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남겨진 유산
3년 정도 같이 책을 읽어온 독서모임이 있다. 나도 책 좋아하는 편인데 다들 엄청난 애서가에 내공이 깊어서 많이 배우고 있다.
작년에 읽은 책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책은 [아비투스]다. 책을 읽으며 어떤 마음이었냐면,
마음에 소용돌이가 치는 것 같았다. 어렴풋이 느끼고 있지만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것을 누가 글로 써서 책으로 내놓았으니 말이다.
이 책에서는 자본이라는 것이 단순히 물질만이 아니라 7가지 영역의 자본이 있다고 말한다. (심리자본, 문화자본, 지식자본, 경제자본, 신체자본, 언어자본, 사회자본) 그리고 그것은 대물림된다고 쓰고 있다. 나는 정말 그렇다고 생각했었다. 누군가는 노력하지 않아도 풍부한 자본을 갖고 살아가고 누군가는 뼈를 깍는 노력을 해야 겨우 얻을 수 있다고.
나는 소위 스카이라고 부르는 대학을 나왔는데. 거기에 온 많은 학생들이 어떤 부류가 있음을 어렴풋이 느꼈었다. 고급 아비투스를 가진 고위층 자녀… 정치인 집안, 법률가 집안, 의사 집안의 자녀들에게는 내게 없는 것들이 있었다. 공부를 잘한다는 것과는 별개로. 돈이 많다는 것과는 별개로.
졸업할 때 쯤에도 그 차이를 느꼈다. 시간과 돈과 마음의 여유가 있는 아이들은 의전대나 로스쿨에 가서 한단계 높은 삶을 꿈꾸는 것이 자연스러웠지만 당장 돈을 벌어야 하는 아이들에게는 그 시간이 주어지지 않았다. 회사원이 되어 평범하게 살게 되었다. 그 대학 안에서도 그랬는데 밖에 나오면 더 그렇겠지. 누군가에게는 큰 꿈을 꿀 시간적, 물질적, 정서적 여유가 있었고 누군가에게는 없는 것 같았다.
이쯤하면, 부모님을 원망해야 하는 걸까?? 아니다. 나의 부모님도 분명 나에게 좋을 것을 주고 싶었을 거다. 그런데 그들도 받지 못해서 또는 알지 못해서 주지 못한 게 있을 거다. 그래서 마음 아파하셨을 거다. 내가 엄마가 되어보니 알겠다. 부모는 자식에게 항상 미안한 거였다. 나도 내 아이들에게 주고 싶은, 그러나 주지 못할까 두려운 것들이 있는 것처럼. 우리 부모님들도 그러셨을 거다 생각하니 부모님께 감사하고 또 죄송한 마음이 든다.
아비투스는 하루아침에 형성되지 않고 대물림 되기 때문에 쉽게 바꾸거나 극복하기는 어렵다고 한다. 하지만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그 어려운 일을 해낸 사람들의 이야기를 보고 들으며 우리는 감동한다. 그리고 나도 해내보고 싶다.
특히 나는 언어자본에 대해 자수성가 하고 싶다. 내가 이 영역에 정말 밑천이 없는 것 같아 육아하며 말에 대한 책을 많이 읽었다. 좋은 언어자본을 축적해서 아이들에게도 물려주고 싶다. 그게 인생에서 엄청 중요한 자본인 것 같아서.
가끔 현타가 오기도 한다. 누구는 자연스럽게 체득하는 건데 나는 왜 이렇게 애쓰고 수고해야 할까.
내가 이런 생각들을 하며 괴로울 때 들려주신 말씀이 있었다.
신명기 33장 1-5절<메세지 성경>
하나님의 사람 모세가 죽기 전에, 이스라엘 백성에게 다음과 같은 말로 축복했다.
하나님께서 시내 산에서 내려오시고
세일 산에서 그들 위에 떠오르셨다.
그분께서 바란 산에서 빛을 비추시고
거룩한 천사 만 명을 거느리고 오시는데
그분의 오른손에서는
널름거리는 불길이 흘러나왔다.
오, 주께서 저 백성을 어찌나 아끼시는지,
당신의 거룩한 이들이 모두 주의 왼손 안에 있습니다.
그들이 주의 발 앞에 앉아서
주의 가르침을,
모세가 명령한 계시의 말씀을
야곱의 유산으로 귀히 여깁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지도자와 지파들이 모인 가운데
여수룬에서 왕이 되셨습니다.
아멘.
“그들이 주의 발 앞에 앉아서
주의 가르침을,
모세가 명령한 계시의 말씀을
야곱의 유산으로 귀히 여깁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유산이라는 것이다. 육신의 부모님에게 언어자본을 받지 못했지만 하나님 아버지께서 나에게 말씀을 유산으로 주셨다는 것이다. 그러니 이 말씀을 어찌 귀하게 여기지 않을 수 있을까. 너무 감사해서 눈물이 났다.
하나님은 말씀으로 세상을 창조하셨고 사탄은 거짓말로 인류를 죄에 빠뜨렸다. 성경을 보면 혀에 대한 경고가 유독 많은 것 같다. 상처를 내는 말이 있고 치유하는 말이 있다고.
칼로 찌름 같이 함부로 말하는 자가 있거니와 지혜로운 자의 혀는 양약과 같으니라 (잠언 12장 18절)
흙탕물을 맑게 하려면 흙탕물을 비워내는 게 아니라 계속 맑은 물을 부어주면 된다는 영상을 본 적이 있다. 그래서 우리는 계속 좋은 글을 읽고 듣고 말하고 쓰며 살아야 하는 가 보다.
내 안에는 나 자신을, 그리고 다른 사람을 찌를 수 있는 언어들이 여전히 덕지덕지 묻어 있지만, 계속 좋은 글과 말, 맑고 깨끗한 생명의 물이 부어 지길 바란다. 사람을 살리는 언어, 양약과 같은 언어, 세상의 언어와는 다른 언어를 흘려보내는 사람이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