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 나무가 춤추고 있네?
신호대기에 걸렸을 때 뒷좌석에 앉은 민서가 말했다. 나는 같은 장면을 보고 바람이 많이 불어서 나무가 흔들린다고 생각하던 차였다. 나무가 춤춘다고 민서와 서준이는 깔깔대며 웃었다. 그러고 보니 초록 머리채를 휘날리며 나무가 춤추고 있는 것 같기도 했다. 나도 웃었다.
오늘 아침 내가 노래를 흥얼거렸는데 ‘어항 속 물고기가 엄마 노래 듣고 춤춘다’고 하던 아이다. 물고기는 제 갈 길을 헤엄쳐 가고 있었을 뿐 내 노래를 듣고 춤출 리는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문득 궁금해졌다. 물고기가 어떤 춤을 췄을까?
아이가 움직이는 사진은 어떻게 찍는 거냐고 물었다. 움직이는 사진? 하며 보니 흔들린 사진이었다. 아이에게는 그 사진이 잘 못 찍은 사진이 아니라 의도해서 찍고 싶은 사진인 모양이다.
아이들이 나에게 준 예쁜 말들을 메모장에 적어 두었다가 이렇게 아이들이 잠든 밤에 꺼내 본다.
나는 인간이 가진 속성 중에 순수함을 가장 사랑한다. 거의 아이들에게만 있는 듯하다. 인간은 아이일 때 순수함의 결정체인데 세상의 풍파를 맞으며 점점 그것이 닳아 없어지는 것 같다. 초가 녹듯, 비누가 작아지듯. 그냥 보고만 있어도 웃음이 나게 하는 힘. 그냥 생각만 해도 애틋해지게 하는 능력. 아이들의 순수함이 천천히 닳길 바란다.
어른이 되지 않았더라면 인생이 더 풍요롭고 즐거웠을 것 같다. 그래서 나에게는 이 육아의 시간이 선물처럼 느껴진다. (때론 지긋지긋하지만) 이 순수함을 만끽할 수 있는 시간이 더없이 소중하다.
육아의 시간은 어린 시절로 돌아가서 어린 나를 다시 만날 수 있는 시간이다. 민서와 서준이 그리고 어린 나 이렇게 셋이 같이 놀고 있는 기분이 들 때가 있다. 어른이 된 나의 관점으로 어린 시절을 다시 살 수 있는 기회를 준 아이들에게 고마운 마음이 든다. 이런 생각을 하면 조금 더 넉넉한 마음으로 아이들을 대할 수 있게 된다.
그때의 나보다 훨씬 훌륭한 우리 아이들을 보면서 감탄할 때가 있다. 아이들의 말속에 놀랄만한 철학과 관조가 숨어 있다. 이 세상을 탐구하는 호기심과 역동성이 가득하다.
아이들의 순수한 눈으로 나도 다시, 천천히 이 세상을 더 맑은 눈으로 바라보고 싶다.