고대 이집트 성각문자(Sacred carving), 필기체 즉 이집트 민중 문자, 그리스어다. 이 중 그리스어가 해독의 결정적 열쇠가 됐다. 고대 그리스어를 아는 이는 많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단순 비교를 통해 이집트 성각문자의 비밀이 드러난 건 아니다.
사람들은 오랫동안 이집트 성각문자를 한자와 같은 표의문자로 해석해왔는데 이게 함정이었다. 왜 그랬을까 찾아보니 기원 후 4세기에 이집트 상형문자를 연구한 호라폴로가 이집트 문자를 표의문자로 해독했고 그 이후 정설처럼 굳어진 해석법이었다. '굽이치는 세 개의 선'은 당연히 물을 뜻하고 '깃발'은 신을 뜻한다고 해석하는 방식이다. 상당히 그럴싸한 해석이다. 당연히 1300여 년 동안 정설로 굳어져 온 견해이기도 했다. 기원후였긴 하지만 그나마 고대 이집트와 가까운 시대를 살았던 사람이 표의문자라고 주장하는데 감히 누가 이견을 달 수 있었을까? 하지만 오늘의 주인공, 샹폴리옹의 생각은 달랐다.
도저히 풀리지 않는 비밀을 앞에 두고 그는 생각을 바꿨다. 표음문자가 섞여있다고 본 것이다. 천재적인 직관이었다. 그리고 로제타 스톤의 내용이 왕에 대한 칭송이니 분명 프톨레마이오스란 이름이 나올 거라고 추정했다. 게다가 왕의 이름이니 뭔가 강조 표시가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래서 긴 타원형으로 강조된 부분이 프톨레마이오스라고 적힌 부분이 아닐까 가설을 세우고 연구를 시작했다.
그러던 중 신전의 상형문자 연구를 통해 이번엔 클레오파트라의 이름에 대한 성각문자를 발견하게 됐다. 열쇠가 된 알파벳은 프톨레마이오스와 클레오파트라, 두 단어의 공통 글자 네 글자였다. P L T O. 상형문자엔 또렷하게 공통 글자가 쓰여 있었다. 이 순간은 샹폴리옹이 이집트 성각문자의 비밀 해독에 확신을 갖는 때이기도 했다. 이집트의 상형문자는 표음문자와 표의문자가 섞여있었고, 그래서 해독에 오랜 시간이 걸렸던 것이다.
샹폴리옹은 그 후 아부심벨의 탁본 사본을 입수해 분석했다. 역시 파라오의 이름이 적혀있었다. 샹폴리옹은 스스로 발견한 해독법에 따라 파라오의 이름을 읽어나갔다. 파라오의 이름이 최초로 발음되는 순간이었다. 람세스.
그 후 샹폴리옹이 관련 논문을 발표한 1822년은 히에로글리프 해독의 해라고도 불린다. 소년 샹폴리옹이 이집트 문자 해독의 꿈을 꾼 지 21년 만의 일이었다.
샹폴리옹이 어렸을 때 이집트 문자를 보고 뜻을 물었을 때 주변의 답은 '아무도 모른다'였다. 읽을 수 없는 언어에 매료된 한 소년은 고고학자가 됐고 인생을 바쳐 연구를 했다. 덕분에 고대 문명은 그저 돌무더기나 수수께끼의 문자가 아닌 찬란한 역사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