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의 기억
2017년. 꽃이 피어있던 어느 날.
형광펜을 사기 위해 문구점 겸 서점을 하는 곳에 갔다. 두리번두리번 생각보다 많은 종류의 펜이 있다.
촉감과 색깔, 진하기와 번짐 정도를 알기 위해 글씨를 써보기도, 그 글씨를 칠해보기도, 형광펜의 모습과 필통의 크기를 고려해 크기도 봐야 했다. 여러 개의 형광펜을 만져본 끝에 하나를 골랐다.
'형과 펜 사는 김에 다른 펜도 봐야겠다'
펜이 많은 코너 건너편에는 색칠 연습을 할 수 있는 스케치북과 색연필 코너가 있었다. 스케치북을 고르고 있는 모녀가 보였다.
"엄마 나 이거!"
밝고 명랑한 아이의 목소리에 절로 눈이 갔다.
'귀엽고 밝은 아이네' 흔히 말하는 아빠 미소를 지으며 아이를 봤다.
하지만 아이에게 머문 눈빛은 잠시.
내 눈은 어머니로 향할 수밖에 없었다. 밝은 목소리와 표정의 아이와 달리 어머니는 너무나도 슬픈 표정이었기 때문이다.
'음.. 무슨 일이지' 나도 덩달아 표정이 심각해졌다.
펜을 고르며 계속해서 건너편에 있는 모녀가 신경 쓰였다.
시끄러워서가 아닌, 부산스러워서가 아닌. 어머니의 표정 때문에.
왜 어머니의 표정이 아이와 달랐는지는 단번에 알 수 있었다. 아이가 고른 스케치북과 색연필의 뒷면을 보고 가격을 본 이후였기 때문이다.
큰 한숨과 쉽게 떨어지지 않는 입.
무슨 상황인지 파악하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다. 그리고 내 마음은 너무 아파, 한동안 멍하니 그 모녀를 바라보았다.
분명 내게도 있었을 일. 그 아이는 나의 어린 시절을 보는 것 같았고, 기억은 나지 않지만 '그때 나의 어머니의 표정은 저분의 표정과 비슷하지 않았을까.' 문득 지나간 생각.
그리 오래 생각하고 싶지 않아, 머릿속에서 얼른 지워버렸다.
빠르게 펜을 고르고 계산대로 향했다.
"색칠공부! 색칠!" 신나서 뛰어다니는 아이와 망부석처럼 움직이지 않는 어머니.
그 모습을 끝으로 나는 나왔다.
모녀가 나오는 모습을, 모녀가 나오는 그 양손을 끝까지 볼 자신이 없어서 종종걸음으로 집으로 왔다.
천천히 걸었음에도 집으로 오는 내내 빠르게 뛰던 심장.
분명하게 기억나는 것도 아닌데, 내가 직접 저런 상황을 겪은 것도 아닌데, 내가 저 아이도 아닌데.
왜 나는 도망치듯 그 상황에서 행동을 했을까.
모두는 각자만의 사정이 있다.
모두는 각자만의 힘듦이 있다.
모두는 각자만의 걱정이 있다.
그게 가족의 문제인지
그게 돈의 문제인지
그게 미래의 문제인지
그게 관계의 문제인지
내가 살아온 삶을 생각하며
내가 살아갈 삶을 생각하며
내가 함께할 이를 생각하며
벌써 6년이 되어가는 이야기지만, 아직까지도 문구점에서의 일은 선명하게 기억난다.
'잊히지 않는다'가 맞는 표현 같다. 지금도 그때를 많이 생각한다.
나에게 있어서 하나의 트라우마로 작용하고 있었던 것일까.
지금은 나도 그런 트라우마가 없이, 내 삶에 있어서 저런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로 상황이 나아졌기에.
그 모녀가 슬픈 표정을 짓지 않고 행복하게 살고 있기를 바란다.
일면식도 없는, 어디 사는지도, 이름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그 모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